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셋, 전업보모 체험기

by teaterrace




나는 아이가 하나다. 아들만 하나. 여태껏 후회가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아니, 너무 잘한 선택인 것 같다.



동생이 갑작스러운 심장수술을 받게 되어 조카 녀석 둘이 우리 집으로 왔다. 친정엄마도 우리 집에서 기거하시며 어른 둘, 아이 셋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6살 우리 아이, 4살 조카, 돌쟁이 조카 이렇게 3명인데 세 아이의 흥분된 고성과 다툼으로 집안은 고아원을 방불케 했다. 어린이집으로 표현하지 않은 것은 체계화된 보육을 기대할 수 없고 부모가 기관을 선택하여 보낸 것이 아니라, 부모의 보호가 불가하여 불가피하게 보내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통합보육처럼 아이들의 나이도 제각각이라 연령에 맞춤화된 돌봄이 불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는 독자로 혼자 보낸 시간이 익숙한 데다 어지간해서는 불화를 회피하는 편이다. 이에 반해 큰 조카는 늘 남의 손에 가진 것을 뺏고 '내꺼야'를 기본 장착한 여자아이이다. 거기에 돌쟁이는 평소에는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순둥이인데, 제 언니에게 뺏겼던 트라우마가 있는지 유독 그것에만 반응을 보이며 악을 질러댄다.


예민한 아이답게 눈치가 빨라 부모의 사소한 표정 변화까지 감지하여 큰소리 내지 않아도 눈치껏 행동하는 우리 아이에 비해 큰 조카는 독불장군이 따로 없다. 하지 말라고 하면 기필코 더 하고, 하라고 시키면 못 들은 척한다. 정말 사람 돌게 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아이이다. 가끔씩 놀러 올 때는 이 정도인 줄 몰랐는데 며칠 제 부모 없이 키워보니 보통이 아니다.


처음엔 애미애비없이 맡겨진 게 안쓰러워 우리 아이더러 한번 더 양보케 하고, 속 뒤집는 행동을 할 때는 교육은 제 부모 몫이니 눈 딱 감고 못 본 척하기도 했다. 그랬더니 우리 아이가 상처 받기 시작했다. 엄마의 일관된 교육철학이 동생들에겐 예외가 되는 것을 목격하며, 엄마가 혹시 동생들을 더 사랑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했다.


"겸아, 동생들은 엄마아빠가 함께 지내지 못해서 안쓰러워 그러는 거야. 엄마는 우리 겸이를 제일 사랑해."


그랬더니 밤마다 이불속에서 '엄마는 동생들만 안쓰러워해요'라며 소화되지 않은 감정을 토해냈다. 아, 이렇게는 안 되겠다. 하루 이틀 같이 지낼 것도 아니고 잘못된 건 가르치며 지내야겠다, 싶었다.



우선은 늘 불란의 원인이 되는 '소유'와 '위계'를 가르치기로 했다.


"J야, 여기에 있는 것 중에 네 것은 없어. 모두 고모, 고모부, 오빠 꺼야. J에게 빌려주는 거야. 그러니까 오빠랑 동생한테 '내꺼야'라고 하지 않아.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건 절대 뺏지 않아."


"J야, 오빠가 먼저고 그다음이 J 차례야. 그다음에 J동생 S이고. J는 '아기'가 아니고 '언니'야."


자신을 늘 '아기'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지적이었다. 19개월 차 동생에 대한 시샘과 스트레스로, 동생은 '아가'이며 자신은 '아기'라고 지칭하며 온갖 애기짓을 하는데, 4살이 된 지금까지도 애기 같은 '유아독존'이 멈추지 않는 것이다. 이에 반해 '동생이 필요 없음'을 표방하는 우리 아이는 큰 조카와 22개월 차이인데 어려서부터 동생(큰 조카)을 챙기고 양보하며 칭찬받는 것을 즐기는 아이였다. 동생이 있음으로 인한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진즉에 경험한 터라 친구들이 '동생 낳아주세요'를 외치는 시기에도 우리 아이는 '괜찮다'라고 했다. 그런 두 아이를 보고 있자면 당연히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유아독존'이 아님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더는 '아기'가 아님을 인지시켜줘야 했다.


