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Quest for Mindfulness

순간 몰입의 매직

by Serene

딱히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오픈 된 공간에 글을 쓰기 시작한 여러 이유들 중 하나는 내가 추구하는 mindfulness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였다. (물론 그 외 그저 글쓰기에 좀 더 취미를 붙이고 싶기도 하고, 일기장에 아무렇게나 끄적거리는 글이 아닌, 조금 더 논리적이고 읽기 좋은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있고, 논문만 읽고 쓰다 보니 메말라버린 나의 감성을 회복 시키고 싶은 마음도 있고... :))


Mindfulness를 번역기로 돌려보면 '마음챙김'이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사실 이 개념을 완벽한 한국어로 번역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아마 각자가 다른 개념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그런 단어 이기도 하고.

나의 경우, Mindfulness를 '오롯이 나이기' 혹은 '순간 몰입'으로 이해하고 있다.


모든 인간의 최대의 적이자 평생 극복해야 하는 장애는 '불안'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존재 가능한 모든 이유로 부터의 '불안.' 그리고 적어도 나에게,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Mindfulness' 이다.

'불안'을 이겨내기가 어려운 이유를 다방면으로 생각해 보았다.


일단 인간은 본인의 '불안'을 알아채기가 힘들다. 알아채지도 못한 것을 어떻게 극복하겠는가.

또 대부분의 경우엔, 자신의 '불안'을 눈치 채더라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게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요즘처럼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되고, mbti 검사를 수시로 해가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려고 하는 시대에도 정말 자신의 내면에 있는 '불안'을 먼저 식별해 내고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나마 용기 있는 자들은 자신의 '불안'을 눈치 채고, 더 자세히 들여다 보고, 그제서야 인지하고, 극복해야겠다 마음 먹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참 아이러니 하다고 느끼는 것이, '불안'을 알아채고 인정한 이 '용기있는 자들'이 사실은 자신의 '불안'을 숨기고 평화로운 척 하는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거나 멸시 당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나도 나의 '불안'을 눈치 채지 못했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정말 몸과 마음이 바닥을 쳤을 때, 더 이상은 감추고 도망갈 곳도 없을 때, 쌓이고 쌓였던 나의 '불안'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은 그 전까지 '불안'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심리학자인 내 친동생의 '불안'에 대한 설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이 '불안'을 어쩌면 좋을까. '불안'이 큰 보울에 담긴 자갈들이라고 했을 때, 가만히 보니 대부분의 자갈들이 나의 과거와 미래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과거의 충족되지 않았던 결핍, 용서 받지 못했던 혹은 용서를 구하지 못 했던 나의 잘못, 응답 받지 못한 질문, 달성하지 못했던 나만의 계획, 나만 알고 있는 나의 나태와 부끄러움, 말하지 못한 진심... 이 모두가 자갈을 이루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만들어진 자갈들도 수두룩했다. 내 건강 상의 걱정으로 비롯된 나약해진 자신감, 갈망하지만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은 인연, 목표치에 다르지 못할 것만 같은 나의 공부와 업무... 이런 끝도 없고 형체도 없는 걱정들. 물론 '지금 현재'의 나 때문에 만들어진 자갈들도 있었는데, 특히 나의 몸과 건강을 나 스스로 '약점' 혹은 '컴플렉스' 라고 믿게 되어버린 점은 나의 존재 마저 하찮게 느껴지게 했었다.


그걸 극복하는 방법은 결국 Mindfulness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마음챙김'이란 사실 모호한 느낌이지만, '지금'에 몰입하는 것, 일상에 집중하여 살아가는 것이 자갈을 하나 둘 꺼내 멀리 던져 버리는데 도움을 주었다.


당시 온 몸의 근육을 잃어 (165센티 키에 39-40킬로 정도로 살이 빠져버렸다) 계단을 오르는 것도, 자동차 핸들을 돌리는 것도 버거웠던 나는, 모두가 말리는데도 주 3회 씩 연구실 출근을 강행했다. 집에서는 내게 자갈을 만들어 낼 빈틈을 주지 않았다. 재활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그리고 심지어 드라마, 영화에 푹 빠지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정말 '그 때 그 때'에 충실 하고자 하는 시간이었다.


몸이 좀 회복이 되어 더 이상 수혈을 받지 않게 되면서, 요가와 필라테스의 횟수를 늘려 본격적으로 내 '몸 (physical body)'에 정성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건 몸-마음이 같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몸이 힘들면 마음이 무너지고, 마음이 무너지면 기력이 쇠한다. 다들 얘기하는 이런 진리를 몸소 깨달은 것은 정말 큰 얻음이었다. 마음이 힘들었어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일을 나가고, 운동을 하니, 마음에도 점점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금 시작한 것이 명상이다.


요즘엔 유튜브에도 명상에 관한 내용이 많고, 명상하는 방법도 가지각색이지만, 결국 자신에게 맞는 명상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 같다. 조심해야 하는 것은 종교적 색깔을 띈 명상 센터나 조직이 많기 때문에, 판단력이 너무 흐릴 때 시작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사실 몸이 너무 망가져 있을 때는 명상을 시작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 만큼 사실 명상도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활동이다. 나의 몸과 마음에 어느 정도 에너지가 있어야, 비로소 온전히 현재에 머물며 나를 들여다보는 명상이 가능한 것 같다.

그렇다고 명상만이 mindfulness 인것은 아니다. 다만, 명상의 시간은 내가 일상에서 mindfulness를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기초체력을 길러주는 활동인 것 같다. 내게 오롯이 집중하는 힘, 나를 들여다보는 습관과 요령, 그것을 길러주는 활동인 것이다.


Tools of Titans라는 책을 보면 대부분의 Titans들은 하루의 일정 시간을 (길지 않아도 좋다. 단 10분이어도) 명상에 할애한다. 이 책에서 mindfulness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이 단어가 viral해지기 전에 발간된 책이라서), 명상이 인생의 기초체력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순간 순간 집중하며 오롯이 나이기를 추구하지만, 물론 여전히 나만의 보울에 자갈들이 소리소문 없이 쌓인다. 인간의 삶이란 불안과의 공존이니까. 오랫동안 나의 베프였던 남친과의 헤어짐을 선택했을 때,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내 반려견의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받아들여야 할 때, final interview까지 마친 곳에서 불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온 정성을 들여 쓴 논문이 개제불가 판정을 받았을 때, 예상치 못한 순간에 계획에 없던 자갈들은 다시 굴러 들어온다. 나의 불확실한 미래와 마음 한 켠에 선명한 바큇자국을 남긴 과거들은 나를 가만히 놔두질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이제는 (속도가 느리더라도) 자갈을 꺼내는 요령을 터득했으니, 예전처럼 하염없이 가라앉지는 않을 것 같다. 자갈이 쌓이는 속도와 자갈을 꺼내는 속도를 잘 조절하며 이번 생을 사는 것. 그렇게 불안과 공존하며 지내다, 아주 운 좋게 가끔 이 속도가 맞아 떨어져 equilibrium을 맞이하는 순간에 오롯이 내가 되는 경험을 살면서 한 두번 할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일지!


자갈이 쌓이는 속도도, 자갈을 꺼내는 방법도 모두 다를 것이다. 우리는 결국 모두 어떻게 어떤 속도로 자갈을 잘 꺼내가면서 살 것인지, 그게 관건 아닐까?


결국 모든 인생은, it's a quest for mindful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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