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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Jul 29. 2019

그놈의 '밥'이 뭐길래



"나도 이제 엄마 건강에 신경 끌 테니까, 엄마도 내 건강에 신경 쓰지 마요!"


부아가 치미는 것을 끝내 참지 못하고 친정엄마에게 내뱉어버렸다. 그동안 엄마에게 신세 지는 것이 미안해서 별말 없이 지냈는데 이번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거다.


버럭질 하는 내게 엄마는 "내 입으로 내가 걱정하는 건데, 내가  걱정을 하든 말든!"이라며 유치하기 짝이 없는 대답으로 응수를 한다.


중간에서 난처해진 남편만 어쩔 줄 몰라하며 망부석처럼 앞만 보고 앉아있다.




발단은 이러하다. 최근에 엄마가 몸살감기에 걸리셨다. 빈도상 한 달에 한 번 정도 꼴로 그러신 듯하다. 연세가 있는 분들은 이럴 때 링거를 맞는 것이 약이나 주사보다 효과가 빠르다. 우리 엄마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이렇편찮으실 때는 링거를 맞으러 가자고 하는데 그때마다 황소고집이다.

"다음에 갈게."

늘 이런 핑계로 병을 키워가는 엄마를 보고 있으면 안쓰러운 마음보다는 답답함이 앞선다.


그렇다고 내색을 안 하는 분도 아니다. 하루 종일 방안에 싸매고 누워 앓는 소리를 내시면서 도대체 왜 안 가려고 하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돈 걱정도 아니다. 실비보험을 청구하면 자기 부담금 1만 원을 제외하고 그대로 돌려받는 비용임을 모르시지 않는다.


주말부부로 나 혼자 아이를 케어하는 것이 안쓰러워 근처로 이사까지 오셔서 손주를 돌봐주시는 부모님이시기에 항상 미안한 마음이라, 이렇게 몸살이라도 날라치면 죄인이 된 심정이다. 그런 자식 마음을 왜 그렇게 헤아려주지 않으실까 마음이 상한다.


병 한번 날 때마다 링거를 맞으러 가자는 실랑이를 최소 3번은 해야 한다. 어린아이 달래는 것도 지치는데 엄마까지 꼬셔야 하니 내 팔자 왜 이렇게 애달픈가, 하는 생각에 다다르자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게 버럭질을  남편과 밖에 나왔다. 남편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엄마가 그러셨는데... 딸은 엄마에게 가깝다는 이유로 할 말 안 할 말 가리지 않고 해서 상처를 많이 준대. 엄마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많이 후회하셨다고 하더라고."


"애도 아니고, 한 두 번도 아니고 왜 그렇게 고집을 피우시나 몰라. 효과가 없으면 몰라. 당신도 맞고 나면 기운이 금방 회복된다고 하시면서 도대체 왜?"


선글라스를 쓰고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참았던 눈물이 왈칵, 하고 쏟아졌기 때문이다. 아마 애증의 눈물 이리라.


남편은 '싫으신 다른 이유가 있겠지'라며 말끝을 흐리고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었다. 사소한 볼일을 보고 들어가려는데 남편이 달달한 라도 사서 들어가자며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지금 밥 차릴까 하는데 올라와서 밥 먹어."


남편이 전하지 않아도 대화 내용이 다 건너 들린다.


대단하다. 그 와중에도 밥타령이라니.


엄마의 밥은 정말 '밥'을 의미한다. 다른 무언가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아니다. 밥을 안치고 국을 끓이고 생선을 굽고 갖은 반찬을 내야 하는 번거로운 상차림의 '밥'말이다.


"점심인데 대충 간단하게 먹지, 뭘 또 귀찮게 차리신대? 진짜 못 말려."


어차피 혼잣말 격 푸념이기에 남편도 답이 없다. 남편이 말한 달달한 것을 사고 있는데, 다시 엄마의 전화가 온다.


"그냥 간단하게 먹어요. 괜히 차리지 말고."


남편이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딸이 엄마한테 그렇게 말하면 돼?"


못 들은 채 한다. 나는 지금 엄마에게 화가 나있다고. 내가 지금 엄마 밥이 먹고 싶겠냐고.


그렇 엄마 밥을 물리고 나서 비빔면을 끓여먹었다. 눈물 나게 매웠다. 아, 진짜 내 기분 같네!



엄마의 밥 집착은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전에도 남편 아침밥 챙겨주라 당부하시기에 알았다고 하고 대충 챙겨 먹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확인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나는 솔직하게 대강 먹었다고 이야기했고 엄마는 대뜸 화를 내셨다. '밥'을 안 챙겨 먹이고 대충 먹었냐고 말이다.


가 혼나야 할 일인가를 판단하느라 대답을 잠시 헤맸다.


주말밖에 못 보니 그때라도 잘 챙겨 먹이라는 논리이신데 나도 직장인이라 평일에 바쁘고 주말에 쉬고 싶다. 챙겨 먹이라는 말부터 삐딱하게 들린다. 게다가 남편은 간헐적 식으로 아침을 거르기 시작한 지 좀 되었다.


"우리 아침은 우가 알아서 먹는다고 했잖아요."


그러자 엄마는 되레 '기분 언짢은 일 있었냐'며 말간 목소리로 물어오셨다.


"왜 밥 안차려 줬냐고 엄마가 먼저 신경질 냈잖아. 어떻게 먹든 먹기만 하면 되는 거지, 챙겨줘라 마라 하냐고요."


쏘아붙이는 내게 엄마는 무안한 듯 사과를 하셨지만, 그래도 나는 성이 풀리지 않았다.


그날 오후 시부모님을 만날 일이 생겼는데 시어머님께서 엄마께 신세 지고 있으니 특별히 더 잘하라는 말씀을 하시기에 아침의 일화를 들려드렸다.


"엄마들은 왜 그렇 '밥'에 집착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정말이지 우리 엄마가 시어머니였다면 당신 아들 아침밥 챙겨 먹이라는 잔소리로 들려서 속으로 욕했을 거 같아요."


라고 말하자 시어머님은 흠흠, 이라목소리만 가다듬으셨다.


''이 좋고 '집밥'이 좋은 거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밥만 하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상황에 따라 가족 구성원이 익스큐즈한 식사 스타일도 인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날 오후 엄마는 마트에 다녀오신다고 했다. 그리고 저녁 즈음 전화를 하셔서 밥만 좀 준비해 놓으라고 하셨다. 남편이 부리나케 엄마 집으로 달려갔고 엄마와 함께 두 손 가득 따뜻한 반찬들을 챙겨 왔다.


식탁 위에 올려놓는데 오늘의 첫 밥이라 그런지 냄새가 기가 막힌다. 사위 먹이시려고 등갈비찜까지 해오셨다. 입에 넣어보니 뼈가 쏙 발라내지며 보들보들한 살이 녹아든다.


"오늘 첫 '밥'이라 그런지 되게 맛있네."


엄마는 그제서야 마음이 놓이신 듯 물어오신다.


"맛 괜찮아?"

"응. 진짜 맛있어요."


엄마와 나는 아침 버럭질 이후로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밥'은 단순한 한 끼 끼니를 넘어사과이며 사랑이며 걱정이며 위로라는 사실이다.



렇다고 오늘 이후로 나의 식사 스타일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엄마의 '밥'집착은 나도 인정하기로 했다. 그 역시 엄마의 스타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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