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필로소퍼, Vol.9 삶을 죽음에게 묻다
EP 05.
Editor. 마고
온 세상이 분주히 생의 감각을 알리는 봄. 어쩌면 봄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가장 알맞지 않은 계절일지 모른다.
봄은 연둣빛 새싹, 엷은 분홍색 꽃잎들, 이제 막 생을 틔우려는 가장 여리고도 가장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매개물이자 생명력 그 자체이다. 기온에 따라, 따뜻한 계절보다는 추운 계절에 고령층의 사망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 걸 보면 통계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봄은 죽음을 이야기하기엔 낯선 면모가 있다.
하지만 철학자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생명력이 태동하는 봄이야말로 죽음을 논하기에 가장 알맞은 계절이리라. 죽음이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가장 좋은 도구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역설적으로 삶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고, 죽음이 있기에 삶은 의미를 찾는 것일 수도 있다. 죽음과 삶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동전의 양면, 빛과 그림자처럼 늘 한 몸으로 함께 존재한다.
벚꽃이 소란스레 자신의 존재를 알리던 4월 어느 날. 우리는 죽음을 통해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나눈 이야기는 크게 두 개의 관점으로 나뉜다. 죽음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을 아래 두 주제에 따라 하나씩 얘기해보고자 한다.
I.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II. 나의 죽음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일상기록가 : 최근에 훌쩍 지나가버린 저의 30대를 되돌아보면서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많이 느끼곤 해요. 시간의 유한성은 죽음과도 관련되어 있지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해야 좀 더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가련화 : 이 책을 관통하는 일관된 의견이자 주제는 '죽음이 필연적인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삶을 충만히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책을 통해 죽음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좋았어요. 특히 다른 나라의 장례 풍습을 사진을 통해 생생히 보여줬던 부분이 정말 좋았어요. ‘이렇게까지 죽음을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고. 그들의 장례 문화를 존중하게 되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아요.
밤바다 : 죽음이란 건 일반적으로 피하고 싶고 언급하기 꺼려지는 주제이잖아요. 그런데 이 책에서는 죽음과 죽음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거라고 이야기를 하죠. 덕분에 제 생각도 바뀌었어요. 이전에 죽음이 두렵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였다면, 지금은 어떻게 죽고 싶은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을 만큼 달라졌어요.
마고 : 죽음을 통해서 오히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어요. 지금까지는 나의 죽음이 실제적으로 와닿았던 적은 없었어요. 이 책을 통해 ‘만약 죽는다면, 죽기 전에 내 삶을 어떻게 돌아보고 싶을까’를 생각해 보니 허투루 보내는 시간들이 너무 아쉽게 느껴질 것 같더라고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알고 그대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던 시간이었어요.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되는 것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마주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사랑한 만큼 애도하게 된다는 것. 죽음이 내게 준 가르침이다.
팀 딘, '죽음이라는 위대한 스승', 뉴필로소퍼 Vol.9 삶을 죽음에게 묻다, pp.19~24.
가련화 : 아홉 살 때 증조할머니께서 돌아가신 경험이 태어나서 처음 마주한 죽음이었어요. 당시에 '증조할머니가 일어나시지 않는다, 이대로 편히 잠드신 것 같다'는 전화를 어머니께서 받으셨고, 그때 상황이 아직도 되게 많이 기억에 남아요. 저는 어렸기 때문에 친척집에 맡겨져 있다가 마지막날에 장례식에 방문했어요. 그땐 옛날이라 할아버지집 마당에서 장례식을 했어요. 마당에 흰 천막이 둘러있고, 어른들은 술을 마시며 즐겁게 놀고 계셨는데 슬픔과 같은 감정을 느낄 틈이 없었어요. 이전까지 배운 것으로는 누군가 죽으면 슬퍼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누군가 돌아가셔도 슬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 기억이 무척 인상 깊어요. 그래서 아직도 장례식 가서 침울한 상황을 마주할 때 낯설어요. 이런 제가, 만약 저희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직접 시신을 마주하고 잘 대응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에요. 그렇기에 더욱 무연고 사망자 봉사를 다니거나 죽음을 가깝게 마주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밤바다 : 제가 경험한 죽음은 어렸을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거예요. 어릴 때 제 꿈이 가수였는데 친척집에 모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할아버지가 '네가 가수가 되는 걸 보고 죽어야 하는데'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런데 그다음 날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저희 아버지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시는 분인데도 눈물 흘리며 오열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이 충격적이긴 했지만 제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의미가 와닿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이 늙어가는 모습들이 보이잖아요. 가족들이 모였을 때 죽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자연스럽게 가족의 죽음에 대해서 상상을 하게 돼요. 그런데 그게 싫더라고요. 죽음이란 주제에 대해 꺼내고 싶지 않고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요.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봐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면 아마 애도의 기간이 길지 않을까 생각해요. 애도를 충분히 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 어렵겠단 생각도 드네요.
