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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terrace Nov 01. 2017

내 생애 최고의 낙조를 보았다.

30. <기저귀 차고 제주 한 달> 23일 차




어제에 이어 오늘도 눈이 떠지질 않는다. 아이가 노래를 불러도, 눈을 좀 떠보라고 애원해도 일어나지를 못했다. 지치도록 깨우는 엄마와 무섭도록 안 일어나는 아이. 남들의 아침일상은 이렇다는데 우리에겐 그 입장이 바뀌었다. 


“엄마, 이것만 읽어주고 코 자요.”라는 말에 얼른 눈을 떠서는 대충 한 권 읽고 또 다시 벽쪽으로 굴러가 배게 속에 얼굴을 파묻는다. 조금 있다가 아이는 같은 방법으로 나를 달랜다. 노래도 불렀다가 저 혼잣말도 했다가, 이제는 지쳤는지 깨우기 텀이 조금 멀어졌는데, 막상 아이가 조용하니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눈을 떴다. 


도대체 몇 시인데 나를 이렇게 깨우나 하고 휴대폰 시계를 봤더니 9시가 다 되어간다. 부랴부랴 일어나서 미안한 마음에 책을 한 권 읽어주고, 얼른 밥을 앉히고, 소시지를 물에 데치고, 3분카레를 데웠다. 순한 맛으로 샀지만 혹시나 매워서 안 먹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먹였는데 의외로 잘 먹는 거다. 집에서 혹시 매울까 싶어 우유 넣고 치즈 넣고 해줬을 땐 분명 몇 숟갈 안 먹었는데. 앞으로 너는 3분카레다. 



오늘은 하루종일 비 예보가 있다. 


도서관을 갈까 카페를 갈까 마음속으로 고민한다. 아이에게 물어봤자 당연히 도서관을 가자고 할텐데 어쩐지 오늘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주기가 조금 귀찮은 마음이 든다. 눈만 뜨면 책부터 읽으라고 하니 나도 살짝은 피하고 싶은 생각도 들고, 한편으론 얼른 글을 가르쳐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글을 최대한 늦게 가르칠 예정이다. 자기가 일찍 배우려고 하면 도리가 없지만, 가급적이면 아이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맘껏 발휘하며 책을 볼 수 있도록 글은 최대한 늦게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핀란드 교육방침은 이런 나의 생각을 뒷받침 해준다. OECD 국가 중에서 언어능력이 가장 뛰어난 나라가 핀란드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핀란드에서는 8세 이전의 글자교육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너무 이른 나이에 글자를 익히면 아이들은 글자를 그림으로 인식해서 외운다. 문법과 철자를 외우는 좌뇌는 3세 때 발달하기 시작해 7세 이후에 본격적으로 발달되기 때문에 7세 이후가 글자를 배울 수 있는 최적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이유는 우뇌의 발달시기와 관련이 있다. 우뇌는 6세 이후부터 퇴보를 하기 때문에 7세 이전에 좌뇌를 키우는 읽기교육보다 우뇌를 키우는 감각자극이 더 필요하다. 이에 뇌과학자들이 제안하는 최고의 조기교육은 부모와 함께 보고 느낄 수 있는 교육환경이라고 한다.





현관문을 열었더니 아이는 밖에 나가고 싶어 하기에 신을 신겨 내보냈다. 보슬비가 살짝 내리고 있었다. 아이는 비 맞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마당을 둘레둘레 살피며 돌아다녔다. 


“엄마, 귤이 왜 노래요?” 


우리가 막 이곳에 왔을 때는 녹색이던 귤이 어느새 노란 빛을 띄고 있었다. 



“그렇네. 그새 벌써 노래졌네. 햇님이 햇살을 많이많이 줘서 귤도 무럭무럭 자란거야. 겸이가 밥을 잘 먹고 무럭무럭 자라는 것처럼.” 


멍멍이에게 가서 인사를 하고 자기가 색칠한 전복껍질도 만져보고 집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 영 없는 모양이다. 


