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ank Feb 19. 2020

#아버지

1. 시한부 선고, 그 끝자락에서

2018년 01월 17일. 수요일



어릴 적, 우리 가족 모두 함께 저녁을 먹어본 기억. 어딘가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그런 일이 적었다. 아니 없을지도 모른다. 내 기억속에 아빠는 밖에서는 훌륭한 사람이었지만, 가정에서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아빠는 동네에서 부동산 사무실을 운영했었다. 하지만 언제인가 사무실이 사라지고 그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유는 잘 모르지만 아빠는 뚜렷한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난 아빠에게는 용돈 한번 받아 본 기억이 없다. 그때부터 엄마는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열 손가락으로 다 셀 수도 없을 만큼 여러 직업을 가졌었다. 그렇게 엄마가 가장이 되었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서인지 아빠는 변화하기 어려운 것 같았다. 아니, 아빠도 나름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이런 현실에서 변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아빠와 대화를 여러 번 나눴었지만 매번 아빠의 답변은 같았다. 무엇을 하겠다는 말만 했고 늘 결과도 같았다. 그런 모습을 보니 안타까우면서도 걱정이 된다. 시간이 더 흘러 움직일 수 없는 때가 오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런 대비가 없다.


이런 아빠의 모습 때문에 우리 가족은 깨진 유리 조각이 되었다. 아빠 때문만은 아니지만 엄마와 동생은 새로운 삶을 위해 통영으로 떠났다. 일 년 중 명절에는 가족이 모였는데 이제는 그것 마저도 사라지게 되었다. 앞으로 가족이 모두 모이는 일이 있을까. 경조사에는 함께 할 수 있을까. 그때가 아니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얼마 전, 고향에 갔을 때 아빠와 저녁을 함께 했다. 친구들 모임에 고향을 찾았는데 안 보고 그냥 돌아가는 게 마음에 걸렸고 아들로서의 도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은 아빠의 현실과 경제적 요구에 아파지기 시작했다. 난 군대에서 고생하며 벌었던 돈 중 반 이상을 아빠의 빚을 갚는데 썼다. 어린 나이에 큰돈을 처음 벌었고 아빠를 위하고 믿는 마음에 엄마 몰래 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엄마가 알게 되었고 아빠가 내 날개를 다 꺾었다며 내 앞에서 미안하다고 펑펑 울었었다. 


아빠의 경제적인 문제로 엄마와 난 고생을 여러 번 했었다. 아빠가 갚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빠에게 다시 돈을 받을 마음도 없다. 그저 지금 이런 현실이 싫었다. 추운 겨울에 연탄 살 돈 얼마가 없다는 말이 내 가슴속을 너무 아프게 만들었다. 결국 난 처음으로 아빠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참아왔던 그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졌다.

작가의 이전글 #영정사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