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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Sep 16. 2019

고마움과 미안함을 마음에 쌓는 일



이번 참에 좀 고쳐봐야지 싶었다. 단단히 화가 난 을 분명하게 내보인다. 6살은 입을 비죽이며 애써 울음을 참아낸다.


"겸이는 가족을 사랑하지 않나 보지."


애써 6살의 마음을 할퀸다. 동시에 나의 마음도 서늘해진다. 6살이 아플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시간을 준답시고 6살을 방에 두고 나온다. TV에 시선을 던져보지만 눈에도 귀에도 들어올 리 없다. 아무리 6살이라도 누군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놓고 편할 리가 없잖은가.


한참 동안 기척이 없는 6살이 궁금해진다. 할퀴어 댈 땐  언제고 이 무슨 심보람. 화장실을 가는 척하고 슬쩍 방안을 들여다본다. 6살은 매트 위에 엎드려있다. 다행히 울고 있는 것 지는 않다. 마음이 흔들릴 했는데 다행이다.


다시 소파로 돌아온다. 조금 있으니 6살이 문 밖으로 빼꼼 내다보는 모습이 보인다. 웃음이 난다. 하지만 꾸욱 참는다. 못 본 척하고 있으니 다시 얼굴이 빼꼼하니 나온다. 그제야 눈치챈 할아버지가 6살을 부른다. 냉큼 달려와 할아버지 무릎에 앉는다.

 

나는 6살을 피해 방으로 들어온다. 유치한 방법이라는 것을 안다. 6살은 내가 곳에 있음을 확인한 후 다시 소파로 돌아간다. 한참 후 에어컨을 끄는 소리가 들리고 TV 소리도 잠잠해진다. 거실 정리를 마친 6살이 방으로 들어와 내 옆에 조심스레 눕는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하다. 마치 부부싸움 같지만 아니다. 나는 6살의 엄마다.


이토록 차갑게 굴어도 살을 맞대고 눕다니. 6살! 너는 밸도 없는 거니? 남편이 떠오른다. 아내의 기분을 살피려 말 대신 슬쩍 살을 대어 보는 남편 말이다.



언제부턴가 아이는 미안하다는 말에 인색해졌다.


고의성이 없는 사고일 때 더욱 그렇다. 미안함을 느끼지 않아서가 아니라 미안한 일이 터졌을 때 상대의 반응에 얼음이 된다. 당황하는 아이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엄마는 아이에게 사과를 가르친다. 그 말투에 기가 눌리는지 아이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결국 엄마는 '왜 이러는지 몰라'라며 미안함의 대상에게 동의를 구한다. 이 순간 아이는 철저하게 혼자가 된다.


안다. 사과를 하는 순간 '잘못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된다는 것을. 고의이든 사고이든 중요하지 않다. 잘하는 모습만 보이고 싶은데 잘못을 인정하려니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는다. 상황 탓으로 돌리며 에둘러 말하는 게 고작이다.


사람은 상대에게서 자신을 단점을 목격할 때 그 모습을 증오한다. 방어기제이다. 포르노에 중독된 사람이 앞장서서 포르노 반대를 외치는 예와 비슷한 맥락이다. 내가 그토록 화가 났던 건 아이의 모습에 내가 보여서이다. 나의 옹졸함이 싫은모습이  아이에게 오버랩되어서이다.



팔로 6살의 배를 감는다. 6살은 숨을 토해내며 내 팔을 잡는다. 긴장했던 마음이 조금은 나아져서이리라.


"엄마, 이제 괜찮아?"


6살은 제 엄마가 어찌 굴어도 엄마를 사랑하고 있구나. 눈물이 왈칵 나버렸다.


"엄마, 왜 울어? 나 때문에 아직도 속상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미안해서 말을 못 하겠다.


남편이 있다면 좋았을 텐데. "에이, 그러지 말아", "괜히 또 그런다. 나중에 후회할 거면서."라며 중재해줬을 텐데. 남편 말이 딱 맞다. 나는 지금 후회하고 있다. 나쁜 인성 바로잡는답시고 약자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었음을. 감정의 폭주를 제지해 줄 남편이 없어, 이 지경을 만들었다. 아무리 잘못해도 둘 중 하나 무조건 아이 편에서 지지해줘야 하는데 약자에게편이 없다. 상대도 안 되는  어른의 잔혹한 말에 아이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연다.


"엄마는... 겸이가... 바르고 착하고 건강한 아이였으면 좋겠어. 그런데... 겸이가 미안한 일을 하고도 안하다고 하지 않을 때는... 엄마가 겸이를 잘못 키우고 있는 건가 걱정이 돼..."


"엄마 그런 말 하지 마... 나도 눈물 나잖아."


6살은 나를 꼬옥 안는다. 나는 체면도 안 차리고 훌쩍이고는 화장실로 달려가 세수를 한다. 이렇게 감정에 치여서 어떻게 믿음직한 엄마가 될까 싶어 서둘러 정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이에게 돌아와 담담해진 목소리로 묻는다.


"겸아, 근데 아깐 왜 그랬어?"

" 엄마, 나도 정말 모르겠어. 겸이가 그땐 정말 이상했던 거 같아."

"혹시... 할머니, 할아버지, 숙모, 삼촌, 동생들 앞에서 엄마가 화난 목소리로 말해서 속상했어?"

"엄마가 왠지 내 마음을 맞춘 것 같네."

"미안해. 그랬구나. 다음부터는 엄마가 조심할게. 엄마 용서해 줄 수 있어?"

"그러엄!"


다시 코끝이 찡해져 온다. 아빠도 없이 온몸을 엄마에게 의지하며 사는 아이인데 엄마는 이렇 늘 부족하다. 아빠 몫의 사랑까지 채워주지는 못할 망정, 엄마 사랑의 게이지마저도 때론 마이너스를 만들곤 한다.



아이스크림 할인점에 갔다. 아이스크림을 고르는데 한 무리의 초등학생이 들어왔다. 구석에 있는 정수기로 다가가서 벌컥벌컥 물을 마신다. 그리고는 또다시 들어왔던 우르르 문으로 나간다. 아이스크림을 사러 온 게 아닌가?


"여기서 물 마실 수 있게 해주셨나 봐요?"

"네. 축구들면 와서 마시라고요."

"그런데 고맙다는 인사도 안 하네요?"

"허허. 애들이 그렇죠."


아이스크림 아저씨의 호혜는 그 아이들에게 어느덧 당연함이 되어있었나 보다 싶었다. 무리의 아이들 중 누구도 아저씨에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지 않았을 뿐 아니 '안녕하세요'라든가 '안녕히 계세요'는 인사 조하지 않았다. '공짜 물 서비스'는 고객을 감동시키는 아저씨 나름의 마케팅 전략이기도 했을 테지만, 축구하다 힘들 아이들을 생각하는 아저씨의 배려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배려에 아이들은 함구했다. 생각이 많아졌다.


"겸아, 형아들이 물을 마시고도 아저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안 하더라. 겸이는 그 모습 보니까 무슨 생각이 들어?"



그날 저녁 아이와 몸을 담가 씻으며 아이의 마음을 살폈다.


"겸아, 어제 엄마가 속상한 말 해서 지금도 너무 미안해."

"괜찮아요. 엄마."


한결 마음이 놓인다.


이제 안다.

미안함을 전하는 일. 고마움을 내비치는 일. 가르치지 말고 내가 본을 보여야다는 것을. 


미안함과 고마움을 마음에 쌓는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다짐해보는 보통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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