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접했다.
그와 더불어 할머니는 코로나에 걸리셔서 의식이 없으셨다고 들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할아버지는 허망한 삶을 산 듯하여서 후회투성이였다.
스스로 헛되이 살았으며 더 노력해야 하고 불만이 많아 보이셨다.
아프신 와중에도 그렇게 격려하거나 응원 하는 모습이 아니셨어서, 난 할아버지가 불만을 품을 만큼 아직도 기운이 있으시구나 싶었다.
오히려 할아버지 주변에 아무도 없었어서 원망함의 섞인 투정이 아니였을지 이젠 생각해본다.
너무 안타까웠다.
손녀로써 해드린 것도 없고 기억 나는 거라곤 할아버지한테 야단 맞으면서 배운 고드름과 섬집 아기 뿐이다
왜 좋은 기억은 없는데 이리 가버리신걸까 왜 좋은 추억도 못 쌓고 난 호주에서 바쁘다는 핑계로 그리 안일하게 넘겼을까...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할아버지를 2년 전 쯤 뵈었었다. 그 때 리코더를 할아버지가 연주 하시면서 섬집 아기를 불렀는데,
그냥 울컥 했었다…
내 기억 속에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제 희미하다.. 8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공백기에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채울 수 없었다.
출근 길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의 첫 반응은 이랬다.
할아버지랑 별로 안 친한 것도 있고,
어떻게 이 사실을 받아드려야 할지...
예전 장례식을 갔었던 기억을 되떠올리며 할아버지의 사진이 걸려 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했었다.
내가 장례식을 안 가도 되나 라는 생각이 바로 사라지고 이 자리에서 할아버지의 끝맺음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걸텐데 이걸 안 가면 어쩌겠나.. 싶어서 비행기 표를 알아 봤는데,
시차도 8시간 차이나고, 가는데만 10시간이 넘어서 도착해도 할아버지를 못 뵙는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기회조차 없이
할아버지를 체코에서 떠나보냈다.
일이 뭐라고.. 비행기 타는게 뭐라고....
시차가 뭐라고...
이 모든게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같이 보내는데 반대하는 기분이였다.
할아버지, 내 가족이 하늘로 떠났는데
난 평소와 같이 아무렇지도 않게 덧신을 신고 안전조끼를 입고 클린룸으로 향한다..
내 가족이 죽었는데,
정작 아빠는 호주에 있어서
바로 가지도 못하고.
이런 저런 삶의 이치라고 해야하나.. 해야 하는 일.. 해야 하는 일 때문에 또 중요한 시간을 보내버렸다.
죽음은 살면서 가깝게 느껴지지 않아서,
항상 뒷전이고 뭐가 소중한지 모르고 나의 교육, 나의 삶이 중요해서 호주에서 쭉 시간을 보낸 것만이
괜히 원망스럽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나도 알고, 다시 돌아가도 그랬을 거라는 나임도 안다.
할아버지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고, 어찌하여 주변에 달갑게 사랑스럽게 익살맞게 다가와 주는 사람이 없었을까... 이런 할아버지의 입장이 속상하다.
아직도 할아버지의 죽음 소식이 그냥 문장같다.
괜히 최근에 들렸던 성당들 가서 제일 목숨이 위태로우셨던 할아버지 할머니 말고 다른 자들을 위해서는 기도를 하는데 두분들 빠트린게 괜히 생각난다.
왜 그들은 나에게 큰 존재가 아닌건지...
왜 슬퍼야 하는데 그 슬픔이 나의 소중한 사람을 잃어서가 아니라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없고 할 수 있는게 없고 그들을 동정하는 마냥 빗대어 생각하며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픈데도 내색 안 하고 할머니도 편찮으셔서 간호하고 요리하고 챙겨주시다가 본인 몸은 더 피폐해지는 걸 막을 수 없었는지.
아픈 걸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던건지.
아파도 어찌 할 수 없었던 건지…
너무 안타깝고 속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