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현지적응을 위한 기술
여행의 첫날이다. 호스텔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느껴지는 생경함으로 여행을 왔다는 것을 실감한다. 핸드폰 시계를 확인하니 아침 8시, 오늘은 일요일이고 나는 방콕에 있으니 8시라는 시간은 하루를 시작하기에 적당했다. 커튼이 드리워진 방 안은 어둑하다. 맞은편 이층 침대에서 잠들어 있는 아이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아직 한밤중인듯하다. 1시가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호스텔 방 안에는 복도로 나 있는 창문이 하나 있고 이층 침대와 싱글침대가 사이좋게 놓여 있다. 좁은 공간이지만 방안에 그럭저럭 사용할 만한 화장실과 낡은 TV, 전신거울까지 있으니 있을 건 다 있는 셈이다. 첫 번째 숙소는 늦은 밤 도착해서 잠만 자는 곳이라 비쌀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왕이면 청결하고 시각적으로 거슬리는 구석이 없는 숙소였으면 했다. 그렇게 찾은 숙소가 ‘모닝호스텔’이었다. 공항무료 픽업, 깔끔한 분위기, 조식포함까지 단돈 3만 원! 가성비 갑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숙소가 업그레이드되는 맛을 느끼기에도 모닝호스텔은 여러모로 좋은 조건이었다.
#조식
9시에 예약한 조식을 먹겠다고 방 밖으로 나가니 태국스러운 햇볕과 냄새가 나를 반긴다. '아~ 반가워라!' 얼마 만에 찾아온 태국인가. 바삭거리게 만드는 햇살과 초록 식물들이 뿜어내는 풀 냄새 그리고 매연냄새가 어우러진 남쪽 나라의 특유의 분위기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3만 원짜리 호스텔에서 주는 조식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웬걸 귀여운 조식을 받고 우리는 화알짝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꽃무늬가 그려진 쟁반 위에 소시지가 들어간 계란프라이 2개, 버터가 발라진 토스트, 주스, 물 그리고 수박 3조각은 일요일 아침에 어울리는 완벽한 구성이었다.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 전까지 자유시간을 가졌다. 나는 아침을 먹던 그 공간에서 책을 읽고, 아들들은 방 안에서 유튜브를 보았다. 같이 책을 읽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렇게라도 나 혼자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내가 편한 공간을 찾아 그곳에 있도록 노력할 뿐이다."
도시인의 월든, 읽고 있던 책에 밑줄을 그었다.
#로컬식당
여행 첫날은 딱히 계획이 없었다. 가성비갑 숙소에서 체크아웃하고 첫 번째 목적지 ‘끄라비’를 가는 비행기를 타러 가기까지 5시간이 남는데, 방콕 시내를 들어가긴 애매하고 그냥 랏끄라방 동네에서 어슬렁거릴 작정이었다. 점심 식사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구글지도를 열어보니 숙소 맞은편에 식당들이 제법 있어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횡단보도가 없는 왕복 6차선 도로를 건너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길 건너는 건 포기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1순위는 ‘안전’이었고 점심식사에 목숨을 걸 수는 없었다. 식당을 찾아 동네를 한 바퀴 돌다가 결국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우리 같은 여행자들에게는 도전 의식 내지는 약간의 용기가 필요한 로컬식당이었다.
둘째 아이는 파리가 많다고 테이블에 앉기조차 거부했다. 이때 엄마인 내가 쓸 수 있는 방법은 협박과 회유였다. 살살 달래서 자리에 겨우 앉혔다. 로컬 식당이라 식당 주인이 한국어를 전혀 못 알아듣는 게 다행이었다. 전혀 알아볼 수 없는 태국어로만 쓰인 메뉴판 앞에서 태국어를 전혀 모르는 나는 살짝 당황했으나 구글번역기와 다른 테이블에 앉은 현지인의 도움으로 음식을 주문할 수 있었다. 자리에 앉지도 않았던 둘째 아이는 밥을 다 먹고는 한 그릇 더 시켜달라고 했다. 성공이었다. 우리가 시킨 음식은 4종류, 모두 합쳐서 200밧이었다. 한화로 약 7400원이다. 태국 여행의 첫날은 가성비로 따지면 ‘갑’인 하루였다.
2023. 랏끄라방에서 ⓒteey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