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큐님젤리빈2021 S/S 문집 인터뷰
우리는 서로의 글을 궁금해하고 자잘하고도 소중한 상상을 보탠다. 써머의 글은 재야가, 재야의 글은 써머가 취재에 나섰다. 그래서 하 편은 조금 더 특별한 느낌!
인터뷰어 재야
<롤랑바르트- 애도일기(리커버 에디션) 출판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 시놉시스
❝어느날 지우와 에피가 스카이프로 만난다. 화면 공유창을 띄워놓고 포트메리온 그릇을 쇼핑하며, 두 사람은 죽음과 약속, 액땜과 점괘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우는 에피가 죽지 않기를 바라고, 에피는 지우의 존재가 정확히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알고 싶다. 정확하게는, 지우의 집주소를 알고 싶다. 두 사람은 농담과 진심을 오고가며 은근하게 서로에게 원하는 바를 전달하는 통화를 이어나간다.❞
- <롤랑바르트- 애도일기(리커버 에디션) 출판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저는 지우와 에피는 서로를 대하는 행동에 약속이랄까 거래랄까, 계기가 필요한 것 같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서로에게 모든 것을 터놓지 않으면서-그래야 뭔가 조건으로 내걸 것을 남겨둘 수 있으니까- 서로를 붙잡아두는 것 같았는데, 본인들 스스로 관계를 그렇게 구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두 사람의 관계 설정에 대한 얘기, 계기가 듣고 싶어요.
사실 지우가 저예요. (충격고백) 그리고 모든 것을 잊었다... 이 희곡을 쓰는데 30분이 걸렸어요. 그중 10분은 포트메리온 공식 사이트에 들어가서 그릇 사진을 고르고 캡처하는데 썼고요. 아마 그래서 제 무의식이 제일 많이 들어간 희곡일 거예요. 그렇기에 에피 모델은 따로 있다기보단 저와 애정 어린 관계를 맺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합쳐진 형태일 것 같아요.
- 지우와 에피가 이제껏 서로에게 한 약속은 무엇이 있었을까요? (어긴 것 포함)
희곡에 나온 것이 첫 번째 약속들이에요. 아마 단언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둘 다 그걸 후회할 수도 있고요.
- 희곡에 실존 인물과 작품이 여럿 나오는데 그것들이 써머의 기호와 관련이 있는지 궁금했어요!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이나 싫어하는 작품이라든가... (<파랑을 말하는 방법> 부록에서 써머의 기호에 대한 얘기가 몇 개 있었는데 얘기 듣는 거 재미있었어요.)
내 기호를 궁금해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정말 신나고 즐겁네요. 먼저 <롤랑바르트- 애도일기(리커버 에디션) 출판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쓰고 가장 많이 질문을 받은 건 롤랑바르트와 포트메리온 브랜드 접시인 것 같아요. 전자는 꽤 좋아해요. 롤랑바르트는 옛날에 카메라 루시다-사진에 관한 노트로 처음 접했고 애도일기를 읽으면서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책 서문에 [롤랑바르트는 본인이 가장 출판하기 싫어했던 글에서 롤랑바르트를 가장 낱낱이 볼 수 있다!] [바르트는 자신의 쪽지가 결국 ‘문학이 되고 말까 봐’ 우려했지만, 『애도 일기』는 우리에게 와서 슬프고 아름다운 문학이 되었다.] 등등의 문구들을 보니까 어이가 없더라고요. 후자는 사실 이마트나 홈플러스에 가면 보이는 가장 비싼 그릇이라 결정했어요. 물론 꽃이 그려져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 외에는… 저는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을 좋아하고, 프랑수아즈 사강의 <한 달 후 일 년 후>를 애정하고, 오노레 드 발자크의 사생활이 좋아요(?) 유진 오닐이나 사무엘 베케트도 좋고요.
싫어하는 게 사실 더 많은 것 같기도 한데요. 일단 아서 밀러를 만나게 된다면 엉덩이를 때려주고 싶어요.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도 싫어요.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를 좀 증오해요. 초등학교 오 학년 때 도서관 성인 구역에 숨겨져 있는 1Q84를 읽었는데, 아직도 두상이 예쁜 대머리 중년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 주인공과, 자기 어머니의 외도를 기억하는 음습한 남자 주인공이 또렷하게 기억나요. 저에게 아주 안 좋은 영향을 주었다고 확신해요… 하루키는 절 안 마주치는 게 좋을 거예요… 잘 피해 다니시길…
- <롤랑바르트- 애도일기(리커버 에디션) 출판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는 노부인과 고양이가 슬퍼하지 않기 위해서, 또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 서로를 미워하기로 하는데 , 똑똑한 고양이는 가장 안정적으로 지속 가능한 감정을 미움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써머에게 있어,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데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처음의 기억. 그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묘한 우월감. 너와 같은 결핍을 공유하고 있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내내 함께 할 것 같다는 운명론적인 사고요. 엄청 건강하지는 않은 것 같고요, 고양이가 훨씬 똑똑한 것 같습니다.
