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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Jan 10. 2019

불턱 이야기



집 근처 삼양 바닷가에는 커다랗고 높은 그리고 네모진 돌담이 있다. 짙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높게 쌓아 올린 돌담은 첫인상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스톤헨지모아이 석상과 같은 유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가운데 불을 지핀 흔적이 있고, 돌담을 둘러서 옹기종기 앉았을 것 같은 흔적도 보였다.

 


얼마 후 아이와 함께 갔던 '해녀박물관' 정원에서도 삼양 바다에서의 돌담과는 다르지만 유사한 모습의 그것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그것이 단순한 돌담이 아니라 '불턱'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불턱'이란 해녀들이 물질을 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거나 물속에서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만든 돌담을 일컫는 제주말이다. 여기에서 해녀들은 물질을 하다 나와 아기에게 젖을 먹이기도 하고, 물질 기술을 전수하기도 했으며, 해녀회의를 하기도 하는 등 해녀 공동체를 형성하게 하는 사랑방 역할을 했던 곳이라고 한다. 현재는 현대식 탈의장이 들어서면서부터 그 기능을 상실하고 상징적인 형태로만 보존되어 있지만, 이것은 물리적인 탈의실 역할을 넘어서서 마을의 소식을 전하고 가정의 대소사를 의논하기도 하기도 하는 등 해녀들에게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공간이기도 했다.


불턱은 그야말로 제주의 자궁과도 같은 곳이었다.


제주를 낳고 길러낸 곳 말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는 삼양 바다의 돌담, 아니 불턱은 나에게 더 역사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비춰졌다. 가끔 아이의 하원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했을 때면 어김없이 그곳을 찾았다. 때로는 비 오는 날 우수에 젖어 더욱 새까매진 불턱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해녀들의 젖은 숨결이, 입김이 보이는 듯했고 '섬집아기'를 향해 급한 숨을 내쉬며 달리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톳불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언 몸은 녹이는 모습도 보였고, 가슴팍을 내놓고 젖을 물리는 어린 엄마의 모습도 보였다. 해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디찬 바닷물에 몸을 던지는 해녀들의 눈물도 보이고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한 맺힌 타령도 걸걸한 목소리로 전해지는 듯했다.




하루는 밤늦은 시간에 근처를 지날 일이 있었다. 그런데 불턱 안에서 화염 같은 것이 올라와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여름밤이라 근처에는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자리를 펴고 앉아 더위를 식히는 그런 밤이었다. 다가가 보니 중년쯤 되어 보이는 남녀 한쌍이 아무렇지 않은 듯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노닥거리고 있었다. 가끔씩 불길을 향해 '힐끔' 시선만 던질 뿐이었다.


불타는 불턱과 실화범들의 유유자적한 모습


어떻게 된 영문일까. 이곳을 동네 사람들은 소각장으로 사용하는 걸까. 마을 문화나 규정을 알리 없는 나는 소리 내어 묻지도 못하고 멍하니 거세지는 불길만 보고 있었다.


뭐 하는 겁니까, 도대체?


갑자기 어떤 할아버지가 삿대질을 하며 다가왔다. 그러자 그 남녀 중 여자 쪽이 어쩔 줄 몰라하며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불턱에 걸터앉아 유유자적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그 여자의 행동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난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장난친 거라고?

그 여자의 설명은 이랬다. 장난으로 불을 붙여봤는데 꺼지지도 않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목소리만 들어도 취중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불은 더욱 높아지고 검은 연기까지 동반했다. 불턱 안에 있는 무언가가 타며 내는 연기였다. 죄송하다고는 하지만 어린아이도 아닌 중년의 어른들이 한  장난이라니, 어둔 밤 자기들끼리 연애 불장난을 그리 신성한 장소에서 할 생각을 했단 것부터가 꺼림칙함이 느껴지는 사람들이었다.


이윽고 소방차와 경찰차가 도착했다. 날이 이미 어두워서 불턱이 있는 곳까지 내려가는 발걸음도 위태해 보였다. 소방대원들이 불을 끄고 경찰관이 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장난이었다는 말을 반복하는 중년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한심하고 역겨운 생각이 들었다. 나이에 걸맞는 책임 있는 어른의 모습은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불을 내놓고 신고조차 하지 않은 자들이 입에 올리는 '죄송'엔 진심이 빠져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볼 해녀 할머니들의 모습을 상상하자 중년 여자에 대한 미움은 더욱 커졌다. 불이 진화되자 중년 여자는 경찰관의 경고를 받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잦아든 연기와 매캐한 냄새만 홀연히 남아있었다. 마치 처음 듣는 외국어처럼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던 제주말로 내게 말을 거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만 남았다.

 

불턱의 화재를 진압하고 있는 모습




이튿날, 아이를 원에 보내고 부리나케 불턱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상태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젖은 바닥과 타다 남은 밧줄의 잔해, 그리고 여기저기 검게 그을린 자국들이 전날 밤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불턱을 지켜보고 있는데, 물속에서 방금 올라온 해녀 할머니가 커다란 망태기를 등에 지고 온몸이 물에 젖은 채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계셨다. 삶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워 보였다. 타버린 불턱과 할머니의 무거운 뒷모습을 교차해서 바라보니 깊은 한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정작 그 중년 남녀는 이곳에 다시 와봤을까? 모르긴 몰라도 별일 아니라고, 큰 사고도 아니었다고,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이미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니 또다시 화가 치밀었다. 소중한 유산을, 해녀들의 역사를, 그들의 희로애락을, 함부로 흠집 내버린 그 중년 남녀의 무책임함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가끔 남편도 빈집으로 돌아가기 싫을 때 이곳에 들러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님을 기다리는 외로운 마음, 그래도 살아나가야 하는 고된 마음, 책임감의 무게를, 남편도 공감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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