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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Jan 10. 2019

헤어짐이 일상인 우리는, 주말부부입니다.

매주 이별합니다.



태풍 '솔릭'이 어수선하게 지나갔다. 남편의 말대로라면 '제주만 패고 갔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랜 시간 제주에서 머물다 힘을 잃고 경로마저 바꾸어 물러났다. 시작 전부터 미국, 일본의 기상예측까지 들이밀며 이번 태풍의 규모가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보했으나 수도권엔 잔잔한 비만 뿌리고 호둘갑만 떨다 시시하게 끝나 버렸다. 해갈도 못 시킨 채 말이다. 남쪽 지역의 피해상황을 들으면 배부른 소리겠지만, 소문만 무성했던 잔치처럼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나버렸다.


태풍이 제주에 머물던 때에 남편은 제주에 있었는데, 집에 오기 하루 전까지도 비행기가 뜰 수 있을지 불투명했을 정도로 많은 항공과 선박이 결항이 되었다. 그리고 간신히 비행기가 뜰 무렵에는 그간 결항으로 인해 밀려든 손님들로 공항은 시장통을 연상케 할 만큼 북적거렸고, 1시간은 기본으로 지연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남편은  나의 만류를 뿌리치고 처자식을 보겠노라고 굳이 올라왔다. 물론 항공사 측의 취소가 없는 한은 아무리 천재지변이라고 하더라도 취소가 불가능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피곤과 위험을 무릅쓰고 온 것만은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운 없게도 남편은 태풍이 머물던 날 당직에 걸려있었고, 남편이 근무하는 발전소는 이 비상상황을 대비해 본부장까지 밤새 본부를 지키고 있는 터에 꼬박 밤을 새우고 온 터였다.


그렇게 기를 쓰고 올라왔지만 우리는 평소의 일상처럼 주말을 보냈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커피를 마시고. 특별한 일과를 보내지 못한 것이 남편에게 미안한 정도로 그냥의 하루를 보냈다.


우리 예전엔 주말에 뭐하고 지냈더라?


본래 삶의 터전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우리의 주말은 제주의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랬더니 막상 이곳에서는 특별히 갈 만한 곳이 떠오르질 않았다. 간다 해도 사람들이 북적거릴 것이 눈에 뻔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허무한 주말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남편이 돌아가는 날에는 저녁 5시 즈음 공항 리무진을 타고 출발해서 7시 무렵의 비행기를 탄다. 하지만, 이번에는 돌아가는 비행기마저 1시간이나 지연되어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이미 태풍은 한반도를 빠져나갔지만, 밀려있는 손님과 신속한 정리가 어려운 항공사로 인해 여전히 태영향권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남편은 집에 들어가면서 오랜만에 라디오를 듣고 있다고 했다. 밤과, 기분과 잘 어울린다면서. '허윤희의 꿈과 음악 사이에'라는 프로그램인데, 주로 90년대의 음악을 틀어주어 추억여행을 떠나기 제격이다. 게다가 DJ의 목소리가 위로받기에는 일품. 서로를 모르던 시절부터 좋아했었고, 결혼을 하고 둘 다 좋아했음을 알게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TV는커녕 라디오를 듣는 조차 요원한 것이 되어 우리 모두 잊고 지냈는데 남편이 오랜만에 듣고 있다는 이야기에 나도 핸드폰을 켰다.


- 아! 이 노래!

- 오늘 선곡 좋네.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실시간으로 서로의 생각과 기분을 공유하니 기분이 묘했다. 연애할 때도 이런 기분이 들었던 때가 있었던가. 같은 음악을 들으며 같은 기분을 느끼며 공유하니, 같은 하늘 아래 멀지 않게 있는 것이라며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 듣던 중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들었는데 두 돌이 되어 세 식구가 나란히 누워 아이를 재우며 듣는다는 사연이 나왔다. 그 단란한 모습을 상상하며 우리 아이가 어렸을 적 회상에도 잠겼다가 '지금은 이산가족이네'라는 생각에 다다르면서 울컥하기도 했다.


그 무렵, 육지는 태풍이 남기고 간 열기와 북태평양 기단이 만나 폭우를 쏟아부었다. 제주는 보슬비가 내린다며 걸어갈 만하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우산도 없이 쓸쓸하게 걷는 모습이 상상되어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전에 없던 일이다. 남편을 측은하게 여기는 일. 육아의 이인자로 한 발자국 뒤에 서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미웠더랬다. 주말부부를 하게 되어도 육아는 나의 몫이기 때문에 남편은 비록 외롭긴 해도 상대적으로 편한 쪽에 속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유독 이번만은 남편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5시간을 걸려 처자식을 보러 오고, 비 오는 날 처자식을 두고 5시간을 걸려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을 생각하니 왜 그렇게 애처로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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