“겸아, 손바닥을 이렇게 펴서 하늘에 대 봐. 비가 오는지는 이렇게도 알 수 있어.”




“엄마, 비가 떨어져요.”


“그렇지? 우리 들어갈까?”


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래서 우산을 내어줬더니 쓰고 한참을 강아지처럼 돌아다닌다. 엄마도 한 번 써보라고 건네주기도 하고 거미줄에 내려앉은 영롱한 물방울을 바라보며 신기해하기도 한다. 




그러고 나니 이미 1시다. 

나만 그런지 몰라도 시간이 너무 지체되면 하려던 것도 하기가 싫어진다. 아이 낮잠시간도 다가오고 그냥 재울까 싶어서 “겸아, 엄마가 업어줄까?”하고 물으니 싫단다. 나가는게 좋다기에 옷을 입혀서 차에 태웠다. 일단 가까운 베이커리 카페라도 가서 빵이라도 먹이고 재울 심산으로 출발했더니 역시나 바로 잠들었다. 



차를 돌려 대문 앞에 주차하고는 잠시 망설였다. 집에 들어가서 편히 재우고 나도 잠시 쉬는 게 나을지, 이왕 준비하고 나온 김에 계획했던 곳에 가는 게 나을지 고민은 엎치락뒤치락 했다. 그러다가 이제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집에서 아이 재우는 일은 이곳 제주가 아니어도 할 수 있다. 돌아가서 이 시간을 되돌려 생각했을 때, '그 때 왜 집에서 잤을까 아이가 자더라도 한 군데라도 더 가볼걸' 하고 후회할 것 같은 마음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어제 집에 올 때 잠시 본 금능해변이 내내 마음에 남았는데, 비는 오지만 그곳을 가보고 싶었다. 비 오는 바다도 멋스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전에 점심 요기를 좀 해야겠기에, ‘그곶’이라는 카페를 찾았다. 북카페 분위기인 그 곳은 아이가 잠들었어도 데리고 들어가기 어려운 위엄 같은 것이 있었다. 


차에서 잠든 아이를 두고 분위기 점검 차 들어갔는데, 문에 걸린 이런 문구가 내 마음을 더 긴장되게 만들었다. 

‘이곳은 노키즈카페는 아닙니다. 하지만 키즈카페도 아닙니다’


다들 책 한권씩 들고 있을 뿐 아니라 말소리 조차 거의 들리지가 않아 도서관을 연상시켰다. 혼자 왔더라면 환호했을 카페이지만, 자는 아이를 데리고는 이 분위기가 괜히 미안하기도 하고, 편하게 뉘일 좌석도 없었다. 


직원도 딱히 불친절한 것은 아니지만, “자리는 저기 밖에 없어요. 몇 분이신데요. 드시고 가실거라면 저기에 차를 세우셔도 됩니다.” 등의 필요한 말만 하다 보니 ‘올 거면 오고 갈 거면 가라’는 방식의 대답이 아직은 익숙치 않은 나로서는 어쩐지 환대받지 못하는 손님 같은 느낌이 들어, 왠지 모를 불쾌감이 생겨났다. 


쫓겨나는 기분으로 나온 후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제주맘카페’에서 본 ‘카페반지하’라는 곳이었다. 네비 상으로는 뒷문 쪽으로 안내를 해서, 한 쪽 면이 바로 바다인 막다른 골목에 주차를 하고 잠시 방황을 했다. 자칫하면 바다로 추락할 수 있는 나로서는 위험한 후진을 해서, 다시 앞쪽으로 갔더니 금능포구가 있는 너른 땅이 있었다. 거기에 주차를 하고 다시 점검 차 들어갔더니 ‘사정 상 당분간 휴업’이라는 표지판만 덩그러니 문 앞에 붙어있었다. 세련되지는 않지만 그 곳 마당에서 아이와 놀며 바다를 볼 상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그런 곳이었는데 참으로 아쉬웠다. 



