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생각하는 임신과 육아에 대한 이야기는 분명 엄마와 다를 수 있다.
부부에서 부모로 넘어가면 육아가 첨가되지만 부부가 해야 할 공평한 역할에 비해 아빠와 관련된 책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참고할만한 서적이나 지인들의 경험담 속에는 항상 아이와 엄마에 대한 이야기들은 가득하지만 시시콜콜하게나마 아빠의 느낌이나 의견, 생각과 시행착오 같은 부분들도 제법 있을 법한데 아빠는 그저 엄마를 도와주는 사람이고 육아에서는 뒷전이며 그저 비용을 지불하는 키다리 아저씨와 같은 느낌이 강하다.
나는 이러한 부분들에 대해 보고 들을 때마다 불편함을 숨길 수 없고 수많은 아빠들은 왜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 세상 많은 아버지들은 정말 그들이 도움을 주는 도우미로서의 역할에 만족하는 것인가?
이 세상 많은 아버지들은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사회생활 때문에 아이에 대한 주도적인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이 세상 많은 아버지들이 모두 같이 정말 요령을 피우고 육아에 대해 적당히 기피하는 것일까?
배 속에 아기가 생기고 그 아기가 출산일에 가까워 오고 아기를 낳을 준비를 하고 출산을 하며 조리원을 거쳐 육아를 시작하는 모든 과정에서 아빠는 도대체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이며 마법의 100일을 지나 아이가 뒤집기를 하고 기어서 걷기 시작할 때 아빠들은 그들의 감정을 뭐라고 느끼고 표현하고 싶은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다행히 내가 지금 그 경험을 하고 있으니 육아에 시간이 좀 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글로 생각과 기분을 넘겨 두고 싶다.
나와 같이 아빠의 역할에 대해 감정적인 부분과 감성적인 부분에 대해 궁금해할 또 다른 아빠들의 참고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하나. 시험관아기
아이를 딱히 싫어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노력을 해야 할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아내가 아이를 갖고 싶다고 처음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는 좀 갑작스럽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정말 아이를 갖고 싶은 것인지를 살폈고 왜 갑자기 마음이 변했는지도 궁금했다.
그러다 아내의 바람이 진지하다는 것을 깨닫고 아이를 갖자는 마음을 먹었지만 머리는 복잡했다.
아이를 갖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었지만 방법의 선택엔 내 의견도 존중되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는 시기가 늦었던 만큼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원했고 그 답이 병원의 도움에 있었기에 나는 그게 불편했다.
시험관으로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아이를 갖기 수월하도록 도움을 받는다는 측면도 있었지만 뭔가 내가 해야 할 일을 남에게 의존하는 느낌도 있었다.
내 인생의 중요한 의사 결정들은 스스로 내려야 하는 것이라며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아이를 갖는 중요한 일에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모를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고 불편하기도 했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온전히 부부 두 사람의 책임을 요하는 것인데 내 결정이 아닌 일에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인가 라는 반감도 들었고 무엇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부분이 자연스러움에 첨가된다는 것 자체가 불편했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아이를 갖자는 것엔 동의했지만 방법은 의견의 차이를 보였었다.
그러다 흔히 말하는 번아웃이 찾아와 회사를 그만두면서 나는 마음의 여유도 찾고 평소 하기 힘든 일도 할 겸 아내에게 두 달 간의 여행을 권했고 아내는 내 계획에 동참하는 조건으로 내게 시험관 시술에 동의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 사이 아내는 이전에 비해 아기 이야기가 나올 때면 조급함도 느꼈고 답답함도 느꼈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든 만큼 주변에서는 아이에 대한 질문의 횟수가 늘었고 늦게 결혼한 동생은 식 전에 이미 새로운 식구를 맞았다.
처형 역시 우리보다 늦게 결혼했지만 조카는 이미 5살이 됐고 더 늦게 결혼한 언니들, 더 어린 동생들도 하나 둘 아이를 갖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아내의 눈빛에는 측은함이 느껴졌고 나는 아내가 걱정스러우면서도 안쓰러웠다.
그래서 여행이라는 구실을 핑계로 나 역시 그간의 고집을 조금 누그러뜨리고 아내에게 도움을 줄 것을 약속했다.
무엇보다 아내가 마음 아파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시험관 시술은 내 몸속의 정자를 빼내어 병원에 잘 보관해 둔 뒤 아내의 몸 상태가 준비될 때마다 준비되었던 내 정자를 아내의 난자와 결합하여 아내의 자궁에 착상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내는 서너 번 시험관 시술에 도전했고 시술 후 느낌이 좋은 날이면 나는 임신 키트를 사러 약국에 다녀오곤 했다.
처음 시험관을 실패했을 때가 기억나는데 아내는 실망이 컸고 나는 그런 아내의 눈치를 많이 봐야만 했었다.
그저 운이 나빠 착상에 실패했을 뿐이지만 아내의 속상한 마음은 오롯이 남편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너 번째 인가 만에 아침 일찍 사온 임신 키트에서는 아주 희미하게 줄 하나가 더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아내는 뛸 듯이 기뻐한 반면 나는 매우 차분했는데 희미한 줄 만큼이나 내 확신도 희미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혹시라도 임신이 아니라면 아내의 실망이 두 배는 더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내게 임신을 반가지 않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지만 사실 나는 아내의 실망과 마음의 상처가 항상 더 염려스러웠다.
그리고 다행히 임신은 맞았고 그렇게 나는 응응이의 아버지가 됐다.
주변 사람 모두가 정말 똑같은 질문을 했는데 아이를 갖게 된 내 기분이 어떻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이 많이 불편했는데 아이와 나에 대한 질문은 있었지만 부부 둘만의 생각은 어떤지에 대한 배려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임신이 됐다고 했을 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행이다.
이제 아내가 더는 실망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돼서'
라고.
그렇게 아이보다는 아내와 나에 초점이 맞춰진 나만의 출산 준비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