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ddy Jul 17. 2020

S3#74 이스탄불

19.07.18 (목) 이스탄불에서 사람 만나기 5

  점심 즈음 밖으로 나선다.

 오늘도 카디쿄이 쪽 소풍이라는 한식집으로 간다. 이라크에서 온 친구가 있는데, 배를 타고 1시간 가야 있는 도시에서 나를 만나러 온다. 그 친구도 유튜브를 한다고 해서 이것저것 재밌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서 만났다.

 이라크 사람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흔히 미디어로 접한 이라크는 다 무너져가는 폐허만 봤었는데 라는 생각을 드는 것이, 그래도 나름 여행을 할 만큼 했는데도 아직 편견이 가득하다. 그만큼 미디어가 무섭고 편견이 무섭다. 

 눈이 정말 파란 건지 초록색인지 깊고 사람한테 쓰기는 조금 그렇지만 신기했다. 역시나 한국을 좋아하는 친구였고, 한국으로 가기를 꿈꾸고 있었다. 이런저런 인터뷰를 나눴는데, 하면서도 계속 이야기를 정정한다. 나라의 체제나 민감한 사항들은 함부로 말하지를 못하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특이했던 것은, 우리는 이라크 같은 나라들을 전쟁과 테러만 떠올리며 가난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전쟁이 나는 이유를 따지고 보면, 기름이 많고 돈이 많아서 그런 욕심을 둘러싸고 전쟁이 일어나고 그래서 비치기에는 어렵다고 알고 있지만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처럼 하도 돈이 많으니 세금도 다 면제고 그런 부유한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친구의 집도 꽤 유복해서 집의 한 면이 1km였다고 하는데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라크에 지금도 많은 한국인들이 일하고 있다고 했다. 정말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여행하다 보면 진짜 동남아 오지에도 한국 공장이 있고, 물론 노동자들은 현지인들이지만 그런 교민이나 주재원들이 꽤 많으시고 그곳을 둘러싸고 한식당 등이 형성된 것을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 그렇다.

 안타까운 것이, 친구는 이날 무슬림 여자 치고는 꽤나 깊게 파인 브이넥을 입었었는데, 반창고를 붙인 것이 눈에 띄었다. 들어보니 이라크에서 한국을 동경하게 되면서 한국어로 타투를 했다고 했다. 이라크에 있는 중국인 남자였는데, 본인이 해주겠다고 해서 뭔지도 모르고 한글 타투를 받았다. 뜻도 모르지만 그만큼 한국이 좋아서 했나 본데 그 빌어먹을 중국인은 입에 담지도 못할 음담패설을 적어놓았다. 아예 작정을 하고 엿을 먹이려고 했던 것 같은데, 정자는 아니고 거울 모드랄까 뒤집어지게, 아무튼 '섹스 좋아'라는 말을 써놓았다. 하필 또 그런 짓거리를 한 사람이 중국인이다 보니, 참 욕이 절로 나왔다. 한국인들에게 관심이 생겨 몇 명을 만나다가 어떤 한국인이 어렵게 얘기해줘서 소스라치게 놀라 그때부터 가리고 다닌다는데, 남의 몸에 이런 짓을 한 그놈은 참 큰 벌을 받아야지 싶다.

 한국으로 오길 꿈꾸던 이 친구는 부산 쪽 학교에 원서를 넣은 상태라고 했는데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배를 타고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갔다. 얘기 중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왔지만, 택시에 떼강도에게 강간을 당할뻔한 경험도 있었고(이라크에서) 이곳 터키 역시도 여자에게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이고 이 친구가 상당히 눈에 띄는 아름다운 외모였기 때문에 늦게 다니는 것에 굉장히 두려움이 있었다. 이럴 때 보면 무슬림은 참 여자가 너무 고생하는 종교인 것 같다.

 다시 소나무 한식당에 가서 불고기 덮밥을 먹었는데, 다른 메뉴에 비해 비교적 저렴하고 맛이 좋았다.

 밤이 되어 트라브존에서 만났던 큐브라가 소개해준 다른 터키 친구를 만나러 갔다. 나도 이 곳이 서툰데 그 친구도 헷갈려해서 사실 거의 두 시간을 헤매고 서로 걷고 또 걷고 고생을 했다. 그러면 안되는데, 매일이 강행군이었던 나에게는 너무 고되고, 나중에는 골탕먹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화가 났었다. 그래서 혹시 나를 그냥 가지고 노는 거면 그러지 말라고 영어로 얘기하고 돌아서는데, 거의 다 왔다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 그래서 속는 셈 치고 옆 맥주 가게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기다렸다. 사실 집까지는 걸어서 30분이면 갈 수 있었고, 맥주를 마시면 30분 내로 화장실이 가고 싶어 질 것 같아 안되면 그냥 가려고 했는데 2시간여 만에 야 드디어 만났다.


 한국어가 30%랄까 밖에 통하지 않아 영어와 섞어서 소통을 했다. 도착하자마자 친구는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보였다. 나도 눈물이 나게 피곤하고 힘들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미안하고 그랬다. 이 친구는 한국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약속을 했는데, 본인이 길을 잘 못 찾아 기분을 상하게 한 게 아닌가 하고 미안해했다. 한국말이 능숙하다고 생각했는데 만나보니 그렇지 않았고, 으레 늦으면 미안하다고 이렇게 저렇게 말할 법 한데 단답으로 대충 말하는 것 같아 내가 오해했던 모양이었다. 

 Ortakoy라는 곳에 가면 배가 다니는 항구도 있고 나름 멋진 펍들이 많이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늦은 시간이었지만 맥주를 마셨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백화점에서 매니저를 하고 있었고, 한국어를 살린 직업을 가지지는 않은 것 같았다. 피부가 정말 하얬고 뭐가 서구적으로 생긴 친구였다. 얘기하다 보니 시간이 늦어졌는데, 사실 배를 타고 건너야 있는 아시아 파트에 사는데 그곳에 가지 못해 친구 집에서 자고 간다고 했다.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데, 정말 몸에 한계가 오는 느낌이었다. 매일 불편하게 4~5시간을 자고 밥도 부실한데 술 먹고 하루 종일 걸어 다니다 보니 한 열흘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그 몸살이 느껴져서,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S3#73 이스탄불에서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