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리쓰린의 소나무, 750km 여정의 마침표

시코쿠 4박 5일

by 턱시도 Tuxedo

어느덧 시코쿠 렌터카 일주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야트막한 산중턱에 자리한 료칸의 창밖으로 세토 내해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잔뜩 흐린 날씨 탓에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장엄한 일출은 볼 수 없었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고요한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정갈하게 차려진 가이세키 조식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만으로도 지난 4일간 750km를 내달려온 피로가 말끔히 씻겨 내려갔다.
여정의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다카마쓰(高松) 시내에 위치한 리쓰린 공원(栗林公園)이었다. 드넓은 평지에 오랜 세월 정성껏 가꿔진 소나무들과 잔잔한 연못이 어우러진 풍경. 최대 6명이 타는 조그만 나룻배에 홀로 몸을 싣고 남쪽 호수를 유유히 유람했다. 호수 한가운데서 고즈넉한 찻집의 정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치열했던 50대 비즈니스맨의 시간은 잠시 멈추고 텅 빈 충만함이 그 자리를 채웠다.
공원을 산책하다 내부에 마련된 상공장려관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곳에는 사누키 우동이 일본 전역의 지역 특산물 랭킹 1위(하카타 명란이나 홋카이도 멜론마저 제치고)를 차지한 비결이 전시되어 있었다. 양질의 밀, 굴지의 소금, 풍부한 멸치(이리코), 그리고 질 좋은 간장.
하이엔드 식자재를 수입하고 유통하는 상인(商人)의 눈에 이것은 단순한 요리의 레시피가 아니었다. 완벽한 로컬 자원의 공급망(Supply Chain)이 만들어낸 치밀한 비즈니스의 결정체였다. 지역의 흔한 식자재들이 모여 훌륭한 문화 상품으로 브랜딩 된 현장을 확인하고 나니, 시코쿠를 떠나기 전 묵직한 솥단지에서 끓여낸 진짜 사누키 우동 한 그릇을 다시 비워내지 않을 수 없었다.
출국 전, 외곽의 대형 할인점에 들러 가벼운 쇼핑을 마치고 다카마쓰 공항에서 정들었던 렌터카의 열쇠를 반납했다.
1시간 반의 짧은 비행 끝에 도착한 인천국제공항. 공항 문을 나서자 영하의 칼바람이 매섭게 뺨을 때렸다. 서울은 오늘부터 한파주의보라 했다. 공항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 차창 밖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크리스마스 조명이 스쳐 지나갔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머물렀던 세토 내해의 따뜻한 귤 향기와, 눈앞에 펼쳐진 서울의 차가운 겨울 공기. 이 강렬한 온도의 대비를 온몸으로 느끼며, 4박 5일간 이어졌던 시코쿠 750km의 궤적에 조용히 마침표를 찍는다.


[턱시도의 여행수첩 : 리쓰린 공원(栗林公園)]
카가와현 다카마쓰시에 위치한 리쓰린 공원은 일본을 대표하는 다이묘(영주) 정원입니다. 1600년대 중반부터 마쓰다이라 가문이 100여 년에 걸쳐 완성한 이 공간은, 배후의 시운산(紫雲山)을 병풍 삼아 6개의 연못과 13개의 인공 산을 절묘하게 배치했습니다. '밤나무 숲(栗林)'이라는 이름과 달리 현재 밤나무는 거의 남아있지 않으며, 수백 년간 장인의 손길로 다듬어진 1,000여 그루의 아름다운 소나무(하코마쓰)들이 정원의 진정한 주인공입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풍경이 바뀐다(一歩一景)'는 극찬을 받는 곳으로,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극치로 끌어올린 일본 정원 미학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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