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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Oct 12. 2017

남겨지는 기분은 항상 슬프다.

24. <기저귀 차고 제주 한 달> 17일 차




오늘은 남편이 돌아가는 날이다.


식사를 하며 석별의 아쉬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남편 또한 그러하겠지만, 내게 용기를 북돋는 말로 위로를 한다.


“삼시세끼를 찍는다고 생각해.
나는 어디까지나 게스트고, 꽃순이랑 겸이가 주인공이야.
그리고 삼시세끼는 게스트가 없을 때가 더 재미있어.”



무슨 말인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따가 있을 이별이 벌써부터 서글프다. 다행히 저녁 비행기라서 하루의 시간이 있기에 어디에 가면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편은 자기 스케줄을 고려하지 말고 계획을 짜라고 하는데 이왕이면 남편이 있기에 갈 수 있는 곳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난번 윗집 이모가 추천해주신 ‘레일바이크’를 타러 가기로 했다.


‘레일바이크’하면 떠오르는 건 정선이고, 허벅지가 후들후들할 정도로 페달을 밟아야 하는 그런 모습이 연상되어 조금 걱정되기도 했지만, ‘기찻길로 가는 자전거’라는 설명에 겸이가 아주 마음에 들어해서 망설이지 않고 선택했다. 검색해보니 ‘용눈이오름’ 쪽이다. ‘용눈이오름’은 ‘오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추천하는 1위의 오름’이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기대가 되었다.


잠깐 마당에 나갔더니 아침인데도 볕이 뜨겁다. 세탁기를 돌려 처음으로 빨래를 마당에 널어놓고 출발했다.



경로는 지난번 갔던 사려니숲길을 지난다. 그때는 뒤에 바짝 뒤쫓아오던 버스 때문에 너무 긴장해서 주변 경관을 즐길 여유가 없었는데, 오늘은 남편이 운전하니 다르게 보인다. 1112번 삼나무길은 차를 세우고 보고 싶을 정도로 운치가 있는 도로였다.


한참을 멋진 산속을 달리다 보니 이제는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을 지나 또다시 산길을 달리다 보면 저 멀리 예쁘게 봉긋한 오름이 눈에 보인다.



저게 용눈이오름이구나.


직감적으로 알았다.




오름 곁을 돌아 레일바이크 탑승장에 도착했다. 소셜에서 구매하면 3시간 후 사용 가능하다고 했는데 약 30분 정도 먼저 와서 바코드를 내밀었더니 별말 없이 표로 바꿔주었다.


탑승은 매시간 정시에서 30분 사이에 탑승하며 약 4㎞되는 구간을 반자동으로 달려 30~40분 정도 후에 도착한다. 우리는 2시 바이크 표를 받아서 탑승구로 갔다. 타려는 사람은 많았지만, 거의 기다리지 않고 탑승했다.



바이크 1대당 4개의 좌석이 있는데, 다른 팀과 합승은 시키지 않는 듯 보였다. 내가 겸이를 안고 탔는데, 어른만 벨트를 매라고 한다. 출발할 때와 도착할 때의 구간 몇 미터만 수동으로 페달을 밟고 나머지는 자동으로 움직이는데 특수상황이 생기면 핸드브레이크를 사용하도록 안내를 받았다.



총 두 개의 레일이 있다. 바이크마다 속도가 달라서 어떤 것은 우리보다 늦게 출발했으나 앞서 가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먼저 출발해도 우리보다 뒤처지는 것이 있었다. 옆 레일의 아저씨 말에 의하면 자동이어도 페달을 돌리면 좀 더 빨리 나간다고 하시는데 아무리 돌려도 헛발질을 하게 되는 것 같았다.



의외로 바이크는 여유롭고 좋았다.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힘들이지 않고 구경하며 사진도 찍고, 아이도 즐거워하는 그런 경험을 했다. 남편의 말처럼 어르신들이 오셔도 만족할 만한 체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볕을 받은 용눈이오름은 신비한 빛깔을 내며 나의 눈을 현혹시켰다. 어두운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의 모습 같다고나 할까. 빛을 받은 억새의 색이었겠지만, 그늘진 주변의 자연물 속에 유독 환한 빛을 받고 있는 용눈이 오름은 신비롭고 영롱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용눈이오름을 지나니 또 하나 꼭대기가 움푹 파인 모양의 오름이 눈에 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랑쉬오름이라는데 이 모습도 매력적이었다.



가끔씩 고속으로 하강하는 구간이 있다. 혹시나 겸이가 무서워할까 봐 꼭 안아주었는데, 무서워하기는커녕 “재밌어. 재밌어.”를 노래로 지어 부른다. 그 모습을 카메라 영상으로 담았는데, 나중에 보니 촬영 시 음소거가 되어 있어 참 아쉬웠지만 말이다.



