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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Jan 11. 2019

엄마라는 이름의 횡포




아이와 단둘이 제주살이를 할 때의 일이다.

기분좋게 일어났고, 제주라서 더 좋은 아침이었다.


현관문과 주방 창문, 그리고 방 창문을 열고 산뜻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날씨는 흐렸지만 선물같은 바람이 산들,하고 불어들어왔다.


사건의 발단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화근은 외출할 때 가져가려고 챙겨놓은 과자였다. 보자마자 바로 입으로 가져가는 아이. 일어나서 배가 고픈 것은 알겠다만, 이것을 먹고 나면 또 아침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할 게 훤히 내다보였다. 나는 '하나만 먹고 그만' 먹으라고 말하고 아침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아이가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그 과자를 계속 먹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뭐 그리 화낼 일인가 싶지만, 당시에는 천불이 올라왔다.


“엄마가 하나만 먹으라고 했지? 이거 먹고 또 아침밥 안 먹는다고 할 거 아니야!”


라며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평소 대화 수준이 높은 아이라고 하지만 고작 26개월인 아기였는데, 나는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나의 짜증'을 아이한테 쏟아부어버렸던 것이다.


“겸이가 엄마 말 안 들으니까, 이제 엄마도 겸이 말 안 들을 거야. 엄마 화났어.”

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대학시절, 교육학 시간에 화가 날 때는 스스로 그 화를 제어한 다음 아이를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을 수 있을 때 다시 불러 훈계하라고 배운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그 말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학생을 혼낼 일이 있을 때 짜증이 아니라, 정말 훈계할 가치가 있다고 여길 때만 따끔하게 혼내는, 내 나름 '감정적이지 않은 교사'가 되려고 노력하고 살고 있다.


그런데 정작 내 아이에게는 짜증을 내고 있다. 그것도 26개월짜리 아기한테.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솔직히 말하면, 아직 아이가 어리기에, 내가 '감정적으로 짜증을 내는 것'인지 '정말 혼낼 일을 혼내는 것'인지 구분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아이는 알고 있었다. 아이는 용서를 구하지 않고, 나지막이 “무서운 엄마 나빠.”라고 중얼거렸다. 자초지종을 설명해가며 차근히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안 된다고 하면, 최소한 알았다고 대답했었다. 물론 대답하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는 있었지만. 어쨌든, 엄마가 나쁘다는 말은 한 적이 없는 아이였다.



'엄마가 나쁘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 '세상에 엄마가 전부인 아이'가 엄마가 나쁘다니 이제 이렇게 슬슬 엄마와 멀어지는 건가 싶기도 하고,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이런 말을 했을까 안쓰럽기도 하고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의 파도가 내 머릿속을 거칠게 침범해왔다.


나는 약간 얼이 빠졌던 것 같다. 어떤 대처를 해야 하나 갈등하고 있는 사이, 어이없게도 방어기제가 불쑥 튀어나와버렸다. 


뭐라고?


엄마가 나쁘다고? 어휴. 엄마도, 엄마 말 안 듣는 겸이 때문에 기분이 나빠요. 화났어요.
...... 미안하다고? 뭐가 미안한데?
...... 엄마가 화가 난 건 아침부터 울어서가 아니라, 밥 먹고 나서 까까 먹으라고 했는데 겸이가 엄마 말 듣지 않아서 화가 난 거야.
...... 다시는 안 그런다고 말만 하는 건, 아무 소용없어.”



엄마라는 말을 빼고 들으면, '남편이랑 부부싸움하는 대화'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화가 났다고 표현하지만, 정확하게는 삐친 거다. 37년을 살아온 엄마가 2년을 살아온 아이한테 대고 쓴 방법이 고작 '맞불작전'이라니.


아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표정으로 다른 무언가를 하는 시늉을 했고, 나에게 와서 괜한 말을 붙여보기도 했다. 나는 아이의 말을 못 들은 척 입을 꾹 닫고, 강아지처럼 내 꽁무니를 쫄쫄 따라다니는 아이를 투명인간 대하듯 못 본 채 하며 이방 저방으로 옮겨 다녔다.


아이에 대한 엄마의 횡포다.


'엄마가 아니면 안 되는' 아이의 마음을 이용하여 부리는 권력자의 횡포. 엄마가 전부인 아이에게 엄마의 이런 행동은 청천벽력 같을 것을 '이미 알고' 하는 행동이었다. 예전에 젖을 물고 자는 습관이 있던 아이를 향해 마치 들으라는 듯 한숨을 푹푹 쉬어대던 때가 있었다. 그래놓고 뒤늦게 이건 '가진 자의 유세'라고 반성하며 가슴을 치던 때가 있었는데, 또 이러고 있었다.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 봐 꾹 참고 말도 못 하고 있다는 나의 말에 남편은, '엄마의 감정도 솔직해 질 필요가 있다'라고 했는데, 이건 솔직해도 너무 솔직했다. 아니, 지나쳤다. 남편이 알면 속상해할 것 같다.


마음 좀 진정시킬 겸 세수를 하는데 “우와~ 엄마 예쁘다.”란다. 예쁘다고 해서 풀린 건 아니다. 안 그래도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아이가 먼저 나를 웃겨준 것이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불평등 전쟁'을 마치고, 기분전환 겸 마당에 나갔다. 전날 산 비눗방울 장난감을 들고 마당에 흩날렸다. 오늘도 흐린 날씨에 “엄마 무지개는 어딨어요? 햇님은 어딨어요?”라고 묻는데 언제 화가 났었는지, 녀석의 귀여움에 내 마음이 살랑거렸다. 결국은 비눗방울액을 전부 쏟아버려 또다시 '욱'할 뻔 했지만 말이다.


결국 비눗방울액을 다 쏟아버렸다.


아침은 어제 장 봐온 백조기를 튀겨서 내놓았다. 걱정과는 달리 아이는 잘 먹어주었다. 아침부터 내가 했던 '감정폭발'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저녁에는 800일 축하파티를 했다. 비록 선잠을 자고 일어났지만 생일 축하를 할 거라는 말에 금세 표정이 밝아졌다. ‘800일 축하합니다’로 노래를 마치고 촛불을 끄며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

  

생각해보니 아이 800일에 아침부터 그토록 아이를 못살게 굴었다. 에효. 못난 엄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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