가련화 : 조만간 엄마 아빠에게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 물어보고 싶단 생각이 드네요. 부모님이 생각하시는 죽음이 있을 거고, 책에서도 말했듯이 죽음에 대해 편히 이야기를 꺼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모님께서 생각하시는 방향에 대해서요.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를 일이니 한 번쯤 이런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생각해요.
일상기록가 : 죽음에 대해서는 친한 사이에도 이야기하지 않는 분위기와 문화가 있잖아요. 이 책을 읽으며, 언젠가는 마주해야 하는 일인데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았어요. 그런 감정 자체를 다루기가 힘들뿐더러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이란 주제를 꺼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거죠.
저도 부모님이 연로해 가시는 게 느껴져요. 저희 아버지도 ‘노화’에 적응하기가 어렵다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노화는 아버지께서 원하지 않는 과정이고, 몸의 기능이 예전과 다르다는 걸 느낀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어느 날은 가족 카톡방에 뜬금없이 당신의 사진을 올리셨는데 그게 영정사진의 용도인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너무 놀랐어요. 얘기를 해보니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고 그런 차원에서 올렸다고 하시더라고요. 충격적이었어요. 그때 ‘내가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구나, 이런 대화를 우리가 나눠보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책을 보면 죽음에 대한 정말 다양한 문화들이 있어요. 죽음을 병으로 여기거나, 시신과 함께 하거나, 애도의 기간을 갖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렇게 했을 때 주변 사람들과 죽음의 당사자가 떠나기 전에 죽음을 좀 더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마고 : 저희 어머니도 60대이신데요, 60대도 한창 젊은 나이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죽음을 준비한다기보다는, 주변인이 돌아가시는 경험을 많이 하다 보니 자연스레 죽음이란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삶의 일환으로 받아들이고 계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최근에는 엄마가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다는 증명서를 미리 발급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셨어요. 병상에 누워서 생명만 연장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기에 싫다고 하시면서요. 저는 엄마가 이런 얘기를 해도 ‘알겠는데, 너무 먼 얘기다’라고 느껴져요.
저는 대학교 3학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요, 장의사분이 시신을 염하고 가족들에게 보여 주셨어요. 돌아가셨지만 보기 힘든 모습이 아니라 편안한 상태로 준비를 해주시더라고요. 그때 엄마와 이모들이 할머니를 만지며 작별인사를 하고 우는 모습을 보았어요. 슬프기도 했지만 좋은 작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복작거리며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할머니를 잘 보내드리는 과정을 겪는 거란 생각을 했어요. 그 경험을 통해서 죽음에 대해서 다 같이 슬퍼하고 위로하는 시간들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일상기록가 : 현대 사회에서 죽음은, 옛날처럼 집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나는 게 아니라 병원에서 일어나잖아요. 공중의학이 발달했다는 좋은 측면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의 이전과 후가 많이 다르고 구분되는 느낌이에요. 망자가 살아생전의 가까웠던 사람이 아니라 이질적으로 다뤄지는 느낌을 받았었는데요, 이 책의 사진을 보며 망자에 대한 가치관 같은 것들이 우리와는 많이 다르고, 오히려 산 사람과 밀접해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리고 그걸 애도하는 과정이 너무 진실되고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오히려 평소보다 더 가깝다는 느낌이 들면서 현대와 대비가 되더라고요.