<보라색 비가 내리는 숲> 시놉시스
❝크렘 브륄레와 에르메스, 미우미우를 사랑하는 작가 윤아는 살고 있는 집 전세 만료 기간이 다가오며 애인 현재와 트러블을 겪게 된다. 윤아네 집 건물 1층 코인세탁방에 임시거처를 마련한 미나는 적극적으로 윤아의 편에 선다. 노력은 하기 싫지만 넓은 집에 살고 싶고, 돈은 모으기 싫지만 멋진 옷이 가지고 싶은 윤아가 아슬아슬하게 인생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 <보라색 비가 내리는 숲> 윤아와 미나가 서로에게 한 가지씩 선물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을 선물할까요?
미나 : 빈티지 샵에서 구매한 빈티지 에르메스 스카프 (진품일지는 알 수 없지만 비싸기는 하다)
윤아 : 나와 차 마시는 시간을 선물하겠어. 대신 완벽한 티타임을 위해 비싼 얼그레이 티백과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레코드판을 사야겠다.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요. 미나는 누구보다도 윤아의 기호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친구이니, 후보군을 세 개 정도 정해두고 심각하게 고민할 것 같고요. (ㅋㅋ) 처음엔 윤아의 이니셜이 새겨진 각인 만년필을 선물해주려다, 윤아가 과연 글 쓰는 것과 관련된 선물을 좋아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결국엔 빈티지샵에서 빈티지 에르메스 스카프를 선물할 것 같아요. 짧은 손편지와 함께… 하지만 윤아는 함께 멋진 티타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엄청난 선물, 이라고 생각할 거고 아마 일사천리로 준비하지 않을까요. 평소에 가지고 싶었던 것에 명분도 생기고요. 훌륭한 일일 파티 플래너가 될 거예요.
- 보라색 비가 내리는 숲의 윤아가 정말 정말 매력적이어서 윤아에 대한 질문을 잘해보고 싶었는데... 딱 정리해서 말할 수가 없네요! 매 장면에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데 전부 윤아다운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뭔가 윤아와 관련된 비하인드나 이 인물을 만들게 된 계기 등이 궁금해요!
윤아는 사실,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저랑 닮아있는 것 같아요. “아 나 미우미우 구두랑 루이비통 미니백 사고 싶은데 노력은 하기 싫네?”란 생각에서 캐릭터가 출발했거든요. 윤아가 좋아하는 명품 브랜드들도, 단순히 비싼 게 아니라 윤아의 기호가 담겨 있었으면 했어요. 요즘 너무 유행하고 있는 브랜드들은 일부러 뺐고요. 비비안 웨스트우드, 페라가모, 에르메스, 미우미우 중에 고민하다가 최종으로 에르메스랑 미우미우를 밀고 나가자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약간의 사심으로(사실 아주 많이…) 자우림의 김윤아에서 이름을 따왔어요. 희곡의 제목도 자우림, 자주색 비가 내리는 숲에서 따온 거고. 희곡을 쓸 때도 일탈과 HEYHEYHEY만 들었어요. 헌정 희곡 같은 거기도 해요, 사실…
마지막으로는 윤아가 충동적이다, 잘 이해가지 않는 인물이다란 이야기도 정말 많이 들었는데 어느 부분에선 맞는 말 같고 어느 부분에선 틀린 말 같아요. 윤아는 계획적인 인물이라기보단 직관적인 인물이에요. 성격과 기호가 뚜렷하니 순간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거죠. 현재를 사랑하지만 싫은 건 싫은 거고, 미나가 좋고, 에르메스가 좋으니 사야겠고 노력은 하기 싫지만 글을 쓰고 싶을 땐 글을 써요.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또렷하고, 타협하지 않는 강인함도 있고요. 슬퍼할 때도 있지만 우울하지는 않고 그래서 세상을 사랑하고요. 저도 윤아가 좋아요, 보라색 비가 내리는 숲에 나오는 모든 인물을 이해하지만, 윤아를 제일 사랑하는 것 같아요.