그래서 점심을 포기하고 그냥 금능해변으로 향하는 길에 ‘릴리스토리 카페’를 만났다. ‘릴리스토리’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한 켠에 컵케잌 카페를 운영하던 곳이었다. 뽀글머리 아내와 수염이 덥수룩한 남편 내외가 운영했는데, 겸이를 임신했을 때 처음 들렀다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아이를 낳고 다시 한 번 방문했던 곳이다. 다양한 컵케잌을 즉석에서 만들어주는데 모양도 예쁘지만 맛도 일품이었다. 계절메뉴가 항상 바뀌어서 갈 때마다 어떤 메뉴가 있을까 설레이기까지 한 그곳은 두 부부의 성(이 씨)을 따서 ‘리+리=릴리’로 지은 것이다. 우리 부부도 ‘릴리’라며 시그니처 컵까지 사서 왔던 그곳에 기대를 안고 들어갔더니 주인이 바뀌어 있다. 



“어? 주인분이 바뀌셨네요?”라고 했더니 바뀐지 오랜데 오랜만에 오셨나보다고 했다. 그래서 케잌 종류가 당근케잌 하나라고 했던 거였구나, 하며 지난 번 전화했을 때의 의문이 풀렸다. 뭔지 모를 서운함과 우리의 추억이 송두리째 사라진 것 같은 아쉬움이 동시에 들었다. 어쨌거나 이왕 들어선 거 식사라도 하고 가자 싶어서 아이를 차에서 내렸는데 그세 잠을 깼다. 


아이를 가게에 내려놓고, 브런치 세트를 주문하고, 화장실이 급해서 게스트하우스 화장실을 이용하고 나오는데 2층에서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무슨 일로 왔냐고 묻는다. 안 그래도 이곳의 추억과 그때 사장님의 살가운 태도가 그리웠는데, 그런 질문을 받으니 나 역시 유쾌한 감정은 아니었다. 마치 내 말을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어느새 내 뒤에 따라 온 그 남자분은 이곳 카페를 수선 중 인 듯 보였다. 


이윽고 찾아온 두 명의 여자 손님은 우리 테이블 옆에 자리 잡았다가 뭔가 불편한 듯 다시 일어섰고, 그 사이 음식이 나왔다. 커다란 접시를 놓을만한 커다란 쟁반이 없는지, 쟁반 위에는 달랑 청귤잼과 포크나이프 세트만 놓여있었고, 접시는 또 다른 손으로 들어야 했다. 계단을 오르는 사이 접시에 올려진 포도알 3개가 주르르 아래로 흘러 떨어졌다. 안 그래도 위태위태해 보이는데, 서빙도 안 해주면서 이렇게 두 손을 사용하게 하는 서비스에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셀프서비스의 개념이 이곳에선 손님에 대한 과한 요구로 느껴질 정도였다. 



주인은 포도를 주워서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서는 아래쪽에 자리 잡은 남자손님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사진이 멋있다며 먼저 말을 꺼낸 주인과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손님인지 옥상에 올라가 볼테냐는 권유를 몇 번 하더니 이윽고 그 남자손님과 밖으로 나갔다. 커피는 주문 시 테이크아웃잔으로 달라고 했는데 그 말을 기억하기는 커녕 식사와 함께 내어주지도 않아서 다시 한 번 얘기를 해야 했다. 아마 우리 외에 갑자기 손님 두 팀이 와서 그런 것은 정신이 없었을 것은 백번 이해를 한다. 하지만 사소한 것에 감동받는 고객의 입장에서는 사소한 것에 또한 실망을 하게 된다. 아쉬움이 많이 남는 방문이었다. 


비가 내려 습하고 더운 날씨에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온몸을 땀에 젖게 했다. 그 커피를 들고 드디어 금능해변에 도착했다.




신기하게도 해가 비치고 있다. 예보에 없던 일인데 역시 예보는 백퍼센트 신뢰할 수는 없다. 특히 제주에서는. 

어쨌든 이렇게 예보가 틀려주니 오늘은 참으로 감사하다. 


협재바다가 하얀 조개가루로 투명한 바닷물이었다면 여기는 까만 돌과 고운 모래가 조화로운 이국적 풍경을 자아낸다. 게다가 간조 때라 물이 빠져 촉촉하게 젖은 모래의 물결이 마치 사막의 연흔을 연상시켰다.

