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의 마음은 남아 있어요.
슬프게도 모든 관계에는 끝이 있다. 영원히 함께할 것만 같았던 사람과도 끝은 있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과의 이별을 경험하는 것도 힘든데, 삶의 일부였던 사람과의 이별을 경험했을 때는 후유증이 한참을 갔다. 한때는 상처받기 싫어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혼자 있으려고 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혼자 있는 나를 꺼내주는 건 또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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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이사를 많이 다녔었다. 부산, 순천, 장성, 광주 등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를 정도였다. 반 친구들과 친해지려고 할 때 즈음이면 난 떠나야 했다. 살기 위해서는 이별에 무뎌져야 했다. 그래서였을까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기를 어려워했고 낯도 많이 가렸다. 어차피 곧 떠나니까, 마음을 주려고도 받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 내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최근 부모님 집에 방문했다가 추억 상자를 발견했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와 주고받은 편지와 작은 선물들로 가득했다. '이 시절의 나도 감정과 추억을 공유했던 누군가가 있었구나' 싶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지만 나에게 남겨놓은 것들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은 떠나가도 그 시절의 마음은 나에게 남겨두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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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면 엄마는 항상 무언가를 내 손에 쥐여줬다. 음식이 될 때도 있었고, 작은 선물일 때도 있었다. 우리 집에는 항상 누군가에게 줄 만한 작은 선물과 포장지, 편지지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느 날, 아빠가 엄마에게 '사람들에게 너무 퍼준다'라고 말을 한 적 있다. 엄마는 누군가에게 항상 주는 사람에 속했었으니까. 아빠에게 하도 소리를 들어서 그런 것일까, 엄마는 나에게 "너는 엄마를 닮았어. 엄마처럼 사람들에게 너무 퍼주려고 하지 마"라고 말한 적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남은 게 없다며 말이다.
하지만 난 보았다. 누군가는 엄마의 마음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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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주는 것은 단순히 물건을 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 당시의 내 마음을, 추억을 나누는 일이다.
모든 관계는 시절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오는 사람이 있다. 지금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도 언젠가는 끝은 있을 것이다. 어차피 끝이 있는 관계라면, 그 사람과 함께 하는 동안엔 나의 마음을 아낌없이 주고 싶다. 나는 당신을 생각해요. 고마워요. 당신을 아껴요. 응원해요. 등의 마음의 표현을 말이다.
그리고 믿는다. 언젠가 내가 주는 것들의 형체는 없어지더라도, 관계가 끝나더라도, 그 시절의 내 마음은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누구든 모두 떠나는 법이야.” 아버지가 조용히 말한다.
나는 아버지가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슬퍼할 필요는 없어. 좋은 걸 남겨두고 가니까.”
- 앨리스터 매클라우드, 「모든 것에 계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