마고 : 먼저 말씀드린 외할머니의 죽음뿐만 아니라, 제가 경험한 다른 죽음에서도 가까운 가족들에게 시신을 보여주고 인사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지켜봤어요. 그래서 저는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엄마가 할머니를 보내주셨던 것처럼 저도 그렇게 하고 싶을 것 같아요. 우리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니까, 그 돌아가신 모습을 바라봐 드리고 작별인사를 하는 과정을 거치고 싶을 것 같아요. 일상기록가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돌아가셨기 때문에 차단하는 게 아니라, 살아 있었을 때처럼 마치 잠자는 사람을 대하듯 만지고, 잘 가라고 인사하는 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정말 마지막 순간이잖아요. 물성으로 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도 들고요.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보내주고 싶어요.
가련화 : 저도 공감하는 게, 인정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 사람이 죽었다는 걸 인정하려면 사람을 눈으로 봐야 인지가 확실히 되잖아요. 죽었다는 그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애도를 직접적으로 했을 때 그렇다면 제대로 보내줄 수도 있고, 또 살아있는 나 혹은 살아있는 가족들이 여기 현실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밤바다 : 저도 처음엔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마지막 모습이니까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정리를 하고 애도하는데 도움이 될 거 같아서요. 마지막 한마디를 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일상기록가 : 저는 이 질문을 발제할 때 인정하기 싫은 마음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게 감히 상상도 안되고, 과연 그게 가능할까라는 생각도 들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마지막 작별인사라는 의미에서, 그리고 그 죽음을 인정하고 현실의 삶으로 복귀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고 : 아무리 가려 놓았다 하더라도 죽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데 오히려 덮어놓았다는 것 자체가 더 슬프게 느껴졌던 거 같아요. 이 책에서 ‘황금만능주의 시대에 죽음은 실패를 의미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죽음이 이미 우리에게 벌어진 현실임에도 그걸 감춰야 할 사실로 여기고 덮어둔다는 게, 그 상황을 외면하고자 하는 것 같아서 더 슬프게 느껴졌던 거 같아요. 암묵적, 암시적으로 죽음을 느끼는 게 더 슬프다고 해야 할까요. 한 번 장례식장에 간 적이 있는데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 없이, 교회에서 와서 찬송가를 부르는데 그게 너무 슬픈 거예요. ’저 노래를 왜 부르는 거지, 장례식장에 교회에서 와서 노래를 부른다는 건 누군가 돌아가셨다는 뜻이구나’라고, 죽음을 암시적으로 느껴야 했을 때 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죽은 사람과 만나서 작별하는 과정이 산 사람을 위한 과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던 거 같아요.
가련화 : ‘더 나은 죽음을 위하여’라는 호스피스 병동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있어요. 호스트 분이 의사이자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을 하시는 분이고,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분들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고 계신가, 그들을 위해서 어떤 죽음을 해주어야 하는가라는 의사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요. 이 다큐에서는 두 가지 주제가 나와요. 첫 번째는 존엄사예요. 죽음을 편하게 맞이하고 싶은 사람의 죽음을 존중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죠. 두 번째는, 호스피스 병동에서의 삶이에요. 여기서도 죽을 때까지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잘 보내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일반인처럼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요. 예를 들어 암으로 한 달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죽을 때까지 한 달 동안 우울하고 힘들게 보내면 더 예후가 좋지 않다는 논문이 있다고 해요. 이 다큐를 보면서 존엄사와 죽음을 맞이할 때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어요.