한 바퀴 돌고 나서는 승강장 근처에 있는 동물들을 구경했다. 말, 양, 흑염소, 토끼, 강아지, 새(공작같이 생겼는데 이름은 모르겠다. 겸이는 까투리라고 했다.) 등 다양한 동물들이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두 마리 말은 배가 고팠는지 겸이가 풀을 뜯어주니 주는 대로 잘 받아먹었다. 바로 옆에서 양들도 달라고 성화를 하기에 먹이를 주었는데 곁에 있던 흑염소 한 마리가 빼앗아 먹었다. 이후에도 흑염소는 뿔로 들이받으며 양에게 향하는 먹이들을 빼앗아 먹곤 했다.



조금 더 걸어가니 까만 토끼들이 무리 지어 살고 있었다. 너른 마당에서 여러 마리가 제각기 뛰어놀다가 판매 중인 먹이를 던져주면 쪼르르 모여든다. 그 가운데에는 먹이엔 관심이 없이 앞다리, 뒷다리 모두 쭉 펴고 엎드려 쉬고 있는 귀여운 토끼도 있다.



우리에게 깡깡 짖어대는 강아지 두 마리 옆에 있던 장난꾸러기 보스턴테리어 한 마리가 우리를 보고 다가왔다. 장난꾸러기라고 표현한 것은 앞서 바이크를 타고 들어올 때 자기 집 지붕에 올라 장난치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단단한 외모에 우리는 처음엔 멀찍이 서서 구경했다. 그런데, 남편이 손등을 살짝 내밀자 경계심 없이 다가와 냄새를 맡고는 이내 살가워하는 것을 보고 외모와 다르게 순한 녀석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빠가 손을 내미니 아이도 겁내지 않고 자기 손을 가져다 댄다. 아무리 개를 좋아해도 처음엔 겁을 내기 마련인데, 서스름 없이 제 아빠를 따라 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용감해졌구나!”라고 칭찬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 녀석도 기분이 좋았는지 우리에게 점프 묘기를 보여준다. 우리 모두 함성을 지르고 또 보여 달라고 졸랐더니 몇 번을 연속해서 보여주었다. 카메라에 담고 싶었는데 셔터 속도가 느린 관계로 겸이가 뛰는 것만 찍혔다.



차로 가려는데 아이가 어떤 계단을 오르기에 따라갔더니 전망대였다. 아이 덕에 눈앞에 막힘이 없는 용눈이오름과 다랑쉬오름을 구경할 수 있었다.       





아침을 먹고 출발했지만, 점심 치고도 늦은 시간이다. 근처 식당을 찾아보니 ‘명진전복’과 ‘황금륭버거’가 나오는데, 우리는 전복요리가 당겼지만 씹어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겸이는 안 먹을 것 같아서 버거 쪽을 선택했다. 출발할 때는 분명 10㎞이내였는데 막상 출발하니 20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성산 쪽에 있는 맛집을 찾아갈 걸 그랬다며 투덜거리고 있을 즈음, 성읍의 황금륭버거집에 도착했다.



예전에 얼굴만큼 커다란 버거라고 TV에서 본 적이 있는 듯한데, 여기가 본점은 아니라고 했다. 우리 동네에 있는 ‘요리하는 목수’라는 버거집도 여태 못 갔는데 '여기 와서 버거라니' 하면서 들어간 곳은 이미 마감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동절기에는 4시 반이면 마감을 한다는 것이다. 마감이 빠른 식당이 있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빨라도 이리 빠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해도 빨리 지고, 더 오래 있어봤자 요즘 같은 비수기에는 손님도 없어서 일찍 문을 닫는다고 했다. 그나마도 주변엔 아직 태풍의 피해로 오픈하지 못한 가게들도 많다고 한다. 특히 중산간 쪽엔 전기 복구도 안 되었다고 하니 생활들은 어떻게 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들은 바로는 제주시와 서귀포시 간의 약간의 알력과 견제가 있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제주시 위주로 발전시키다 보니 서귀포시는 발전도 더디고, 지원도 적어 불만의 목소리가 많다는 것이다. 애월의 우리집만 봐도 당일 오후쯤엔 모두 복구가 되었는데, 서귀포시는 아직도 전기가 안 들어온다 하니, 당연히 주민들이 부당함을 호소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홀 주문은 안 되고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다 했다. 홀 버거가 3~4인용으로 2만 2천 원인데, 분명 우리는 다 먹지 못할 것 같아 2인 커플 버거를 주문했더니 절반 사이즈로 1만 2천 원인 데다 세트로 구성된 샐러드는 포장이 안 된다고 했다. 야채가 많이 들어간 버거라는데 저녁에 풀이 죽은 채로 먹느니 조금 부족하더라도 커플사이즈가 낫기에 그것으로 주문했다. 그리고 수제로 만든 에이드라 하기에 자몽에이드도 하나 사서 차 안으로 가져왔다.



