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미 사파리 만년필
사과를 칼로 깎을 때의 사각거림, 낙엽을 쓸 때 빗자루가 시멘트 바닥에 긁히는 사각거림 그리고 종이 위를 스치는 만년필의 사각거림. 사각거림은 차분하게 뭔가를 해나가는 소리 같아 듣기에 좋은 걸까. 손끝으로 전달되는 감촉, 그 감촉을 느끼기 위해 만년필을 들게 된다. 글씨체만 보고도 이거 누구 글씨구나 하던 그 시절 친근함의 척도가 그립다. 필기류가 집에 없는 사람은 없지만, 사용하는 사람은 어느새 줄어들었고, 그 필기류로 뭔가를 써서 전달하는 시기는 이미 사라져 가고 있다. 누군가의 사각거림을 들어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는 공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야는 학생들이나 회사 비품으로 저렴한 것들만을 사야 하는 비품 담당만 사게 된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기호로 사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만년필은 특히 이 약육강식인 필기류의 왕국에 방치된 초식동물처럼 보인다. 여기서는 극고가의 사치품 아니면 초저렴 제품만이 최상위 포식자다. 그 사이에서 여러 제품들이 살아남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전력으로 살길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다행히 여전히 필기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존재하고 그들의 애정은 마르지 않는 샘물 같다.
이름이 왜 사파리인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소설을 좀 쓰자면 약육강식인 필기류의 왕국, 사파리에서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아닐까 싶다. 40년 동안 꾸준히 인기를 얻으며 살아남은 이유는 너무도 많다. 만년필 중에서 그리고 라미 만년필 중에서 가장 편하고 어디에나 어울려 사주 사용하게 된다. 사각거림도 좋고, 가볍지만 균형감 있는 비율과 손에 딱 붙는 그립감도 좋다. 단지 저렴해서 좋은 게 아니다. 손으로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거의 만년필이 있다. 만년필이 한 개 밖에 없다면 라미 사파리다. 두 개라면 아마도 다른 색의 사파리 두 개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성급한 내 일반화다. 연필꽂이에 꽂혀있는 것보다는 앞주머니에 꽂혀있는 모습이 더 잘 어울린다. 앞주머니에 유자형의 클립이 달려있는 것만 보아도 그게 사파리 만년필인지 구분이 될 정도로 대중적이고 명확한 디자인이다. 라미 사파리 만년필은 최상위 포식자도 최하위 초식동물도 아니다. 다음날이면 또 자라나 있는 사파리 그 자체다. 라미 사파리 만년필은 모두 같은 펜촉을 사용하지만, 사각거림이 극대화되는 검은색 코팅 펜촉을 사용하는 색상이 몇 개 있다. 차콜 블랙, 사바나 그린, 테라레드, 화이트 블랙클립만 검은색 코팅 펜촉을 사용하는데, 일반촉보다 더 사각거거림이 강하다. 써보면 사각거림이 좋아 이 만년필을 앞주머니에 꽂고 다니게 될지도.
라미 사라피 만년필
가격: ₩58,000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색상에 따라 최저가 14,000원까지 금액이 천차만별이다. 알라딘 중고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2만 원대에 구매할 수 있다)
색상: 현재 13개 정도가 나와있는데, 매년 리미티드 에디션을 내놓는 듯하다.
펜촉: EF, F (EF촉이 더 얇아서 작은 글씨에 적합하다)
라미 (Lamy)
독일의 대표 만년필 브랜드로 1930년 만년필 공장으로 시작해 1948년 독자 브랜드로 설립됐다. 디자인을 기업 전략의 최우선으로 두고 다양한 외부 디자이너들과 협업해서 제품을 출시한다. 모두가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 집중해 매우 낮은 가격에 출시된다. 글로벌 기업임에도 전 제품 독일 생산을 고집하는 점도 팬층을 두텁게 하는 이유다.
라미 한국 홈페이지 https://lamyshop.kr/
라미 한국 인스타그램 계정 https://www.instagram.com/lamy_korea/
매거진 B 라미 편 https://magazine-b.co.kr/product/la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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