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채우고 싶어지는 주머니 속 작은 세상

무인양품 문고본 A6 노트

by Tedo
무인양품 문고본 노트.jpg 무인양품 문고본 A6 노트

귀족의 저택에는 책으로 가득 찬 서재가 있다. 불그스름한 마호가니로 된 나무 책장은 2층을 넘는 높이로 서재 안 사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책장 안에도 비슷한 색감으로 가죽 장정한 책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책등에 새겨진 황금색 제목들은 비슷한 세리프체로 적혀있어 같은 혈통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 서재의 화룡점정은 그렇게 많은 책들이 읽히지 않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균일하고 소복하게 쌓여있는 책 먼지다. 소복이 쌓인 만년설. 이런 서재에 들어선다면 압도되어 어느 책부터 봐야 할지는 고사하고 불편함이 느껴진다. 인스타그램용 사진 몇 장 찍었으면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지지 않을까. 문고판이 나오기 전까지 책은 대중에게 그런 대상이었다. 문고판이 나온 후로는 책은 책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들고 다니면서 어디서든 볼 수 있는 가벼운 것이 됐다. 여기까지가 옛날이야기고 여전한 이야기다.


몇 년 전부터 범우문고, 이음문고, 쏜살문고, 북저널리즘, 컨셉진을 포함한 문고판 크기의 책들이 사랑을 받고 있다. 손 만한 A6 크기는 상의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도 있고, 작은 가방 안에서도 큰 부피를 차지하지 않는다. 무게도 내용도 무겁지 않아 출퇴근에 잠시 읽을 수도 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에 잠시 꺼내어 읽기에도 부담되지 않는다. 잠자기 전에 읽다가 떨어져도 얼굴이 다칠 위험도 적다. 펭귄북이 문고판의 전성시대를 만들었듯이, 다시금 사람들은 두 손 가벼운 문고판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노트는?


노트가 비싸서 안 살까? 아니다. 노트를 살 이유가 없다. 노트는 대학교까지 합한다면 요람부터 학사모까지 지긋지긋한 20년을 상징한다. 학생이 사는 노트의 질은 정해져 있다. A4 크기의 넓은 노트는 1장을 채우는 것도 지루하고 길다. 갯벌을 걷는 듯이 푹푹 빠지는 감촉, 20개에서 30개에 이르는 줄들은 왕복 20차선을 신호등 없이 횡단해야 하는 두려움이다. 노트 한 개는 여러 개를 떠오르게 하고, 비슷한 크기의 책들로 가득 찬 백팩을 생각나게 하고, 고난의 등하교 행군을 떠오르게 한다. 그 시절 사물함에도 가득 찬 책들과 그만큼 가득 찬 백팩 속 책들은 사물함이 존재하는 이유에 의문을 들게 했다.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앞으로 걸어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무거워 한 발짝을 때기도 힘들어 괴로워하면서 깨던 꿈도 떠오른다. 이렇지 않은 노트가 있다면 달랐을까?


무인양품 문고본 노트는 A6 크기로 자연스럽게 펼친 손 정도의 크기다. 문고본과 동일한 방식으로 제본되어 있어 가볍고 편하다. 모든 주머니에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재킷 주머니, 셔츠의 가슴 앞주머니, 바지의 뒷주머니에도 들어간다. 작은 가방 안에서도 큰 부피를 차지하지 않아 넣고 다니기에도 부담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갈색 포장지가 표지를 감싸고 있어서 그 안에 적을 내 글이 선물 같다. 그 안에는 살짝 반들반들한 재생지 144장이 들어있다. 어떤 줄도 방해하지 않는 빈 종이는 살짝 바랜 느낌이 들어 친근하다. 빨간 끈은 잠시 닫아두었던 노트를 열 때 다시금 어제 적던 곳을 쉽게 열게 도와준다. 채우기 싫은 노트에 대한 예전의 거부감은 지난날의 추억으로 보내주자. 주머니에 넣어두었다가 깜짝 방문한 좋은 생각이 들 때 꺼내서 적어보자. 스티븐 키의 유명한 명언 "아마추어들이 영감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 프로들은 일하러 간다."가 크게 와닿는다. 우리 아마추어들은 갑작스레 찾아온 영감을 반갑게 맞아주자.



나만의 문고본 만들기

노트는 모두 종이로 이뤄져 있고, 포장지 느낌의 표지는 비어있다.

문고본이라는 이름답게 나만의 책을 만들어 주기로 한다.

책의 상징은 표지다.

볼펜이나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앞 장을 꾸며준다.

펭귄북이나 범우사처럼 정사각형 테두리를 긋고,

맨 위에는 이 책의 번호를 적는다. (노트는 금세 채워지고 여러 권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가운데에 노트 폭의 2/3 정도 되는 줄을 긋고,

그 아래에 이 책의 제목을 써준다. 끝



무인양품 문고본 노트 (A6)

가격: ₩1,900

크기: A6, 약 14.8x10.5cm

매수: 144매

재질: 재생지 (겉면은 포장지에 쓰이는 갈색 종이)



[무인양품 Muji]

‘도장이 찍혀있지 않은(무인) 좋은 품질(양품)’을 의미하는 무인양품은 1980년에 설립된 일본 회사로 생활에 필요한 잡화를 판매하는 브랜드다. ‘이것으로 충분하다’라는 카피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철저한 생산과정의 간소화, 소재의 선택, 포장의 간략화라는 3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심플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상품을 제공한다.

무인양품 홈페이지 문고본 노트 http://www.mujikorea.net/display/showDisplay.lecs?goodsNo=MJ31121742&storeNo=1&siteNo=13013&goodsCompositionCode=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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