버거는 4조각으로 커팅하여 포장해 주었는데, 남편의 말대로 심심한 맛인데 질리지 않는 맛이라 계속 먹게 되었다. 아이는 고기만 빼서 먹고는 나머지는 떡으로 배를 채웠다. 에이드는 막상 맛보니 테이크 아웃해서 먹기엔 가격 대비 비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황금륭이라는 말은 높은 언덕이라는 중국어라는데, 중국어 전공자인 내가 들어도 전혀 유추 불가능한 말이다. '아마도 대만어나 홍콩어로 발음한 것이려나' 하는 생각을 하며 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러기엔 시간이 좀 남는다. 공항 근처에서 갈 만한 곳을 찾다가 어영공원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용두암 근처 용담해안도로에 위치한 근린공원인데 사진 상으로는 바다에 면한 놀이터도 있고, 잠시 머물기에 좋을 것 같아 목적지를 어영공원으로 바꿨다. 남편이 졸려하기에 교대운전을 했는데, 제주시에 들어서니 차가 꽉 막혔다. 목적지가 10㎞인데 걸리는 시간은 30분이라니 정말 제주시내의 교통대란은 심각하다. 어쨌든 도착한 용담 해변도로는 주변에 카페와 음식점이 즐비해 있었지만 바다만큼은 일품이었다.




검은 바위로 부딪히는 파도와 일몰로 물든 빨간 하늘이 장관을 연출했다. 이호테우처럼 공항 근처의 제주바다는 주로 일몰이 예쁜가 보다 생각하며 놀이터를 찾는데 보이질 않았다. 이번에도 네비가 근처까지만 안내하고 종료해 버린 모양이다. 시간이 있었으면 다시 찾아볼 테지만, 우리에겐 30분 정도의 시간밖에 없기에 근처를 산책하면서 낚시하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떨어지는 낙조를 보며 발길을 돌렸다.



건너편 ‘새콤달콤’이라는 주황색 카페가 어둠 속에 눈에 띄었는데 겸이도 그걸 보더니 가보고 싶어 했다. 화장실도 오래 참은 터라 겸사겸사 길을 건너 찾아갔더니 한쪽에 아이들 놀 수 있는 놀이터와 오락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덕분에 겸이에게 ‘바닷가 놀이터에 간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아이는 예상대로 나가고 싶어 하지 않았고 이에 남편은 택시를 타고 갈 테니 여기에서 더 놀고 가라 한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미안하고 아쉽다. '남겨지는' 기분은 여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차를 혼자 뺄 수 없다는 핑계로 남편과 함께 공항으로 갔다.




수속을 마치고 나니 오히려 탑승시간까지 1시간 정도 남았다. 생각보다 여유가 생겨서 저녁이라도 먹일까 싶어서 4층으로 올라갔는데 아이가 배가 안 고프다는 것이다. 차라리 여유 있게 집에 가서 먹이기로 하고 1층에서 우리는 아쉬운 이별을 했다. 공항에 남편을 '남겨두고 떠나는 기분'은 '남겨지는 슬픔'보다는 참을 만했다.


남겨지는 기분은 항상 슬프다.


떠나는 사람과 남겨지는 사람이 동시에 이별을 경험해도, 떠나는 사람은 '순간만' 슬프면 되지만, 남겨지는 사람은 함께였던 장소에서 떠나간 그 사람만 없기 때문에 그 슬픔이 더 오래갈 수밖에 없다. 함께 나눴던 기억과 분위기를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기에 더 서럽다. 결혼기념일 차, 예정에 없던 깜짝 방문이지만, 모든 것이 '리셋'된 기분이다. 내일이 오면 또다시 제주에 남아 있을 날이 점점 줄고 있음에 아쉬워하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잠든 아이를 안고 들어오는 집 안이 유독 쓸쓸하다.




Epilogue

내일 일어나면, 아이는 또다시 아빠가 어딨냐고 찾겠지. 분명 공항에서 빠이빠이했는데, 요 며칠 일어나면 눈앞에 아빠가 있었고, 엄마가 지쳐서 누워있어도 놀아줄 아빠가 있었기에 그 기억만 안고 아빠를 찾을 것이다.

아빠와 헤어진다는 말을 했을 때, “아빠 더 보고 싶은데...”라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어쩌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는 아이로' 성장시키고 싶은 욕심 때문에 이 곳에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냉정하게는 우리에게 닥칠 주말부부의 인생에 대한 연습생활이기도 하다며 자위하면서도, 정말 이렇게 떨어져 사는 것이 일상의 삶이 된다면, 매번 헤어질 때마다 겪게 되는 부자간, 부부간 아쉬움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막연히 가족이 떨어져서 사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 오다가 이렇게 직접 생이별을 해보니 남편도 ‘내가 회사를 옮겨야 하나.’하는 말을 내뱉을 정도로 서럽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주말부부는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지만 가능한 삶이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하는 사람들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오히려 그게 편안한 듯 살아질 날이 과연 올까 싶다.      

 {오늘의 가계부}
레일바이크 입장권 2인 약 1.8만 원(소셜 구매 3시간 후 사용 가능)
황금륭버거 1.8만 원(절반 사이즈 1.2만 원 +자몽에이드 6천 원)
새콤달콤 생망고주스 6.5천 원 공항 편의점 2.5천 원
공항주차료 600원(30분)




Today's meal     

-조식: 된장국 +고등어구이 +햄구이

-중식: 햄버거 +꿀떡  

-석식: (일찍 잠들어 거르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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