마고 : 저는 '오래 살고 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단순히 얼마나 오래 살지 보다는 삶의 질이 어떨지에 따라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건강하게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오래 살고 싶겠지만 몸이 노쇠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고 즐겁지 않은데 오래만 살아야 한다면 죽음보다 못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만약 생명 연장이라는 게 고통 속에서 생물학적으로만 살아있는 것이고 당사자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면, 존엄사도 선택지가 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책에서 어떤 분은 불법 자살약을 몰래 구해두었으나 가족들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어서 결국 고통 속에서 죽었다는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결국 죽음을 앞두고 계신 분이 어떤 선택을 내리고 싶은지를 존중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고통스럽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내 삶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너무나 고통스럽고 죽어야만 하는 운명이라면 그 시간을 더 편하게 보낼 수 있게 해드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밤바다 : 저도 외할머니가 병원에서 돌아가시는 걸 싫어하셨어요. 이전부터 이모들과 엄마한테 이야기를 해오셨는데, 위급한 상황이 오니까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가게 되셨어요. 할머니께서 호흡기를 차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돌아가셨는데 호흡기를 찰 때 원망 섞인 눈빛으로 보았다고 이모들이 그러시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남아있는 사람들의 욕심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죽음을 선택하는 건 본인이 해야 하고, 존중하는 게 맞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고요. 지금 제가 읽고 있는 책이 존엄사 이야기인데요. ‘그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라는 책이에요. 한국인 중에서 스위스 조력자살 한 사례가 나와요. 이 책을 읽으며, 죽음이라는 건 개개인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련화 : 말씀드린 다큐에서도 존엄사 하는 모습을 보여줘요. 그걸 보고 나서 조금 생각이 바뀌었던 게 있어요. 이런 분들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기다림이 있잖아요. 그러다가 돌아가실 때 함께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데 존엄사를 하게 되면 인사할 시간을 충분히 주거든요. 다큐에서 엄마가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봐요. 마지막에 잠에 드는데, 사람이 죽고 나서도 청각은 계속 살아있거든요. 그래서 계속 사랑한다고 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요. 저는 어쩌면 그게 더 당사자가 선택을 했기 때문에 그 상황에 대해서 그 사람을 잘 보내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나 악용하게 될까 봐 아직까지 많은 나라들에서 불법이겠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그걸 악용해서 살인으로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에 막는 게 이해가 되면서도, 반면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예쁜 모습으로 보고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그 방식도 존중할만하다고 생각했어요.
마고 : 가련화 님 이야기를 듣게 되니까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되는데요, 만약에 고통스러운 분이 진통제 같은 것으로 고통을 잊을 수만 있다면 함께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을 것 같네요. 가족들 입장에서는요. 지금 죽지 않아도 되는데 죽음의 시기를 정한다는 게,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고, 나도 일부 그 죽음에 대해 승인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일상기록가 : 그 선택을 왜 하는지는 알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영화 ‘미비포유’를 보면서 처음으로 그걸 느꼈어요. 저는 이전에는 생명은 너무 소중하고, 개인이 그걸 좌우하는 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영화 주인공 남자는 액티브하고 다이내믹한 활동이 삶의 원동력이었는데 그걸 못하게 되니 삶의 질이 떨어지고 그냥 생명을 유지할 뿐인 상태가 돼요. 누구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없게 되고, 내 삶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선택으로 존엄사를 결정하게 되죠. 그런데 주변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가 않아요. 영화에서도 부모님과 의견다툼이 있잖아요. 죽음뿐만 아니라 다른 헤어짐의 과정에서도, 떠나는 사람은 되게 깔끔하게 떠나요. 마음 정리도 하고요. 그런데 항상 남아있는 사람이 그 부재와 뒷모습을 기억하게 되는 거 같아요.
요즘 치매 노인분들에 대한 알림을 많이 받는데, 그것만 봐도 안타까움을 많이 느끼거든요. 내가 가족들에게 짐이 되는데 생명을 유지하는 것만이 삶의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저 같아도 존엄사를 선택하고 싶은 상황이 올 거라 생각이 들어요. 존엄사를 선택하려면 그만큼 경제적 위치가 있어야 하기도 하고,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런 선택을 존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하는 게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들어요.
오늘밤에 죽는다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인생관을 바꾸면 삶은 충만해질 것이고,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에 후회도 훨씬 적을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후회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 지금 당장 그 일을 해야 한다. 지상에서의 시간은 너무나 짧다. 내일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정말로 충만하게 오늘을 살아야 한다.
- 수 블랙, '오늘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뉴필로소퍼 Vol.9 삶을 죽음에게 묻다, pp.90~102.
가련화 : 내가 죽는다는 걸 알게 되는 게 정말 두려운 부분이거든요. 오늘 아침 눈을 떴는데 누군가 제게 24시간이 남았다고 하면... 되게 복잡한데, 그런데 저는 평소에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죽음이 두렵지는 않아요. 그래서 누군가 오늘 저에게 죽는다고 하면 '그래 오케이. 잘 되었다.' 할 거예요. 어찌 보면 지쳐서일 수도 있고 혹은 삶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일 수도 있는데. 이만하면 죽어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을 가끔 해요. 그래서 누군가 오늘 저에게 죽는다고 하면, ’ 24시간을 뭐 하지?’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정말로 현실로 마주한다면 약간의 후회를 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어쨌든 우리는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리스트를 생각하며 사는데 이걸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있을 것 같아요.
