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계절은 어디쯤이실지
입춘이 지난지가 언제인데 날이 차다.
예보에 의하면 이번 주말은 꽃샘 추위라 하던데, 대체 언제쯤 다시 따뜻해 지는지.
패딩을 넣었다가, 다시 꺼냈다가, 트렌치 코트를 만지작 하다가, 다시 넣었다가 한다.
퇴근길 라디오에도 날씨 얘기로 가득하다.
간절기란 이렇다.
분명히 결국 봄이 올꺼라는 걸 모두가 아는데도,
사람을 안달나게 한다.
사계절이 있는 나라에 사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운인지를, 여러나라를 다니면서 알고 있지만.
겨울에서 봄이 될 때의 간절기는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똑같은 간절기여도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는 또 어찌나 속도가 빠른지.
매년 겪는 이 간절기에 무뎌질 때도 되었는데, 나이를 먹어도 먹어도 이 시기엔 매번 피부 트러블에 감기에
계절 탓을 한바탕 하고 나서야 지나간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목 감기가 찾아왔다.
인생에도 어김없이 간절기가 찾아온다.
사실 난 지금도 간절기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것 같은데, 이번엔 꽤 긴 간절기를 보내고 있다.
다행인건지, 아님 씁쓸해 해야 하는지, 인생의 간절기엔 점점 무뎌지고 있는 것 같다.
계절의 중심에 있을 땐, 간절기가 다가오는 걸 모른다.
하루하루 몽글몽글 파스텔 색 구름들이 장식하는 배경화면 속에서 큰 탈 없이, 사건 사고없이 지내다가도,
소리 소문없이 싸늘해져가는 공기가 내 주위를 덮치면 그제서야 방 구석으로 몸을 구겨 넣으면서 알게된다:
간절기가 다시 찾아왔구나.
그 와의 시간도 그랬던 것 같다.
이미 여러 계절을 함께 했고, 계절과 계절 사이도 무난히 넘겨왔던 우리의 관계에 간절기 같은 건 끼어들 틈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우리는 초록초록한 늦 여름 같았다. 연인보다는 절친이었던 우리는, 티격태격 되며 못 잡아 먹다가도 서로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 같았다. 너는 내편, 난 네편이었다.
하지만 나도, 너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건조해지고 쌀쌀해지더니,
나도 너도 각자의 간절기에 접어들었다.
20대의 간절기엔 발버둥을 치며 보냈던 것 같다.
나 지금 간절기다 여기저기 하소연도 해보고, 피해보려고 도망도 쳤다가, 어울리지도 않는 이 옷 저 옷을 걸쳐 보았다가, 뭔 간절기냐고 자기최면도 걸어보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간절기는 지나가 있었다.
30대의 간절기엔 동굴 속에서 계절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버텼던 것 같다. 동굴 속은 온도 변화가 별로 없다. 물론 빛도, 바람도 없고, 계절이 바뀌는 것도 한참 뒤에 알 수 있다.
그리고 30대 후반에 맞이한 나의 간절기에- 나는 더이상 발버둥 치지도 않고, 이 옷 저 옷 입어보지도 않고, 동굴 속으로 지나가지도 않고 담담히 매일의 일상을 맞이했고, 그 사이 나는 40대가 되었다.
마치 20년간 차곡차곡 모았던 적금을 깨서 아주 든든한 패딩을 장만하여 입은 것 처럼- 바람이 불면 맞고, 찬 공기를 마시고, 술 대신 일해 취해서 계절따위 잊은 듯이 지냈다.
가끔 생각하긴 했었다.
나와 함께 계절을 나던 너는, 어떤 방식으로 이 시기를 보내고 있을까. 아니 이미 보냈을까.
나보다 이백만배 예민했던 너는, 너만의 노하우라도 있는걸까.
그런데 이제는 그런 생각조차 나질 않는걸 보니, 봄이 오긴 오려나보다.
인스타인지 유튜브인지 블로그인지를 보다가 뇌리에 박혀, 여전히 내가 아주 좋아하는 글귀가 있는데:
영감을 찾는 건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하러 간다.
필립로스 <에브리맨>
정확이 내가 간절기를 보내는 방식을 설명해주고 있는게 아닌가.
우리는 모두 알고있다.
간절기란, 지나가는 계절이라는 걸. 그리고 반드시 다음 계절이 온다.
우리는 그럼에도 안달하고, 맘 졸이고, 내가 겪는 간절기가 가장 변덕스럽고 까칠하다는 듯이 불평하고 하소연한다. 부인할 수 없는 건, 영감이란 이런 시기에 찾아오곤 하지.
그렇지만 우리, 아마추어가 되지 말고,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가자.
어짜피 언젠가는 끝날 간절기를, 재촉한다고 빨리 끝나는 것도 아닌데, 즐길 수는 없겠지만 모르는 척 해보는건 어떨까.
그리고 다음 봄에는 나이 따위 잊고 20대의 간절기를 보낼 때 처럼 난리부르스를 치며 만끽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