 


곳곳에 미처 도망가지 못한 수많은 다슬기, 소라게 등이 지천으로 널려있었고, 용천수가 솟아나는 해변 쪽 물과 그 사이의 모래섬 그리고 다시 바닷물이 있는 이색적인 경관이 연출되고 있었다. 



요 며칠 날이 더워 그런지 바닷물도 따뜻했다. 지난 주말 비가 온 후에 기온이 떨어져서 다시는 바다에서 놀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의 기회가 왔다. 차에 챙겨둔 래쉬가드를 갈아입혔더니 아이도 거침없이 물 속으로 들어간다. 



곽지과물해변처럼 까만 돌이 둘러싸인 곳에 모인 맑은 물에 발을 담그더니 이내 강처럼 흘러 고인 물에도 첨벙하고 들어온다. 나도 오늘은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부치고 함께 건넜다. 강 같은 물을 건너야만 저만치 앞에 있는 바다로 갈 수 있기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인그러기를 정말 잘했다. 



협재처럼 몇 걸음 걸으면 아이 엉덩이가 젖을 정도의 깊이가 아닌데다 물도 차지 않으니 아이는 제 발로 걸어들어갔다. 건너편에 비양도까지 있으니 더 멋진 그림을 연출했다. 협재처럼 북적이지 않으나 협재보다 근사한 금능해변에서 아이는 조개도 잡고 다슬기, 소라게 등도 잡으면서 원 없이 그곳을 뛰어다녔다. 지나가는 아주머니께서 “네가 제일 부럽다,”는 말까지 하셨을 정도이니 내가 보아도 과연 그렇다.


행복의 최고봉이 있다면 과연 여기가 아닐까 싶었다. 



모래가 잔뜩 묻은 손으로 엄마에게 악수를 청하는 장난꾸러기는, 해가 지고 있는 그 바닷가에서 이렇게 행복하게 뛰놀던 기억을 과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가끔은 “겸아, 엄마랑 이렇게 지낸 거 오래도록 기억해줄거야?”라고 첫사랑에게 나를 잊지 말라고 부탁하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애처롭게 의미 없는 질문도 던진다. 그럴 때마다 두 사람의 소중한 추억을 한 사람만 간직하고 남은 한 사람은 그것을 잊어가는 가슴 아픈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의 장면들도 떠올리면서 ‘나만 이 좋은 것을 기억하게 되겠지.’하며 마음이 쓰라리기도 한다. 



점점 물이 차오는데 저만치에서 한 아이와 아빠가 물고기를 맨 손으로 잡고 있는 모습이 보여 궁금해 다가갔다. 아마 양식장에서 도망나온 녀석 같다면서 물 속에서도 재빨리 도망치지 못하는 광어를 잡았다 놓아줬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겸이도 신기했는데 물릴 수 있으니 꼬리만 살짝 만져보라는 형아의 충고에 조심스럽게 꼬리만 만지더니 형처럼 꼬리를 잡지 못한 것을 내내 아쉬워 하는 모양새였다. 




석양이 비춘다.


바다를 거울삼아 그 찬란한 황금빛을 내뿜고 있는 그 바다 위에 우리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셔터만 눌러도 바로 그림이 된다. 이호테우의 낙조가 세련되고 도시적이라면, 금능의 낙조는 우아하고 농밀하다. 나는 감히 오늘의 낙조가 내 생애 최고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간단히 손발만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고는 푸드트럭에서 간단히 요기를 했다. 마약핫도그라는 걸 먹었는데 일반 밀가루반죽 대신 패스츄리 반죽을 돌돌 말아 입혀 튀긴 것으로, 여러번 튀겨서 그런지 겉옷 뿐 아니라 소시지도 딱딱하고 질겼다. 내 소중한 4천원. 흑흑. 