일상기록가 : 저는 되게 두려울 거 같아요. 내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인데 내 의도와 다르게 갑자기 죽음을 마주해야 한다면 두렵고 억울할 거 같고 분노의 단계가 찾아올 거 같네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인가,라는 생각에서 시작할 것 같고요. 그다음에는 남은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려면 내게 뭐가 의미 있을까를 생각할 것 같아요.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주변인들에게 편지를 쓰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껏 못다 한 말이나 미안했던 일에 대해서요. 그다음 나머지 시간은 기도를 할 것 같아요. 출생도 그렇지만 죽음도 온전히 혼자 가는 거잖아요. 저는 신을 믿는데 그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 대해서 잘 정리할 수 있도록 기도할 것 같아요. 저는 크리스천이지만 사실 천국에 갈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요. 죽음을 직면한다면 내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이 클 거 같고, 그래서 계속 기도할 거 같아요. 내가 왜 이 세상에 왔고, 지금 시점에서 어떤 걸 해야 할지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시간을 많이 쓸 것 같네요.
밤바다 : 저는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을 때 항상 와닿지가 않았어요. ‘내일 당장 죽을 것을 생각해서 오늘 이렇게 살라’라는 메시지가 와닿지 않았었어요. 평소에는 가련화 님처럼 오늘 죽어도 상관없겠다 생각하다가도 막상 진짜 죽음을 당면할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라는 생각이 첫 번째로 들 거 같아요. 무엇인가 후회된다면 주저했던 것들에 대해 후회할 거 같아요. 두려워서 하지 못했던 행동이나 사랑을 표현하는 거나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그 순간을 즐겨볼걸, 이렇게 후회할 것 같아요. 오늘도 벚꽃이 흩날리는데, 오늘 핸드폰만 하다 죽는다면 억울하고 허망할 거 같은 거예요. 차라리 밖에 나가서 그 순간을 즐기고 죽는 게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고 : 예전엔 가련화 님이나 밤바다 님처럼 지금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거 같거든요. 근데 그게 회피를 하고 싶어서 그랬던 거더라고요. 제대로 내 삶을 잘 살아낼 용기, 나의 시간을 잘 쓸 에너지가 없으니까 그냥 지금 죽어도 상관없다고 회피적으로 생각했던 거 같은데, 최근에는 지금 당장 죽는 건 억울할 거 같단 생각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10대는 대학을 위해서만 살아왔고, 20대는 아무 생각 없이 학교만 다니다 우연히 들어간 회사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시간을 보냈고, 이제야 좀 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그걸 시도하고 부딪치고 이루기 전에 죽는다면, 내 삶의 의미가 그냥 이 사회에 주어진 환경에 맞추어 흘러가다 죽었구나, 밖에 되지 않을 거 같거든요. 내가 내 삶의 의미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시도하고 나서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도 만약 내일 죽어야 한다면. 저도 정말 가족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사랑 표현도 많이 하고요. 저도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까지 전하지 못했던 진심을 표현하는 시간을 갖고 싶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밤바다 : 저도 편지를 생각했어요. 전하지 못했던 말을 다 하고 죽어야 할거 같은 생각이 들어요.
일상기록가 : 결국 관계가 남게 되네요.
가련화 : 모두가 남는 사람들을 걱정하고 있네요.