그다음에는 매사에 징징거리는 습관을 고쳐줘야 했다. 사소한 것에도 울음보를 터트리거나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지르는 통에 내 귀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예전에 우리 아이도 울며 말할 때가 있었는데 '엄마는 겸이가 울면서 이야기하면 알아들을 수가 없어. 울음 그치고 이야기하면 도와줄게'라고 이야기했더니 서서히 고쳐지기 시작했다. '뚝!'하고 엄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의 울음을 컨트롤했다. 조카에게도 동일하게 설명했는데 듣는 척도 하지 않는다. 결국 내 목소리가 올라가고 '곰지 온다'를 소환하고서야 겨우 들었다.


입도 엄청 짧았다. 입에 대어보지도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간식을 먹는다고 해놓고 막상 열어주면 입만 대보고 항상 남기기 일쑤였다. 입이 짧은 걸로 둘째가라면 서운한 우리 아이에게 대적할 강적이 나타났다. 우리 아이는 설득하면 받아들이고 식판을 치우면 용서를 구하며 어떻게든 먹는데, J는 설득이 통하지 않는 고집불통이었다.

식사를 하지 않으면 간식을 주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우리 아이와 돌쟁이에게만 간식을 주고 J에게는 주지 않았더니 그제서야 밥을 먹겠다고 했다. 몇 번 반복을 하니 입을 여는데까지는 불완전한 성공을 거뒀다.


"J야, 밥 먹지 않으면 아이스크림도 못 먹는 거 알지? 한 수저 우선 먹어보고 안 먹겠다고 말하는 거야. 먹어보지도 않고 안 먹겠다고 하면 안 돼."


실물 아이스크림을 내보이며 유인했더니 입을 벌렸다. 그리고 맛있다며 식탁에 앉았다. 이렇게 훈련을 하다 보니 배변도 좋아졌다. 집에서 지낼 때 변비로 매우 고생하던 아이였다. 지금은 먹고 싶은 간식이 눈에 보이면 " 이건 밥 먹고 나서 먹을 수 있어. 고모! 밥 먹고 나면 이거 주세요."라고 이야기한다. 장족의 발전이다.


"J야, 이거 다 먹지 못하면 지금 먹지 말고 이따가 먹어야 해. 지금 다 먹을 수 있니?"


양을 조절해서 줄 수 있지만 언제든 입만 대고 남기는 습관은 고쳐야 한다. 이 역시 몇 번 연습하니 남김없이 다 먹었다. 그 후로는 아이의 성취감을 위해 몰래 따라내고 주었고 크게 칭찬해주었더니 남기는 건 싹 고쳐졌다. 성공!


마지막으로 나를 미치게 하는 것 하나는 취향 고집이었다. 물 한 잔을 줘도 "나는 로기색 컵에 물을 마실 거야"라고 하는데, 한가할 때야 얼마든지 들어주겠지만 바쁠 때는 정말 쥐어박고 싶다. 다음번에 주겠다고 해도 불통이다.

머리를 삼발 해서 돌아다녀 묵자고 하면 싫다고 머리를 흔들어대며 거부하기 일쑤이고 옷을 입힐 때 내복 하나까지 색깔을 골라야 한다.

일일이 자기 취향만 고집하고 분위기 파악 못하고 떼쓰는 것을 보면, (평소에도 그렇지만) 딸 가진 엄마가 절대 부럽지 않다. 나풀나풀 엘사 드레스만 입겠다고 고집부린 아이를 보며 엄마 속이 얼마나 터질까 생각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내 아이가 아들이라 그런 건지 기질이 순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주변 엄마들의 증언을 들어본 바, 딸 키우는 일이 더 손이 간다는 말이 이런게 아니었을까 싶다. 비록 '결국 효도하는 건 딸이다'라거나 '아들이 사고 치면 규모부터 다르다'라는 말을 듣지만, 난 지금으로 만족이다. (자식에게 효도를 바라지 않는다. 단연코.)



세 아이를 돌보는데 필요한 것은 단연 훈육뿐만은 아니다. 씻기고, 먹이고, 재우는 가장 기초적인 것들에 보호자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첫날은 친정엄마와 나 모두 멘붕이었다. 우르르르 뛰어다니고 와글와글 떠드는 아이들 사이에서 하나하나 밥을 먹이려면 그 또한 노련함이 요구되었다. 엄마가 밥 준비를 하시는 동안 나는 아이들을 통제했고, 식사 준비가 끝나면 엄마는 우선 돌쟁이부터 안고 앉아 먹이신다. 그럼 나는 두 꼬마들의 반찬을 챙겨서 자리에 앉게 하고 돌아가며 밥 숟가락에 반찬을 얹어준다. 입 짧은 두 아이는 '먹다가 딴청'은 필수로 피운다. 그나마 경쟁구도를 만들어야 하나라도 속도를 낸다. 눈치 빠른 우리 아이가 주로 먼저 식사를 끝낸다.


