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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나를 키우는 게임

by 틔우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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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아이를 낳았다. 백일도 안 된 갓난아이는 모든 게 작고, 연약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수하고 무해한 눈을 보니,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너는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자라나게 될까,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살다 보면 잊을 때가 많겠지만, 사랑 많이 받고 태어난 존재라는 거 꼭 기억해야 해" 아이에게 마음으로 속삭였다.


요즘 주변 지인들이 하나둘씩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키워간다. 아이가 아니더라도 반려동물이나 식물을 키우는 경우도 많다. 의도치 않게 식물도 종종 말려 죽이던 나에겐 무언가를 키우는 그들이 대단하게만 느껴졌다. 궁금해졌다. '키운다'라는 건 무엇이길래? 왜 사람들은 무언가를 키우려고 하는 걸까?


책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말했다.

"길들인다는 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는 거야. 너는 내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야. 난 네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고"


그렇다. 무언가를 키운다는 건 특정 대상과 관계를 맺는 일이다. 수많은 사람이 있고, 동물이 있고, 식물이 있지만, 그중 딱 하나의 대상과 관계를 맺는 일이다. 관계를 맺은 후에는 그 대상을 향해 마음을 쏟는다. 어린 왕자가 장미꽃을 위해 둥근 덮개를 씌워주고, 바람막이로 보호해 주고, 벌레를 잡아주는 것처럼. 장미꽃이 불평해도, 자랑을 늘어놓아도, 침묵해도 그 곁에 가만히 있어 줬던 것처럼.


물론 가끔, 그 존재 때문에 울게 될 수도 있다. 두렵고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국 그 존재를 위하게 된다. 아프지 않았으면, 행복했으면, 잘 자랐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이처럼 무언가를 키운다는 건, 사랑과 책임감을 마음에 품는 일이다. 그렇게 서로가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가는 아름다운 일이다.


무언가를 키우는 게 어렵게만 느껴지던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마음을 품은 적이 있었을까?

그 대상을 위해 시간을 들이고, 돌보며, 잘 자라나기를 바랐던 적이 있었을까?


떠올려 보면, 그러한 마음은 늘 존재했다. 대상이 누가 되었든지 간에. 사랑이 있는 모든 순간 속에 그 마음이 있었다. 그 대상은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알고 보면, 나는 매일 나를 키우며 돌보고 있었다. 마치 어릴 적 좋아했던 게임인 '프린세스 메이커'처럼.


'프린세스 메이커'는 내가 보호자가 되어 한 아이를 키우는 게임이다. 아이가 자라나는 과정에서 매 순간 아이를 위한 선택을 한다. 공부하게 할까, 쉬게 할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할까. 매일 게임 속에서 내가 했던 사소한 선택들이 쌓여 그 아이의 삶을 만들어갔다.


문득, 삶도 이 게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나에게 새로운 게임 환경이 주어지니까. 게임 속의 그 아이처럼, 나도 매 순간 나를 위한 선택을 하니까. 오늘 하루를 어떤 의도로 살아갈지, 무슨 음식을 먹을지, 누구와 만날지와 같이.


장미를 키운 어린 왕자처럼, 나를 위해 마음을 쏟기도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잘 자라날 수 있도록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해로운 생각이 벌레처럼 찾아오면 잡아주고, 상처를 받으면 쉬어갈 수 있도록 보호한다. 늘 곁에 머무르려고 한다. 가끔 나 자신에 취해 마음껏 자랑하는 날에도, 스스로가 싫어져 불평하고 미워하는 날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날에도.

나를 위해 선택하고, 키워나가는 과정들이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간다.


"난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 되길 바라요"

드라마 <또 오해영>의 한 대사처럼, 난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나'라는 존재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되기를 바란다.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는 삶이라는 게임 속에서, 나를 키운다는 건 때때로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놓지 않겠다는 책임감으로, 내가 잘되길 바라는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기다리고, 키워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난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니까,

오늘도 난, 나의 보호자가 되어 나를 키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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