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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과 산책 Jul 25. 2023

2. 여행가방 미리보기

짐 싸기의 기술

여행 가방은 ‘여행의 미리 보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여행가방에 차곡차곡 짐을 싸면서 앞으로의 여행을 상상해 보게 되는데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은 낭만과 피곤을 동반한다.


출발 3일 전, 거실에 펼쳐져있는 28인치 트렁크를 쳐다보니 짐을 싸야 한다는 생각에 급 피로감이 몰려왔다. ‘괜히 한 달이나 여행을 간다고 했나...’이런 생각이 밀려와도 이제 와서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자처한 여행이니 여행의 낭만적인 순간을 상상하며 여행준비물 목록에 적힌 물건을 생각날 때마다 챙겨 담는 수밖에 없었다.


ㅁ 여권

ㅁ 항공권

ㅁ 여행경비(환전할 것!)

ㅁ 약간의 한국돈

ㅁ 사진(여권 분실 시)

ㅁ 필기도구

ㅁ 여행노트, 스케치북, 아이들 일기장

ㅁ 카메라(Eos55, contax T3) , 필름

ㅁ 고프로

ㅁ 책(3권)

ㅁ 선글라스

ㅁ 모자

ㅁ 수영복, 수경, 수모

ㅁ 슬리퍼, 운동화

ㅁ 구급약(감기, 배탈, 대일밴드, 소화제 등등)

ㅁ 모기기피제, 모기약

ㅁ 양말

ㅁ 화장품(스킨, 로션, 파운데이션, 선크림)

ㅁ 세면도구(칫솔, 치약, 샴푸, 트리트먼트)

ㅁ 바디워시, 클렌징폼

ㅁ 면도기

ㅁ 마스크팩, 태닝크림

ㅁ 휴지, 물티슈

ㅁ 머리끈

ㅁ 애플워치, 충전기

ㅁ 핸드폰 충전기

ㅁ 어댑터

ㅁ 양산(우산)

ㅁ 마스크

ㅁ 도난방지열쇠

ㅁ 지퍼백

ㅁ 에코백

ㅁ 바다 물놀이용 암튜브

ㅁ 이어폰

ㅁ 손톱깎이

ㅁ 비치타월, 비치공

ㅁ 돗자리

ㅁ 오리발(숏핀), 스노클링 물안경

ㅁ 속옷

ㅁ 잠옷

ㅁ 아이들 옷

ㅁ 내 옷

ㅁ 여행용 루미큐브



혼자 여행할 때 배낭에 담았던 준비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구급약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여행 짐은 최대한 줄이자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구급약만큼은 늘이면 늘렸지 줄일 수가 없었다. 만약에 일어날 일에 대비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라고 해야 할까? 이번 여행에서 아이들의 보호자는 오롯이 나 혼자였기 때문에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나도 다치거나 아프면 안 되는 일이었다. 혹시 코로나에 걸릴 수 있는 상황까지 생각해서 평소 다니는 이비인후과에서 일주일치 약을 처방받아서 챙기기까지 했다. 약만 해도  한 짐이다.


환전은 100만 원 정도만 했다. 한 달 동안 100만 원으로는 부족하겠지만 너무 많은 현금을 들고 다니는 것이 부담되어 나머지 비용은 카드를 사용하거나 현지에서 인출하기로 했다. 이럴 때 나는 쫄보가 된다.


여행에서 읽을 책으로 <여름과 루비>, <아버지의 해방일지>, <도시인의 월든> 3권을 챙겼다. 과연 세 권을 다 읽고 올 수 있을까? 의구심이 살짝 들었지만 긴 여행이기에 가능할 것 같았다. 여행에서 책을 읽는 것은 내(엄마)가 부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사치를 좀 부리고 싶었다. ‘내가 책을 읽으면 아들들도 책을 읽겠지?’라고 생각하며 아이들 책도 각각 한 권씩 챙겼는데 안타깝게도 그 책들은 여행 내내 펼쳐지지 않고 짐만 되었다.


나에게 여행만큼 중요한 것은 여행의 기록이다. 기록하기 위해 아이들은 일기장을, 나는 카메라와 노트를 준비했다. Eos55는 20년 전부터 내가 여행 갈 때마다 가지고 다니는 필름카메라이다. 여기에 50mm 단렌즈를 장착하면 척하면 척! 알아듣는 친구 같은 녀석이 된다. contax T3는 쨍한 색감을 보여주는 똑똑한 카메라인데 예상을 뛰어넘는 사진이 나올 때가 있고 간혹 내 의도와 상관없는 곳에 초점을 맞춰 나를 당황시키는 매력이 있는 카메라이다.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친구들이다. 여기에 물속에서 놀 때 찍으려고 고프로까지 챙기니 기록용 장비는 완벽한 느낌이 든다.



여행용 캐리어에 담은 짐들이 방바닥으로 흘러나와 있다. 흘러나온 짐들을 가방 안에 꾹꾹 눌러 담으며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가자!라고 생각했다.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해서 갈 수는 없다. 어쩌면 주어진 것들로 완벽한 여행을 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의 기술이 아닐까? 단 이 기술의 핵심 비법은 완벽의 기준을 느슨하게 하는 것이다.

출발 전 날, 음식물쓰레기 버리기, 식물에 물 주기, 빨래, 설거지도 해 두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다시 한번 피곤이 몰려왔다. 엄마가 되다 보니 여행 가기 전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건 엄마의 숙명 정도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피곤하지만 확실한 즐거움을 찾아서 여행을 떠난다.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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