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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Jan 10. 2019

삼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주말부부

콩레이, 너 때문에




몸져누웠다.


발단은 아주 사소하다. 추석에 시가에 내려가는 기차를 타려고 역에 들어선 순간 갑자기 내뱉은 재채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재채기에 허리 부근이 찌릿하더니 두 번째 재채기에 제대로 강타당했다. 세 번째 재채기가 나오려던 순간 몸이 놀라 재채기를 쏙 들여보냈다. 그리고부터 갑자기 제대로 걸을 수가 없게 되었다. 상황판단력 뒤떨어진 남편은 그 와중에도 나를 대전행 기차에 타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제대로 앉지도 못해 허리를 구부리고 이마를 앞좌석에 기댄 채 1시간 반을 버텼다. 그러고 났더니 이젠 허리가 안 펴지는 상황이 되었다. 간신히 역 대기실까지 올라왔으나 더 이상은 무리였다.


나, 어른들께 인사만 드리고 다시 돌아갈래


이럴 때 나서서 결정하지 못하는 남편에 대한 일종의 항의이기도 했다. 역으로 나였더라면 그 순간 바로 기차역에서 바로 집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남편은 우선 아이를 데리고 옆 앞에 대기 중인 부모님 차로 먼저 내려갔고 그 후에 나를 데리러 왔다. 상황을 전해 들으신 시아버님도 건너편 차 안에서 근심스러운 눈빛으로 내 걸음을 지켜보고 계셨다. 바로 병원에 가야 하는데, 문제는 그날이 연휴의 시작인 토요일이 되다 보니 문을 연 병원이 거의 없는 상황. 여기저기 전화를 한 끝에 간신히 도착한 병원은 마감이 채 20분도 남지 않은 상황이라 급하게 주사 처치와 약 처방을 해준 것이 전부였다.


이후 집에 도착하자 시어머님께서는 당신이 다니시는 교정원으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우두둑 우두둑. 무서운 소리와 함께 내질러지는 나의 비명소리. 그리곤 집에 돌아와서 다음날까지 정신없이 잠을 잤다. 본래 인사만 드리고 돌아가려던 나의 계획은 '이대로 돌려보내면 마음이 편치 않으시다'는 어머님의 만류로 수포로 돌아갔지만 나의 몸 상태도 혼자 돌아가기에는 너무 힘든 상황이었다. 돌아갈 거면 우리 가족 모두가 돌아가야 한다는 어머님의 뜻을 따르기에는 남편의 제주생활로 부모님 댁을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댁을 오랜만에 방문한 남편과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녁도 거르고 내리 13시간을 자고 났더니 그래도 전날보다는 살만해졌다. 아침 몇 술을 뜨니 안심이 된다시는 어머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집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먹은 것은 단순히 남편에 대한 항의나 내 몸 하나 편하자고 한 것은 아니었다. 일손에 보탬은 못될지언정 오히려 몸져누워 가족들로 하여금 근심 걱정을 보태게 할까 봐서였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결혼하고 가장 편한 며칠을 보냈다. 비록 마음은 무거웠지만 셀프 눈치를 볼 겨를도 없이 약에 취해 잠들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근처에 있는 친정에 가서도 더할 나위 없이 편하게 지냈다. 물론 아이가 철없이 덤비기는 했지만 그것만 빼면 아이 낳고 최고로 잘 지냈다.

그렇지만 남편이 제주로 돌아가고 나서는 다시 또 어려움이 따랐다. 아이를 케어하는 것도 그렇고 출근도 문제였다. 평소 15분이면 족히 걸을 수 있는 거리를 1시간이 걸려서야 도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업종이 치기 전에 교무실을 나서도 15분이나 걸려서 3층 교실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나마도 계속 서있거나 계속 앉아 있는 것이 버거웠다.

거기에다 목요일에 제주로 돌아간 남편은 하루 뒤인 금요일에 또다시 집으로 올 수가 없어 주말 내내 아이는 나의 몫이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다음 주가 시험기간이라 일찍 끝나고 병가를 내도 부담이 적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태풍이 또 말썽이었다. 콩레이가 제주를 관통하여 남부를 훑고 지나간다더니 남편이 오는 금요일 낮부터 엄청난 양의 비와 바람을 쏟아부었다. 결국 남편이 예약한 비행기는 결항이 되었다.


항공사의 결항 안내 메시지


하아. 이번 주말 또 독박 육아라니. 남편을 탓할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못 오는 남편의 속은 또 얼마나 답답하겠으며, 거기에 '태풍 대비 발전소 비상근무 체계'까지 가동되어 다음 날 출근까지 하게 되었다고 하니 날아간 주말에 가엽기도 했기 때문이다. 비행기만 떴더라면 모든 것이 원만했을 텐데 제주와 육지를 오가는 교통편이 한계가 있다 보니 이런 일이 생겨난 것이다.


주말부부라 하더라도 제주와 육지, 제육 부부만 아니었더라면 어느 시간이곤 막론하고 오갈 수 있었을 것이다. 제주행을 결정되면서 아이가 위급하게 아플 때 멀리 있는 남편의 손길이 아쉬울 것만 생각했지, 내가 몸이 편치 않아 남편의 도움이 절실한 날이 있을 것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어쩌다 한 번씩 저녁 먹을거리가 없다며 함덕'에나' 가서 밥을 먹고 온다는 남편의 배부른 메시지와 뒤이은 근사한 배경의 사진을 보며 그래도 제주라서 덜 외롭겠다며 안심했는데, 남편이 필요한 주말에 아픈 몸으로 혼자 건사해야 할 아이의 잠든 모습을 보니 둘이어도 되려 우리가 더 외로운 것처럼 느껴졌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주말부부. 그 삶도 녹록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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