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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Feb 11. 2020

#다음 추석에

1. 시한부 선고, 그 끝자락에서

2018년 07월 07일. 토요일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속초로 향했다. 우리 가족 4명이서 함께 속초를 갔던 적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이었다. 어릴 적 가끔씩은 가족들이 모이면 온천에 갔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특별한 날이었다. 어릴 때는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지만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고 나니 가족들이 모이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다. 다들 각자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만든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목욕탕에 들어가기 전에는 늘 시간을 협상한다. 늘리려는 엄마와 줄이려는 남자들 사이에서 시간 조율이 끝난 후, 아빠와 목욕탕에 들어갔다. 목욕탕에서 본 아빠의 모습은 많이 야위어 있었다. 내 기억 속 아빠의 모습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모의 모습이 작아 보인다는 말은 들어봤었지만 지금은 직접 느끼게 되었다. 뭐라고 설명하지 못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목욕 후에는 유명하다는 냉면집에서 점심을 먹고, 마트에 들러 저녁거리와 아빠의 옷과 신발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쯤이 되어가자 가까운 친척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명절 때 말고는 이렇게 모이기가 힘들었는데 여러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명절인 듯했다. 오랜만에 모인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지난 시절 얘기들로 분위기가 좋은 저녁 식사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빠에게 말할 시간이 되었다. 아직 아빠의 병명과 상황을 정확하게 말하지는 못했었다. 그리고 이후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다들 어떻게 말을 해야 하냐며 나에게 묻고 있었다. 누군가는 말을 해야 한다. 결국, 내가 말을 꺼냈다. 앞으로 아빠의 병간호를 위해 앞으로 어떻게 하자는 말을 했다. 하지만 아빠는 순순히 말을 듣지 않았다. 아빠는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피하고 있었지만 난 이렇게 넘어갈 수가 없었다. 이날, 이 많은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아빠를 위해서였다. 이렇게 아빠를 혼자 놔두고 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무도 아빠 홀로 먼 곳으로 떠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고, 아빠에게 남은 시간이 6개월도 안 된다고, 여기에서 이렇게 혼자 있다가는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설득이 안되면 이런 말이라도 하려 하고 있었다. 우리는 계속된 설득을 했다. 하고 또 했다. 모두가 아빠를 위한 말 한마디씩을 건넸다. 결국 아빠는 조건부 승낙을 했다. 잠깐만 통영에 내려가 있다가 다음 추석에 다시 돌아오자고 했다. 우리는 알겠다며 대화를 급히 마무리하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 통영으로 떠나자 했다. 다행히 우리가 바라던 대로 아빠를 설득했다.


하지만 우리는 예감하고 있었다. 

다음 추석, 우리는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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