인터뷰어 써머
<젤리가 끝나면> 시놉시스
❝어느 날 사과가 떨어져 젤리에 잠긴다. 꺼내 보려고 노력하지만, 젤리 안으로 손을 집어넣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과의 곁을 지키던 중, 이대로는 안 된다고 느끼고 사과의 곁을 떠나 바다에 가보기로 결심한다. 지나가던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그동안 사과를 지켜봐 주기로 한다. 도착한 해변에는 푸른 젤리 속에 잠긴 사람이 있다. 피아노 선생님은 그와 아는 사이인 듯, 그는 그냥 자고 있는 것뿐이며 언제든 깨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 <젤리가 끝나면>에서는 과일이 곧 사람, 인물들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젤리라는 말랑하고 투명한 이미지 안에 사과라는 단단하고 둥근 것도 뭔가 시각적으로 재미있게 다가오는 것 같고요. 많은 과일 중에 사과가 선택된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문득 장면이나 문장이 떠오르면 바로 글을 쓰기 시작하고, 적다 보면 다른 장면들이 떠올라서 이어 적어요! 그래서 사실 제 글에 나오는 설정들은 대부분 의도가 있었다기보다 떠오른 장면 안에 이미 들어있던 것들이에요. 보통은 평소 제가 좋아하는 것들과 관련이 있는데, 사과와 젤리는? 그 정도로 좋아하진 않는 것들이라 저도 의문이에요... 집에 가던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사과가 분홍색 젤리 땅 위로 떨어져 그대로 갇히는 장면이 떠올랐고, 적다 보니 곧 사과가 사람과 겹쳐졌어요.
<서핑 휴가> 시놉시스
❝지구인 C와 스핀은 무기한 비자를 발급받아 비행하며 행성 간의 교역을 중개한다. C는 바다라면 질색인데, 거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바다가 있는 행성에 착륙한다. C는 그곳에서 여름이 없는 행성에서 왔다는, 지구인처럼 생겼지만 고양이처럼 세로로 가는 동공의 Q를 만난다. 지나가듯 다음 여름을 기약하는 C에게, Q는 여름이 있는 다음 행성은 어디인지 묻는다. 얼마 뒤, C는 그때 자신이 알려준 행성이 곧 소멸 예정임을 알게 되고 Q를 만나기 위해 행성으로 향한다.❞
- <서핑 휴가>를 읽고 '가장 여름다운 모습을 한 채로'라는 문장이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재야가 가장 여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 혹은 여름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지금에 최선을 다해 부딪히는 사람이에요. 잘 웃고 서툴러서 울기도 하지만 그 모습이 반짝이는 사람들.
- <서핑 휴가>에서 C가 파트너와 떨어져 있을 수 있는 기간에 제한이 있다는 것이 낭만적으로 느껴져요. 우주가 배경이고, 또 수많은 행성들을 방문하고 떠나기도 할 거고… 유일하게 유일한 것이 비자 제한으로 생기는 숫자인 것 같고 그래서 구속적이고 답답한 느낌이기보다 안정감이 드는 것 같기도 해요. 쓰다 보니 이것은 그냥 감상이네요…. 흑흑… 이런…
멋진 감상 고마워요! 덕분에 저도 둘의 관계의 낭만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그러고 보니, 변하는 풍경과 그동안 지나온 행성들에 대해 언제고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이 다행인 것 같아요. 둘은 거의 늘 붙어 다니고 또 그래야 하는 관계지만, 의무감은 느끼지 않고 있을 정도로 잘 다니고 있네요! 상성이 좋은 것 같아요.
- 재야의 글들이 전부 이미지가 분명하기도 하고, 또 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재야가 좋아하는 이미지와 영화의 결이 궁금해져요. 좋아하는 영화가 있을까요? 혹은 영감을 받았던 영화 라거나요!
<푸른 불꽃>, <황색 눈물>, <불량공주 모모코>. 재미있게 본 영화는 정말 많은데, 콕 집어서 대답할만한 영화는 저 세 편 정도인 것 같아요! 사실 영감을 받거나 더 좋아하는 쪽은 드라마인데...! 한국 드라마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일드를 정말 좋아해요. 그런데 이제껏 제가 쓴 글들과 좋아하는 작품들의 이미지는 크게 겹치지 않는 느낌? 저는 좋아하는 작품들에서 공간감을 느끼고, 제가 정말 사랑하는 풍경이니 늘 영향을 받고 있는 건데.. 막상 글에선 티가 나지 않는 것 같아요.
<내가 고른 오늘> 시놉시스
❝고교 입학 이래, 카나자와는 저와 똑 닮은 안드로이드를 대신 학교에 보내고 있다.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나츠키다. 안드로이드의 감정은 인간보다 불안정해, 주기적으로 ‘구슬’을 복용해야 한다. 구슬은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사탕 「하루노아메」와 「크리미 하우스」의 사은품으로, 대부분의 사람은 구슬의 효능도 AI의 존재도 알지 못한다. 카나자와는 토다-AI에게 맡기지 않는 유일한 존재-의 가방 속에서 두 사탕의 케이스를 발견한 뒤, 그가 안드로이드가 아닌지 의심한다. 한편, 나츠키는 지난 여름 야구 연습 이후 줄곧 기억에 남아있던 히나타가 학교 뒤편에서 구슬을 삼키는 모습을 목격한다.❞
- <내가 고른 오늘>에서 안드로이드와 구슬이 연결되는 것이 개인적으로 너무 오묘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게 가장 멀고 미래지향적인 것과, 가장 아날로그한 것이 만난 느낌이기도 해요. 너무 재미있어요.