돌쟁이가 가장 먹성도 좋고 치카도 좋아한다. 먼저 식사를 마친 돌쟁이에게 칫솔을 건네주면 단맛의 치약 때문에 '꺄아~'라며 좋아한다. 큰 조카도 이에 질세라 자기도 칫솔을 달라고 하면 얼른 건네주고 우리 아이부터 양치를 시킨다. 양칫물을 헹구고 세수까지 시켜서 친정엄마에게 토스하면, 엄마가 로션을 발라주신다. 그 사이 나는 큰 조카와 돌쟁이를 씻긴다.


그러고 나면 곧 잘 시간인데 큰 아이 둘은 내가 데리고 자고, 돌쟁이 막내만 엄마가 업어 재우신다. 책을 읽어주거나 큐브로 동화를 보여주거나 자장가를 불러주며 재운다. 12시간 꼬박 채워 논 아이들이라 다행히 금세 잠이 든다. 돌쟁이 막내는 쪽쪽이를 물려 업으면 기절하듯 금방 꿈나라로 간다. 그제야 씻고 좀 쉴 여유가 난다. 운이 좋으면 보통 9시, 그렇지 않으면 10시 경이다.


여름이 아니라 매일 목욕을 시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다행이다. 하지만 최소 2~3일에 하루는 씻겨야 해서 그때도 난리난리난리통이다.


우선 큰 아이 둘을 먼저 욕조에 넣고 차례대로 머리를 감긴다. 이 때는 잘하는 우리 아이를 모델로 감겨 보여주면 조카도 질세라 따라 한다. 다행이다. 그리고 둘이 물속에서 노는 사이, 돌쟁이를 세면대에 담가 씻긴다. 날쌔게 뛰노는 아이라 다행히 잘 선다. 돌 무렵의 우리 아이를 씻길 때는 그렇게 조심스럽고 힘들더니 이제는 껌이다. 물을 붓는 것도 우악스럽다. 역시 아이는 둘째 키우듯 키우라는 말이 진리인 것 같다. 아무튼 막둥이를 씻겨서 로션까지 발라 내보내면 기저귀를 채우고 옷을 입히는 것은 친정엄마 몫이다. 철저한 분업구조이다. 그동안 나는 나머지 아이들을 차례로 씻기고 말리고 로션을 발라 순서대로 내보내면 된다. 마지막으로 욕실을 정리하고 나와서는 드라이어로 아이들 머리를 말려줌으로 목욕은 완전히 끝이 난다.



옛날 어른들은 아이를 그렇게 많이 낳아 어찌 다 키웠을까. 하물며 현재에도 다둥이 엄마 아빠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걸까. 내 생활이 없어지고 아이들이 잠이 든 후에나 휴식할 수 있단 건데. 정말 존경스럽다.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차라리 다시 출근하고 싶은 욕구가 뿜뿜 솟아오른다.


둘째는 계획도 없지만, 정말 생겨서도 안 되겠다. 이제 좀 살 만 해질 만큼 키워놨는데 여기에 다시 나를 갈아 넣을 순 없다. 물론 한때 꿈꿨던 입양도 나는 하지 말아야 할 사람이란 것도 깨달았다. 내 아이와 자꾸 비교를 하게 되고, 미운 마음마저 드니 말이다. 피 섞인 조카들에게조차 이런데,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아이와 우리 아이를 공평하게 키우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철저한 동정심이 아니고서야 말이다. 보육기관 선생님들의 고충도 새삼 이해가 갔다. 색깔이 다른 여러 아이들이 모두 제각각 자기 방식만 고집한다면, 인간인 이상 사랑만 해주기 어려울 것 같다.


우리 아이 하나 잘 키우고, 내 삶이나 잘 챙기며 살아야겠다. 오면 반갑지만 가면 더 반가울 조카들아! 남은 시간,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살 부비며 잘 살아보자.


애 셋, 전업보모!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라며~


목욕 후엔 뭐니뭐니해도 요구르트 한잔이 최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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