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네후지101 연필깍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조금 남았다. 무언가 별로 남아 있지 않았다는 상황은 사라진 것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쉽다. 아예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바라보며 짜증을 내는 사람도 있지만, 누군가는 그 남아 있는 것을 충분히 음미한다. 어차피 별로 남아있는 않았다는 상황은 변함없이 그대로다. 상황은 달라지지 않지만 그것을 보고 대하는 내가 다를 수 있으니, 내 선택만이 남는다. 상황에서 유일하게 달라질 수 있는 나의 관점은, 상황을 부족하게도 풍요롭게 만들 수도 있다.
홀로코스트 영화 중 최고를 뽑는다면 '인생은 아름다워’, ‘쉰들러리스트’ 그리고 ‘피아니스트’ 이 세 영화는 꼭 들어가 있을 것이다. 평론가뿐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찬사를 얻은 이유는 뭘까. 역사 그대로 잔인하고 희망 없는 상황만을 그렸다면 전 세계적인 감동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 영화들은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애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인생은 여전히 아름답다는 모두의 소망을 담고 있다.
이 영화들의 클라이맥스는 다양하지만, 그 절정을 향해 차곡차곡 쌓여나가는 장면들이 있다.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기차역에 끌려온 사람들이 있다. 독일군들은 그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자신들이 죽으러 간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지만 그게 사실일까 봐 드러내 놓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기차에 올라타기 전 누군가 자신의 유일한 담배 한 개비를 한 모금을 빨아들이고 옆으로 돌린다. 점점 작아지는 담배는 여러 사람에게 돌고 돌아 그에게 돌아온다. 그가 마지막 한 모금을 하는 동안 서로 따뜻한 응원의 눈길을 보내며 기차에 올라탄다. 자신에게 남아있는 조금의 위안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그 장면은 담배를 싫어하는 나에게도 ‘담배 한 모금의 동료애’가 전달됐다.
‘피아니스트’에서는 그 장면이 더 극화되어 있다. 모든 물건을 빼앗긴 상황에서 가족들이 한 구석에 모여 앉아있다. 원래 잘 다투던 남매는 그 상황에도 다툰다. 남매의 다툼을 보면서 가만히 앉아있는 가족 곁으로 사탕인지 설탕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것을 파는 아이가 지나간다. 주인공이 가족을 위해 그 한 조각을 사서 제일 연장자인 늙은 아버지에게 준다. 아버지는 조그마한 칼을 꺼내 작은 설탕 조각을 더 잘게 쪼개서 나눠준다. 모두들 받은 그 설탕 조각을 입 안에서 서서히 굴리며 서로를 바라본다. 방금 전까지 두려워하던 사람도, 짜증 내던 사람도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그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듯한 눈빛이다. 별 것 아니지만 그 작은 것을 더 이상 쓸 수 없을 정도까지 나누는 행위는 작지만 힘이 되는 위로다.
부족한 상황이 위대한 결과로 이어지는 이미지가 있다. 본 적은 없지만, 본 것 같은 작가의 이미지. 노 작가의 책상 위에 놓인 원고지와 몽당연필. 몽당연필을 써보면 잡기가 불편해서 그렇게 짤막한 크기로 오랜 시간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상한다. 위대한 작가는 연필로 글을 쓰고, 그 연필을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까지 글을 쓴다고. 헤밍웨이나 존 스타인벡의 글을 읽으면 왠지 그들이 글을 그렇게 쓰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한다. 그래서 몽당연필이 될 때까지 글을 쓰고 싶어 진다. 그러면 나도 그들처럼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결과를 떠나서 글을 다 썼을 때 몽당연필이 되어 있는 연필은 잘 소진한 감성 같지 않을까? 내게 맞는 연필을 찾은 후에 그 감성을 느끼고 싶어서 가장 먼저 한 도전은, 연필 한 개로만 글을 써서 몽당연필이 되고 더 이상 쥘 수 없을 때까지 써보는 거였다. 연필의 길이가 검지 손가락만큼 짧아졌을 때부터 연필은 손가락으로만 쓰는 게 아니라 엄지와 검지 사이의 협곡이 받쳐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에는 볼펜 몸체를 연결해 쓰는 미술 전공자들의 방식을 해보려고 했는데, 새 연필보다 길어져 글을 쓰기에는 맞지 않았다. 이런 것도 이름이 있다는 것도 몰랐으니 제품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연필깍지, 펜슬홀더, 연필홀더 등 여러 말로 팔리고 있었다. 시중에 나와있는 여러 깍지들을 사봤다. 어떤 것은 너무 길고, 무거웠다. 글을 퇴고하듯 깍지들을 쓰다보니 하나만 남았다.
하네후지101 연필깍지는 짧을수록 멋진 몽당연필을 더 짧게 쓸 수 있게 도와준다. 연필깍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필을 사용할 때의 느낌을 그대로 가져가는 것이다. 연필 자체의 무게보다 무거워지면 안 되고, 연필이 적당히 길 때도 알맞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하네후지101 연필깍지는 길이 조종이 되면서 가벼워 글쓰기에 가장 적합하다. 알루미늄 소재라 가볍고, 전장은 10cm 정도로 일반 볼펜의 2/3 정도 길이라 누구나 잡기에 적당하다. 지름이 최대 8mm를 넘지 않는 연필에 사용할 수 있는데, 파버카스텔 육각 색연필이나 수채색연필처럼 두껍지 않다면 대부분의 연필에 적합하다. 지름이 8mm를 넘긴다면 연필의 몸체를 깎아서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지름이 큰 다른 연필깍지를 사용하는 게 낫다. 뒤쪽에는 숨구멍이 있는데, 몽당연필이 안에 갇혔을 때 입을 그 구멍에 대고 가볍게 불어주면 연필이 빠진다. 별 것 아니지만 배려가 스며든 디자인은 그런 상황에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한다.
사용방법
홀더의 앞 헤더를 돌려서 분리
연필을 본체에 원하는 길이만큼 끼운다
본체의 주름 부분을 잡고 헤더홀더를 끼워서 돌려서 알맞게 고정시킨다
정보 요약
Hanefuji 펜슬홀더 Hanefuji101 (약 10cm)
가격: ₩1,700 - ₩2,400
전장: 약 10cm
*아쉽게도 하네후지의 홈페이지나 관련 계정을 찾지 못했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2,400원 이하의 가격에 판매하는 곳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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