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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과 산책 Jul 28. 2023

5. 게으른 여행자들의 낙원

목적지에 도착하는 기술

  여행의 시작은 이동의 연속이었다. 인천에서부터 방콕을 거쳐 첫 번째 목적지인 끄라비에 도착하기까지 긴 여정이었다. 동행자인 초등학생 아들들이 제법 컸기에 가능한 동선이었다. 방콕 수완나품공항에서 저녁 비행기를 타고 끄라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깜깜한 밤이 되어 있었다. 짐을 찾아 입국장으로 나오니 사람들이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였고 우리도 덩달아 마음이 급해져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런데 어디로 나가야 하지?'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들기도 전에 위기대응 모드가 작동되었다.  "How many people?" "where are you go?" 현지인들이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의 호객행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늦은 시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직감했다. 꾸물댔다가는 비용이 더 많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공항에서 시내 들어가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온터라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이럴 땐 빠른 판단이 최선이었다. 호객행위하는 현지인에게 냉큼 다가가 얼마인지를 물었다. 300밧이라며 그는 이미 돈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싼 건지 적당한 건지 감이 오질 않았지만 일단 "오케이" 하고 300밧을 꺼내려는데 현금이 260밧뿐이었다. 최대한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260밧 밖에 없다고 하니 그도 "오케이!" 나의 표정연기가 통했다.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숫자가 쓰인 종이 쪼가리를 받고 그가 안내한 위치에 어리둥절하게 서 있었다. 다른 서양 여행객들도 나와 같은 과정을 거쳐 모이기 시작했다. 한 참을 기다리니 미니밴 한 대가 우리 앞에 섰고 '이 사람들이 다 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무색하게 미니밴에 바짝 끼여 앉아 끄라비 타운에 있는 숙소로 이동을 했다. 수대쟁이 아들들은 겪어 본 적 없는 분위기에 입을 다물고 캄캄한 창 밖으로 시선을 두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낯선 끄라비의 풍경이 흘러갔다. 비소로 끄라비에 온 것을 실감했다.


 밤에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 아침의 풍경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마치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단지 해가 떴을 뿐인데 풍경이 달라진다고 느끼는 것은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단순한 변화를 낯선 여행지에서 마주하기 때문일 것이다. 첫째 녀석이 커튼을 열어젖히고 발코니로 나갔다. 머리에 까치집을 짓고 잠옷 바람으로 서 있는 뒷모습이 여행지에서의 남편과 매우 닮아 있었다. 아들이 자라면서 아빠의 모습을 닮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여전히 신기하고 낯설기만 하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단순한 변화를 매일 아이들의 성장을 통해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 야자수와 풀밭이 있는 풍경을 한참 바라보던 아이는 이곳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끄라비.



 아직 끄라비 다운 풍경, 푸른 바다가 있고 기암절벽이 있고 여행자들이 해변에서 햇살을 즐기는 풍경을 보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끄라비가 마음에 들었다. 진짜 끄라비를 만나러 가기 전에 일단 조식 먹고 수영이나 할까?



*게으른 여행자들의 낙원 (EBS 세계테마기행 끄라비편 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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