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aterrace Jan 10. 2019

그 집 할머니

할머니, 지금도 안녕...하시죠?



우리 집 근처 삼양 바닷가에는 곳곳에 공영주차장이 있는데 그중 한 주차장 앞에는 찻길에 면한 가정집이 있다. 주차할 때마다 그 집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 기억이 유독 선명한 이유는 항상 그 집 현관 앞에 앉아계시는 할머니 때문이었다. 어림잡아도 90세는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볕을 받으시러 나오는 모습이 그림 속 한 장면 같아 보였다.



처음에는 제주의 햇살을 받고 계신 할머니의 표정을 보고는 참 부럽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비록 그 이전에 파란만장한 역사가 자리하고 있을지라도 현재의 할머니는 참으로 편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깍쟁이 같은 서울 할머니의 세련됨은 없지만 다가가기만 해도 손을 잡고 안부를 물어보고 등을 토닥여 주실 것 같은 포근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지극히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바라보는 눈빛 끝에 초점이 없는 듯 보이기도 했고, 언뜻 보이는 집안에는 사람의 온기가 없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했다. 대화할 상대가 없어서 그저 지나가는 행인이라도 보실 요량으로 앉아계신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제주살이를 정리해가던 어느 날. 그간 내가 할머니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날이기도 하다. 남편과 점심을 같이 하기 위해서 평소처럼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려 기다리는데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았다. 단 한 번도 말을 건네 본 적은 없는 그 집 할머니의 안위가 갑자기 궁금하고 걱정스럽기 시작했다. 매일 나와 계시던 할머니가 오늘은 왜 모습이 안 보이는 걸까. 문을 두드려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랬다가는 정말 이상한 사람 또는 수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근처의 초밥집에서 남편과 점심을 먹으면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매번 보던 할머니가 오늘은 나오지 않으셨다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염려된다고.

"육지에 있는 자식들을 친히 만나러 가기에는 상당히 연세가 있으셔서 그럴 것 같지는 않은데 오늘은 웬일인지 나오지 않으셨어."

사실 자녀들이 육지에 있는지 내가 알고 있을 리 없다. 자녀뿐 아니라 어떤 가족 구성원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이런 말을 주저리고 있는 것이다. 매일 보는 사이에 어느새 할머니의 연령을 추정하고 그 가족들을 그려보고 할머니의 기분을 내 마음대로 상상했던 것이 어느새 사실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제주에 오고 나서 유독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곳곳에서 만나는 이웃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이다. 처음 제주집에 발을 들였을 때, 1층에 있는 우리 집을 드나드는 내 모습을 이웃들 모두 신기한 듯 보고 또다시 보는 일이 생겼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우리를 쳐다볼까 했는데, 그들은 새로 등장한 우리가 낯이 설어서 그랬던 것이다. 그만큼 삶의 테두리가 좁고 긴밀하다. 나도 그들 안에서 눈에 띄지 않고 그들 가운데 녹아서 살려면 내 존재를 알리고 자연스럽게 그 속에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쳐다보는 눈이 줄어들었다. 이렇듯 제주라는 땅은 알게 모르게 타인에 대한 관심이 높은 곳이다.


그런 그들의 습성이 어느새 내게도 베어 들었나 보다. 멀찍이서 매일같이 할머니를 보며 그녀를 궁금해하고 그녀의 삶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갔다. 그러다 보니 일방적이지만 할머니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이렇게 궁금해하고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점심을 마치고 근처를 걸으며 산책을 하고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오는데 그곳에 할머니가 계셨다. 어찌나 반가운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꾸뻑 숙였다. 그 후에도 할머니가 잘 계신지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마치 일과처럼 되었다.


제주를 떠나온 지금. 가끔씩 낮시간에 할머니가 햇빛을 쪼이러 나와계신 모습을 상상한다. 요즘 같은 폭염에는 나와 계시기엔 건강이 염려되는데 잘 계시려나 궁금하기도 하다. 얼른 가서 할머니가 잘 계신지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오후이다.






작가의 이전글 멘탈가출자의 방황기(오타루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