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간만에 부모님 댁에 갔다. 그동안 아이들 시험이다 뭐다 정신이 좀 없었던 터다. 모처럼 손주들을 본 부모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잠시의 시간을 뒤로하고 부모님 댁을 나서는 순간, 어머님이 먼지가 잔뜩 앉은 보따리 하나를 내왔다. 결혼해서 분가할 때, 그냥 부모님 댁에 내버려 뒀던 카세트테이프, CD, 그리고 LP판 등이 담겨있었다. 그냥 버릴까 하다가 아무래도 물어봐야 할 것 같아서 내왔단다.
그냥 버려도 된다는 말이 나오려는 찰나, 음악 좋아하는 첫째가 나섰다. 이런 거 중고마켓에 팔면 돈이 좀 될지도 모른다는 거다. 먼지를 잔뜩 머금어 안에 어떤 앨범들이 들어있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집으로 가지고 왔다. 혹시나 돈이 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집에 돌아와서 한 20년 묵은 먼지를 털어내며, 하나하나 LP판들을 살펴봤다. 근데 첫 음반부터 대박이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유재하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이 있었던 것이다. 유재하 1집 앨범이었다.
첫째가 태어나기 훨씬 전 가수였지만, 음악을 워낙에 좋아하는 터라, 첫째 역시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LP판 먼지를 하나하나 털어내면서 첫째와 나는 연신 대박을 외쳐댔다.
김종서 1집, 김성호 1, 2집, 신승훈 1, 2집, 조하문 1집, 김현철 1집, 임재범 1집, 심지어 ‘봉선화 연정’으로 유명한 현철 3집까지.
첫째가 ‘이거 돈 좀 되겠는데~’ 하는 생각으로 대박을 외쳤다면, 난 갑자기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나서 대박을 외쳤다. 그리고 중고시장에 앨범을 내놔야겠단 생각을 잠시 접기로 했다. 첫째도 중고시장에 내놓긴 좀 아까운 생각이 들었는지 흔쾌히 동의했다.
온라인 마켓에서 턴테이블을 봤던 기억이 있어 당장 검색을 해보니,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심지어 블루투스 연결까지 되는.
집사람은, 미니멀 라이프, 미니멀 라이프 외쳐대더니 뭘 또 사려고 하느냐며 성화다. 첫째에게 턴테이블을 보여줬더니 예쁘게 생겼다며, 갖고 싶어 하는 눈치다. 첫째 입김을 빌어 휴대용 턴테이블을 구매했다.
그리고, 마침 턴테이블이 오늘 집으로 배송됐다. 마치 제사라도 지내듯, 조심조심 턴테이블 포장을 벗기고, 아주 조심조심 임재범 1집 앨범을 올렸다. 지지지직 하는 레코드판 특유의 잡음이 귀를 사로잡았다. 음질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더 LP판의 감성과 맞았다.
유재하 1집 앨범은 차마 틀기조차 아까워, 틀까 말까 고민을 하다, 살포시 바늘을 얹었다. 앨범이 다 돌아가는 순간, 내 눈가에 살짝 이슬이 맺혔다. 앨범 재킷 유재하 사진 옆에 87. 夏라고 쓰여 있었다. 난 그렇게 87년 여름으로 날아갔다.
다시 못 올 지난날을 난 꾸밈없이 영원히 간직하리
그리움을 가득 안은 채 가버린 지난날
- 유재하 ‘지난날’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