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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nk Dec 19. 2019

#용기를 내다

2. 회사를 떠나다, 방향을 틀어

이틀 전, 출근하자마자 서류 파일을 뒤져 사직서를 찾았다. 드디어 내가 사직서를 쓰게 되는 날이 왔다. 꽤 오랫동안 가슴속에 품고 있던 이 서류는 쉽게 밖으로 나오지 못했었다. 말은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는 긴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사직서를 프린트하고 살짝 떨리는 손으로 자필 서명을 한 후 결재판에 넣어두었다. 심호흡을 쉬었다. 혹시 모르니 사진도 한 장 찍어두었다. 이로써 모든 준비는 끝났다. 부장님이 바쁘지 않을 만한 타이밍으로 오후 4시쯤 제출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이곳에서 보낸 6년의 시간을 돌아봤다. 처음 면접을 보러 왔을 때, 입사하자마자 팀장이 나간 후 혼자서 참 많은 일들을 했다. 황무지 같은 회사에서 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 공부도 참 많이 했었다. 아직까지도 이 회사에서 가장 많은 교육을 다녀온 건 나다. 그만큼 많이 했었다. 체계를 잡아가는 과정이라 경영진들과 많은 대화를 하며 만들어 나갔었다. 그때 날 향하던 시기와 질투들, 참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었다. 함께 도우며 헤쳐나갔던 사람들은 아직도 가깝게 지나고 있었다. 공유할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있다. 


난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떠나려 한다. 집 문을 열고 사무실 문을 다시 열기까지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마음만 먹으면 거의 매일 칼퇴가 가능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이게 살아가는데 전부는 아니더라. 스스로 쉽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걷어차고 나가는 것이다.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아마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있는 회사는 죽은 조직이 되어가고 있다. 누군가는 좀비들이 많다고 했다. 새로운 도전도 없고 변화하지 않는, 아니 이제는 못하는 조직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좀비가 되어가는 내가 싫었다.


오후 4시가 되기 전까지, 가까웠던 사람들에게는 알렸다. 대부분 이미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지만 누군가는 말렸고, 누군가는 응원을 해주었다. 난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니니 울지 말라고, 우리는 이 울타리를 벗어나도 만날 테니 더 좋은 모습으로 보자고 했다. 그리고 오후 4시쯤 부장님께 잠시 시간을 내달라며 회의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사직서를 부장님 앞에 내밀고 내 생각을 먼저 쭉 얘기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고 그 고민 끝에 지금 새로운 도전을 해야겠다고 했다. 여러 가지를 말했다. 이어 부장님도 부서 이동부터 여러 가지를 나에게 말했지만 본인도 느꼈을 것이다. 나를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부장님의 제안을 난 거부했다. 물론 대화는 형식적이지만 좋은 분위기에서 했다. 인생 선배로서의 얘기도 많이 해주셨고 그날 오랜만에 둘이 한 잔을 하며 회사에서 하지 못했던 많은 대화를 나눴다. 어제는 상무님과도 면담을 했다. 상무님도 오래 함께 했던 직원이 나가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현했다. 주말에 더 생각을 해보라고는 했지만 상무님도 내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얘기들을 몇 가지 해줘서 살짝 놀랬고 감사했다. 이제는 회장님 면담만 남은 것 같다. 아닐 수도 있지만.

 

사직서를 내고 나니 덤덤해졌다. 긴장은 한순간이었다. 이제는 앞으로 할 것들을 준비하자. 우선은 2월 한 달간 제주도 살기를 준비할 것이다. 난 방금 끝을 보았지만 내 앞에는 새로운 시작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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