일상기록가 : 우리는 장례식도 하나의 정형화된 틀로 진행을 하잖아요. 그런데 굳이 실현가능성을 떠나서, 내가 죽을 때 어떤 식으로 이벤트를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어요. 예를 들어 저는 지인, 친구들을 모아놓고 꼭 죽기 직전이 아니더라도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같이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서로 관련된 추억들을 나누고 사진도 같이 보면서 이야기하면 되게 의미 있고 내 삶을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따듯함을 느끼고 싶었어요. 내가 이만큼 헌신했고 마음을 쏟은 사람들과 그걸 같이 추억하고, 내 삶의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의미 있는 관계를 잘 만들어왔고 이것만으로 충분하다, 이거 자체가 중요한 가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련화 : 따뜻하네요. 둘러앉아서 그 사람의 마지막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밤바다 : 저는 바다 앞에서 뭔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바다를 좋아하는데. 삶과 죽음이 파도처럼 왔다가 가는 게 똑같다고 생각하거든요. 보기만 해도 치유되는 힘이 있잖아요. 장례식이라고 해서 슬픈 게 아니라 잔잔하게 보면서 위로받고, 사람들이 따듯한 걸 가져갔으면 좋겠다 생각해요. 그리고 이벤트라고 했을 때 생각나는 게 편지였어요. 각자에게 편지를 써서 장례식 때 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마고 : 저는 어차피 제가 죽고 난 다음이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도 없고 아무 상관없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요, 그래도 장례식이 산 사람을 위한 거라고 했을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의 죽음을 잘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해주는 뭔갈 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밤바다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풍경도 좋은 곳이었으면 좋겠고요. 새하얀 벽만 있는 정신병원 같은 장례식장보다는 자연 속에서요. 죽은 저와 그 지인의 살아생전에 가장 즐거웠던 경험들을 떠올릴 수 있게끔, 사회자가 있다면 고인분과 어떤 관계였는지, 어떤 좋은 기억이 있는지를 묻는다던가요. 그리고 저 역시 편지를 써준다든가, 죽기 전인데 너무 힘들 거 같기는 하네요, 아니면, 어벤저스에서 토니 스타크가 죽기 전에 영상편지를 남기는데 그런 걸 해볼까?,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제 장례식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러면서요. 저는 좀 재미를 주고 싶은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가련화 : 듣다 보니 결국 장례식은 남은 이들을 위한 거잖아요. 그렇다면 좀 밝게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평소에 저는 장례식도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원래 가지고 있었어요. 저는 종교가 불교이다 보니 저의 죽음에 대해 스님께서 기도만 해주시면 감사하다고 평소에 생각을 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이렇게 생각했던 것은 저만을 위한 생각이고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남은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은 생각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네요. 저도 마고 님처럼 유쾌하게 나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공간을 대여하고 거기에 우리가 같이 사진들을 영상으로 만들어서 빔프로젝트로 보면서 같이 떠올릴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어요. 그렇게 좀 저를 기쁘게 보내줄 수 있다면 참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장례라는 거에 내가 남겨둔 사랑하는 사람들도 배려해야 하는구나를 깨달았습니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집중한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삶’이고, 다른 하나는 그 삶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도, 내 죽음에 대해서도 그것을 준비하고 받아들이고 보내주는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삶과 관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죽음은 죽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의 존재를 삶의 일환으로써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활용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 글을 정리한 건, 우리가 죽음에 대한 대화를 나눈 지 3주가 지난날이었다. 글을 정리하며, 그동안 얼마나 죽음을 잊고 영원할 것처럼 살고 있었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이 대화를 나눴을 때만 해도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것처럼 인생을 있는 힘껏 후회 없이 살아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뜨거워졌었는데 말이다.
우리는 삶의 많은 순간에 얼마나 자주 두려움을 느끼며, 매사에 재고 따지는 방식을 통해, 죽기 전에 후회로 가득할 것 같은 삶의 태도를 취해오고 있던가. 왜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해보지 않음'이 가장 크게 후회가 될 것 같다. 죽으면 다시는 그 무엇도 해볼 수는 없을 테니까. 살다 보면 조심스러워진다. 최선의 선택을 내리고 싶어서, 후회하기 싫어서. 그러나 그건 영원이 살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어쩌면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지금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으니까.
더 잘 살아가기 위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그 앞에서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 지금 당장 내가 살아낼 삶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경험해 보았거나, 어떤 마음이 들지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모습을 보고 싶나요?
조력 자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존엄사가 합법화되면 내 가족, 지인 혹은 자신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을까요?
죽음 앞에서 내 삶의 의미나 한정된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서 깨달은 적이 있으신가요?
오늘 밤에 죽는다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싶으신가요?
나만의 방식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다면 어떤 장례식이었으면 하나요?
묘비명에 어떤 글을 새기고 싶으신가요?
죽은 후에 자신이 사랑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죽음 앞에 겸허해졌거나 감사함을 느꼈거나 삶의 행복의 실마리를 찾은 경험이 있나요?
책 : 그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
책 : 애도하는 게 일입니다
책 :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다큐멘터리 : 더 나은 죽음을 위하여
영화 : 미비포유
영화 : 스틸라이프
영화 : 원더풀라이프
드라마 : 굿플레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