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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Jun 07. 2021

취업을 했지만 퇴사를 준비했다.

살아남기 #4

 오랜 두드림 끝에 3월 중순쯤 취업에 성공했었다. 여러 곳의 문을 두드리다 보니 그 당시 세 곳에서 손을 내밀었었다. 나는 그중에서 한곳을 선택하여 구직자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른 곳을 선택하지 않았던 이유는 너무 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시간이 오래 걸렸던 이유였고, 다른 한 곳은 분위기가 많이 보수적이고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였다. 결국 선택한 회사는 잡플래닛 평점이나 글들이 긍정적이지는 않았지만 가산디지털 단지의 큰 건물에 근무 환경이 좋아 보였고 특히 휴게실을 잘 꾸며져 있었는데 적어도 직원들을 조금은 신경 쓰는 회사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었다. 



 그 회사에서 나는 두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근무를 했다. 입사 첫날부터 부서장급 인원들이 회의하는 곳에 참여를 하게 되었고, 새로운 그룹웨어를 계약했기에 회사에 맞게 준비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우선 팀이 지금까지 어떻게 운영되어 왔었는지 파악했는데 조금은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해야 할 것들이 산처럼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쌓여있는 것들 사이로 새로운 것들이 계속 쌓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덤으로 함께 일해야 하는 팀원은 얼마 전에 사직서를 던졌었기에 그가 힘들어했던 이유를 파악하고 그 부분은 내가 해결을 해볼 테니 함께 해보자고 설득까지 해야 했다. 어쨌든 새로운 회사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계기는 퇴직금과 급여를 제때 지급하지 않아 신고가 들어가 있고 몇 건의 소송 건들을 확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매출액이 엄청 높은 회사는 아니었지만 돈과 관련된 이런 건들이 여럿 있다는 게 내게는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이전 회사 생활에서도 돈이 없는 회사가 망하는 과정도 봤고 힘들어하는 것도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신고가 여럿인 건 처음이었다. 



 이 회사에서 오래 있을 건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입사하기 전, 부서장급 인원들이 여럿 퇴사를 했었다. 이유는 정확히 몰랐지만 하나 둘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표님 방을 들어가 상대하기 시작하면 퇴사자가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대표님 방에서는 고성이 문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기분이 나쁘더라도 이렇게 직원들에게 소리치는 상황은 처음 마주했다. 얼마 후, 나 역시 이런 상황을 겪게 되었다. A를 준비해 갔더니 A-1에 대해서 말을 하여 A-2까지 준비를 했더니 이제는 A-4를 말했다. 그리고 다른 직원이 나에게 정확히 상황 파악을 안 하고 내 잘못으로만 보고를 했다. 그 말은 들은 대표님은 내 변론은 듣지 않고 인격 모독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나는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니라고.



 그래도 배운 건 있다. 정부과제를 수행하던 회사라 산출물과 문서에 대한 중요성, 즉 과정도 중요하겠지만 결과물을 무조건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회사가 궁지에 몰렸을 때, 법의 테두리에서 어떻게까지 하는지도 알게 되었는데 힘들면 그렇게도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것들도 있다. 사람 관리를 어떻게 하면 안 되는지. 회의를 하지만 소통이 아니라 통보만 하고 있는 상황. 조직은 한 사람의 영웅으로만 돌아갈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사직서를 내밀고 대표님과 기대치 않았던 차분한 대화를 나눴다. 할 말은 많았지만 한두 가지만 했다. 생각보다 오랜 대화를 나눈 후, 후회할 것 같으면 말했던 걸 다시 준비해서 오라고 했다. 하지만 난 후회하지 않겠다고 대답했고 대표님은 사직서에 사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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