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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크M May 14. 2021

[탄소중립과 혁신] (20)'그린 리모델링'의 역설

고배원 인테그라디앤씨 대표


분당구 정자동 한솔마을 5단지 리모델링 조감도 /사진=성남시청


1기 신도시의 29만여세대 아파트들이 이제 준공 25~30년째를 맞고 있다. 정부가 재건축을 억제하는 정책을 폄에 따라 1기 신도시들은 리모델링에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 2월에는 분당 정자동 한솔5단지가 1기 신도시 최초로 리모델링 사업 승인을 얻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또 경기도가 지난 2월16일 접수를 마감한 '공동주택 리모델링 컨설팅 시범사업'에선 2개 단지 모집에 무려 116개 단지가 신청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재건축이 어렵고 이미 고층으로 지어져 용적율이 높은 이들 단지들이 본격적으로 리모델링에 뛰어든다면, 공동주택 건설시장의 패러다임이 상당히 바뀔 것이다.


'리모델링'과 '그린'의 상관관계


최근에는 아파트 뿐 아니라 일반 건물들도 점점 신축보다는 리모델링이 많아지는 추세다. 90년대 이후에 지어진 건물들은 그 이전에 비해 국내 건설기술이 월등히 좋아진 시대에 지어졌다. 건축법 또한 상당히 강화되면서 건물의 성능도 좋아졌다. 예전 같으면 30년 이상 지나면 재건축 했겠지만, 이제는 리모델링이 더 경제성이 있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린 리모델링'이란 용어는 이미 건축계에서는 오래된 용어다. 건물의 생애주기 탄소배출량은 대개 공사가 15%, 운영유지가 80%, 철거가 5% 정도 된다. 건물의 생애를 40년 혹은 50년으로 계산할 경우이다. 이를 리모델링을 거쳐 60년, 100년으로 연장한다면, 운영유지 단계의 비중이 더 늘어난다. 건물의 구조를 건드리지 않고 리모델링을 진행하니, 신축에 비해 폐기물도 적게 나오고 공사에 들어가는 탄소배출량은 훨씬 적다. 리모델링이 탄소중립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그린 리모델링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신축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을 새롭게 짓다보니 새로운 기술을 총동원해 제로에너지 건물에 근접하기가 좋다. 반면, 리모델링은 기존 건물의 구조와 주요 시스템을 남기는 경우가 많아 제약이 많이 따른다. 이는 신기술이나 신제품을 마음껏 적용할 수 없는 상황을 낳곤 한다. 이런 점 때문에 리모델링이 신축보다 제로에너지 건물 구현하기가 훨씬 어렵다.


이는 탄소중립 관점에서 무엇을 말하는가? 기존 건물을 재건축하는 경우, 건물을 부순 후의 폐기물 처리의 탄소 무게와 새로 짓는 데에 들어가는 자재량의 탄소무게가 상대적으로 리모델링보다 큰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상식이다. 이에 리모델링이 재건축보다 탄소중립 구현에 좋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리모델링은 신축에 비해 제로에너지 구현에 더 많은 제약이 있어 신축보다 리모델링이 더 많은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를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고도 할 수 있다.


즉, 공사하는 행위의 탄소무게를 줄이느냐, 건물 사용기간의 탄소무게를 줄이느냐의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연비가 나쁜 7년 정도된 자가용을 잘 수선해서 더 타느냐, 아니면, 돈을 들여 새 전기차나 하이브리드로 바꾸느냐의 소비 선택과 비슷하다. '그린'과 '리모델링' 사이의 갈등이 생기는 것이다.


리모델링으로 '제로에너지' 실현하려면


현재 전국에는 약 720만 동(棟)의 건물이 있다. 이 중 10년 이상 된 건물 약 600만 동이 2050년이 되기 전까지 신축 혹은 리모델링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중 순증가분은 지난 5년간 매년 3~4만동 추세이므로, 30년 간의 순증가분은 인구의 감소추세를 고려하면 70~100만동 정도가 될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은 리모델링이라는 얘기다. 2050년 탄소중립국가를 실현하려면, 모든 리모델링은 '그린'이어야 한다. 그것도 제로에너지에 가까운 '딥그린(deep green)'이어야 하는 것이다.


건물은 한 번 건드리면 수 십 년 동안 건드리지 못하는 고정재이다. 한 번 건드릴 때 제대로 투자해서 수 십년동안 덕을 봐야 한다. 공사비 조금 아끼자고 대충, 혹은 법에 정한 만큼만 하고 나면, 향후 수 십년간 돈이 더 들어간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리모델링을 제로에너지화 할 수 있는 설계와 시공기술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 시점이다. 다행인 점은 여러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고, 제로에너지 구현 기술들이 빠르게 도입될 징후가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아직까지는 '징후' 수준이어서, 탄소중립으로 가는 계획에는 한참 못 미치고 있다.


<Who is?> 고배원 인테그라디앤씨 대표



고배원 대표는 친환경 제로에너지 건축물을 설계하고 연구하는 전문가로 미국과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건물의 에너지 효율화와 탄소중립을 위한 기술 개발을 하고 있으며, 제로에너지 학교를 비롯한 다양한 친환경 건축을 설계한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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