그 사이에도 아이는 자기가 잡은 게와 조개를 찾고 있다. 모래를 씻으러 갔을 때 깜빡하고 두고 왔더니 다시 찾아줘도 계속 확인을 한다. 집에 가서 이모한테 자랑하고 넓은 집 만들어주자고 했더니 흔쾌히 차에 탔다. 


돌아가는 길은 여러 번 다닌 길이라 조금 덜 긴장되었지만, 어두운 도로는 여전히 무섭다. 


집에 돌아왔는데 윗집에 불이 꺼져있다. 아이는 자랑은 못하고 빈집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집으로 내려왔다. 모래가 가득할 몸이기에 현관에서 바로 안아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끈적한 바닷물을 씻어내고는 바다생물의 집을 만들어 주었다. 


패트병을 가로로 뉘여 윗부분을 도려낸 다음 날카로운 부분을 테이핑하면 멋진 어항이 만들어진다. 거기에 잡아온 소라게와 다슬기, 그리고 조개를 쏟아부었다. 그렇게 보니 아이는 신기한지 연신 들여다 보고 있고 나는 그 사이 갈치를 굽고 맛살을 넣어 계란말이를 만들었다. 식탁 가운데 올려놓고 들여다보며 먹으니 입도 쩍쩍 잘 벌린다. 



밥을 먹고 있는데 윗집이모 의 정겨운 목소리가 들린다. “겸아~”하는 소리에 이모라며 반색하는 아이. 문을 열었더니 마카롱 두개를 내미신다. 중간점검 차 가스계량기를 보니 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서 알려주려고 오셨단다. 아이가 있어서 온수를 많이 쓰는데다 비온 후 새벽에는 날이 추운 듯해서 자기 전에 보일러를 틀어두고 잤더니 그런 모양이다. 추워질수록 가스비가 많이 나오는 것이 당연지사일 텐데, 올해 이곳 숙소를 시작하다 보니 이렇게 많이 나온 경우가 처음이라며 놀랄까봐 미리 알려주러 오셨다는 것이다. 아마도 애초에 전기료, 가스비 다 해도 10만원은 넘지 않을 거라고 말한 것이 마음에 걸리신 모양이다. 쥔장부부는 머리를 맞대고 당신들이 일부를 부담해줘야 하지 않을까 라는 대화까지 했다고 하니 참으로 마음 씀씀이가 고우신 분들이시다. 하지만, 쓴 만큼 나올 테고 많이 썼으면 많이 나오지 않겠는가. 지난 겨울에 집에서 지낼 때, 난방비만 50만원 나왔다고 괜찮다고 말했더니 조금은 안심한 얼굴로 올라가셨다. 



밥을 먹고 아이가 책을 읽어 달라 하기에 설거지하는 동안 기다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이는 정말 거짓말처럼 혼자 책을 들여다보며 기다렸다. 오늘도 아이는 이만큼 성장했다.               




Epilogue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아직 구하지 못했다. 오기 전부터 계속 살펴보고 있는데 저렴이 표는 거의 없기도 하지만 있어도 오전 표 밖에 나오지 않는다. 일요일이라 비싸기도 하고, 오기 전부터 유독 이 날만 매진인지라 무슨 연고일까를 생각해보니 ‘올레길 걷기 축제’의 여파인 듯 보였다. 오후 표는 나와도 1인 10만원인데, 이제 아이도 한 자리를 하는 월령이라서 금액이 만만치 않다.

남편과 상의해서 돌아가는 일자를 조정할까 하고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듣더니 우리 쥔장님, 괜찮으면 하루 늦춰서 월요일에 돌아가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비행기값이 1/3로 줄어든다. 우리 퇴실 당일 입실하는 손님이 있는데, 두 분이 함께 정리를 하면 된다고 하시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이러다가 정말 헤어질 때 부둥켜안고 우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오늘의 가계부}
릴리스토리 브런치 세트 1.25만원
푸드트럭 6천원 (마약핫도그 +아이 음료)



Today's meal

-조식: 카레라이스 +빵

-중식: 브런치 세트(닭가슴살(?)스테이크 +계란후라이 +식빵 +사과 +커피)  

-석식: 갈치구이 +맛살계란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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