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핑을 시작하게 된 건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과연 나도 할 수 있을까?’ 30대 후반에 수영을 시작하며 물에서 하는 운동에 자신감이 붙었지만 중년의 나이에 서핑을 배운다는 것은 그야말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어느 날 문득 용기를 내어 2박 3일 동안 서핑을 배우기로 결심을 하고 양양으로 향했다. “엄마 파도타기 좀 배우고 올게.” 세 살배기 아들과 열 살짜리 아들은 남편에게 맡겨두었다. 육아를 하고 있는 워킹맘이 서핑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뿐만 아니라 다른 노력들도 따라야 했다. 그만큼 어렵게 만든 기회이기에 서핑을 하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파도와 나. 그뿐이었다. 그게 좋았다.
처음은 테이크 오프(take off)가 목표였다. 보드 위에 서는 것을 말한다. 처음 강습을 받을 때는 강사님이 언제 일어서야 하는지 외쳐주신다. 심지어 보드도 밀어주신다. 몇 번의 테이크오프를 성공하고 나면 그 짜릿함에 더 잘해보고 싶어 져 다음 기회를 결심하게 된다. 3일 연속 서핑을 해서 너덜너덜해진 몸 상태로 집에 오지만 입가에는 웃음기가 번져있다. 기분 좋은 근육통이 밀려온다. 다음은 파도를 혼자서 잡아보는 것이 목표였다. 좋은 파도를 만나야 하기에 좋은 파도를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왕이면 여행도 하면서 말이다. 짧게라도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서핑 스팟을 찾아다녔다. 오키나와로 다낭으로 송정으로 양양으로 만리포로 서핑여행이었다. 발리는 긴 휴가를 받으면 그때 가려고 아껴두었다. 파도를 잡은 날보다 파도를 놓친 날이 더 많았다. 좋은 파도보다 밋밋하거나 거친 파도를 만나기 일쑤였다. 파도를 타는 실력은 그다지 늘지 않았지만 차트에 1미터짜리 파도가 들어와도 보드를 들고 바다로 들어갈 수 있는 자신감은 생겼다. 1년에 두어 번 서핑을 해서는 도무지 실력이 늘지 않았다. 매번 리셋되는 기분이고 만년 비기너(초보자)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육지에서 몸만들기였다. 스쾃, 플랭크, 버핏 등 코어근육을 강화하면 서핑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듣고 한동안 홈트를 해보았다. 성과가 없진 않았지만 몸만들기의 의지는 한 계절을 버티기 못했다. 짬짬이 서핑 영상을 보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보았다. 아니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만든 이미지와 현실의 나 사이의 간극이 너무나 커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만 느끼게 해 줄 뿐이었다.
‘서핑의 매력이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선 내 안에 깊이 내재되어 있는 도전의식을 발동하게 한다. 마치 나쁜 남자 같다. 파도를 타기 위해 보드를 들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부터 파도를 타고 해변으로 떠밀려오는 순간까지, 테이크 오프를 성공하든 그렇지 않든 정신을 바짝 차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생각보다 센 파도에 귀싸대기라도 한 대 맞으면 그야말로 번쩍!
서핑은 인생이랑 닮아있는 운동이다. 나만 균형 감각이 좋다고 되는 운동이 아니고 때를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고, 파도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기도 해야 하고, 내 한계를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하고, 다른 사람을 살필 줄도 알아야 하고, 기회가 오면 잡을 줄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런 생각들을 하는 곳이 출렁이는 바다 위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서핑을 제대로 배운다면 인생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이라고 외치며 할머니가 될 때까지 서퍼로 살아갈 계획이다. 만년 비기너라 할지라도.
teeyang | 아이들과 눈을 맞추기 위해 이름을 수십 번 부르는 특수교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 여행과 사진을 좋아해 방학이면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 그 덕분에 책도 몇 권 냈다. 요즘은 구독자를 늘릴 궁리를 하며 <특뽀입니다> 유투버로 활동 중이다. 이번 생에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