학기말 소설로 뭘 쓸까 하다, 전에 쓰고 싶었던 글 중에 사랑에 관한 미신과 애증이 섞인 학원물...이 있었어요. 초반에 나오는 ‘하루 동안 벚꽃잎 일곱 장을 잡아 가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느니’라는 문장이 그 흔적이에요. 꽃나무가 많이 심겨있는 교정에, 가쿠란 입은 애들이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려고 운동장 이곳저곳에서 점프하며 손을 뻗는 모습을 생각했었어요. 그 글에 ‘유리구슬 세 개를 물고 잠들면 원하는 것을 알게 된다’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구슬은 거기에서 가져왔어요. 그리고 안드로이드는.. 그즈음에 뭘 쓰려해도 자꾸만 안드로이드로 흘러갔어요. 그런데 구슬 이야기도 AI 이야기도 그 이상 떠오르는 장면이 없어서, 마감이 가까워졌으니 어쩔 수 없다 둘을 합쳐볼까? 해서 나온 이야기예요.
- <내가 고른 오늘>에서 맨 마지막 장면을 보면 히나타가 기억 정보를 리셋하러 간 적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그런데 글 제목은 내가 고른 오늘인 것이 저에게는 애틋하게 다가왔어요. 재야가 이 제목을 정하게 된 과정이나, 담고 싶었던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요.
감정에 영향을 주는 구슬과 안드로이드 등등 조금 특이한 설정들이 나오지만, 이 모든 것들이 이 글 속 인물들에게는 결국 평범한 일상이라는 걸 드러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튀지 않는, 거창하지 않은 제목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런 일상적인 단어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어요. 저는 평범한 일상을, 하루하루를 긍정하는 사람이 좋거든요. 저는 지금 그렇지 않지만, 이 글 속의 인물들은 그런 하루를 살아나가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말씀해주신대로, 몇 차례고 기억을 지운 적이 있는 히나타와 관련이 깊은 제목이에요. 마지막 장면에서 히나타는 처음으로 그런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았고, 나츠키는 그에 대해 ‘앞으로를 살아나가 보자’라는 느낌의 얘기를 해준 거라 생각해요. 스스로 긍정할 수 있는 오늘을 산다면, 그게 ‘내가 고른 오늘’인 것 같아요.
책에는 일본어 제목과 한국어 제목이 병기되어 있는데, 일본어로 먼저 생각난 것을 한국어로 옮겨 적은 것이에요. 選んだ를 ‘선택한’이 아니라 ‘고른’으로 번역한 것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무거운 느낌이 들지 않았으면 해서였어요. ‘고르다’는 식당에서 메뉴를 고르거나 할 때 쓰는 말이니까. 그런데 제목만 봤을 때는 역시 너무 평범한 느낌이어서, 제목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질문해줘서 고마워요!
- 세 글 모두 구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요. 모서리가 있거나 날카롭지 않고 원만하고, 애정이 담긴 사려 깊은 구의 이미지예요. 그래서 만약! 요즘의 재야를 구 형태의 한 가지 사물로 비유할 수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그렇게 느껴주어 정말 고마워요! 구는 애정의 형태와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전에 언뜻 현실과 조금 동떨어진 글들을 적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제게 있어 각각의 세계가 비눗방울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공격에 취약한데 공격받지 않았으면 했고, 이야기 속 시간이 그대로 맺혀있었으면, 전후 없이 그 순간만 존재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시간이 흐른다는 걸 생각해요. 시간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는 시간들이 있다는 것.
저를 구 형태의 사물에 비유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구 하면 수정구슬, 스노우돔, 제 방의 달 무드등, 수박, 솜으로 만든 공 모양 키링.. 그런데 저를 대입해보자니 확 와닿는 게 없네요 ㅠㅠ 다만 구와 관련해 떠오른 기억이 있어요!
전에 파인이 학교 근처 카페 처마에 비치볼이 매달려있는 걸 보고는, 너무 좋다고 여름 느낌 난다고 한 적이 있어요. 아마 여름 자체를 좋아해서라기보다도 그 공에서 나는 여름 느낌이 특히 좋아서 그렇게 말했던 것 같은데!(어디까지나 저의 추측) 제가 생각하는 여름에는 비치볼의 이미지가 들어있지 않았지만, 파인이 그 말을 하는 순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어요. 그 비치볼 색감도 재질도 여름 같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