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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과 산책 Jul 26. 2023

3. 공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

떠나는 날의 흥분을 감추는 기술

 공항으로 가는 길은 여행에 대한 기대로 늘 들뜨게 된다. 출발 직전까지 짐을 싸느라 피곤한 상태인데도 떠나는 날의 흥분을 감추기란 쉽지 않다. 아이들도 그랬다. 비행기를 타고 낯선 나라를 간다는 사실만으로 흥분하기엔 충분했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를 보내는 입장이 된 남편만 평정심을 유지하는 듯했다. 어쩌면 함께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과 서운함을 감추기 위한 평정심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런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마냥 신나서 올라가 있던 내 입꼬리를 짐짓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출국장의 사람들도 대체적으로 '떠나는 날의 흥분' 상태인듯했다.  어떤 이들은 옷차림에서부터 도착지가 어디인지 짐작할 수 있었고, 어떤 이들은 가벼운 발걸음에서 떠나는 날의 흥분지수를 읽을 수 있었다.

비행기 출발 2~3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면, 여행 시작의 첫 번째 관문은 짐 붙이기이다. 나는 아들 둘과 함께 여행하기에 엄마인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커다란 캐리어 하나에 짐을 담아왔다. 가방 무게 제한이 있는 걸 알았지만 보통 탑승자 합산으로 무게를 측정했던 경험치가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통과'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경험치는 아시아나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부칠 수 있는 가방 1개의 무게는 24.9kg 이어야 했고, 내 가방의 무게는 30kg가 넘는 무게였다. 가방 무게를 줄이는 일이 몸무게를 줄이는 것보다 쉬운 일이겠지만, 수속 카운터에서 가방을 펼쳐서 짐을 옮겨 담고 무게를 맞추는 일은 한 겨울에도 진땀 나는 일이었다. 다행히 우리가 입고 있던 외투를 담아가기 위해 남편이 가져왔던 작은 캐리어가 있었기에 짐을 24.9kg로 나눠 담고 무사히 1차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대신 남편은 3명의 부피 큰 겨울외투를 이고 지고 가야 했다. 미안하게도.


두 번째 관문은 검색대 통과이다. 사실 검색대 통과의 기술은 간단하다. 생각지도 못한 100ml의 액체류가 가방에 있다면 버리면 되고, 뾰족하거나 폭발하는 물건이 있다면 아깝지만 눈 딱 감고 버리면 된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아끼는 물건이라면 다시 출국장으로 나가서 집으로 택배를 보내는 방법도 있지만 웬만하면 출국장으로 다시 나가고 싶지 않다. 여행을 하면서 수차례 검색대를 통과해 봤으니 위와 같은 기술을 발휘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나는 생각보다 자주 검색대 관문에서 막힌다. 이번에는 짐을 나눠 담는 과정에서 새로 산 헤어트리트먼트가 기내용 가방에 담겨있는걸 검색대 입구를 통과하기 전에 알아챘고, 새것이라 버리기에는 아까워서 첫째에게 공항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아빠를 찾아 전달하고 오는 미션을 주었다. 재빠르게 미션을 수행한 아들 덕분에 무사히 2차 관문도 통과하고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마지막 관문은 창가 자리 쟁탈전이다. 이 관문은 두 아들을 둔 나에게 가장 까다롭고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이다. 창가 자리에 앉고 싶은 두 아들은 탑승구에서 대기하는 내내 창가 자리에 누가 앉을지를 두고 설전을 벌인다. 말발이 센 첫째 녀석은 나름의 논리로 자신이 창가에 앉아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둘째 녀석은 무조건 자기가 창가 자리에 앉고 싶다고 떼를 쓴다.  엄마도 창가 자리에 앉고 싶다고 말해보지만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진 않는다. 정정당당하게 '가위바위보'를 해서 결정하자.라고 해서 가위바위보를 해보지만 승부가 나면 승부가 나는 대로 잡음이 생긴다. 출발부터 피곤이 밀려온다. 아무리 그래도 "너희들이랑 여행 다시는 안 갈 거야!"라는 말만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속으로 다짐해 본다. 여러 번의 조건제시 끝에 극적인 타협을 보고 우리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왕복티켓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방콕 수완나품 공항까지 약 6시간의 비행. 두 편의 영화를 보았고, 화장실을 두 번 갔고, 기내식을 한 번 먹었다. 모처럼 먹는 기내식에 신나서 와인 받고, 홍차 받도, 커피도 받아 우걱우걱 맛있게 먹었는데 소화가 안된다. 나이가 들었다는 말이다. 그래도 기내식의 모닝빵과 버터 그리고 커피의 조화는 포기할 수 없는 맛이다. 희한하게 모닝빵과 버터 그리고 커피는 집에서 먹으면 이 맛이 안 난다. 하늘 위에서 먹어야만 느낄 수 있는 맛인가 보다. 



OZ 741 우리가 탄 비행기는 11:23분에 랜딩을 했다. 11:31분에 입국심사를 기다리고, 11:47분에 짐을 찾고, 자정을 넘겨 방콕 수완나품공항을 빠져나온 우리는 명랑한 걸음걸이의 태국 아저씨를 따라 첫 숙소에 도착해 그대로 잠이 들었다.


 '떠나는 날의 흥분'은 밤을 날아오면서 차분히 가라앉았다. 아이들에게 이 도시의 첫인상은 어떻게 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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