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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슈타인 가아더 『소피의 세계』

철학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존재를 침잠하게 한다.

by 책 읽는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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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 한층 다가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러 가지 철학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어떻게 세계가 창조되었는가? 실제 일어난 사건의 배후에는 어떤 의도나 의미가 숨어 있는가? 죽음 뒤에 또 다른 삶이 있는가? 대체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어떻게 찾아야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25p



이런 철학 책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구성적으로는 완벽하게 소설의 그것에 가깝고, 내용적으로는 철학서에 더 맞닿아있다. 그렇다. 이 책은 소설이 가진 특징을 매우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여타 철학책의 드높은 장벽을 허물어 독자로 하여금 철학의 세계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보물인 것이다.


액자식 구성을 이용해 책 속에 또 다른 이야기를 등장시키는데, 소설 속 소설의 주인공들에 철학의 근본적 시작점인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라는 물음을 던짐으로써 소설 속 인물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이것을 뛰어넘어 우리 역시 소설 속 인물, 즉 어느 절대자의 뇌 속에서 움직이는 하나의 유기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즉, 독자와 소설 속 주인공과 소설 속 소설의 주인공은 같은 철학적 질문 앞에 시공간을 뛰어넘어 소통하게 되고, '존재'에 대해 깊은 철학적 사유를 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다. '존재'라 함은 인간만이 쓸 수 있고, 인간만을 포함하는 개념이 결코 아니고, 존재하는 혹은 태어났는 순간 모든 것에 부여되는 일종의 불가피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개개인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된다.


아직은 헷갈린다. 존재의 깊숙한 내면을 탐구해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 내가 철학에 바라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러한 고민을 거듭하며 내 삶 자체에 생기를 불어넣고 더 나은 존재가 되어가길 철학에 바라고 있는 것인지. 분명히 나는 철학을 욕망하고 있고, 현재 내 삶의 무한한 행복은 철학에서부터 오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사실 그런 생각도 해본다. 내가 어디서 왔고, 내 존재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규명하여 정답을 찾는 것보다는 그런 물음을 해 나가는 것 자체가 나를 존재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존재에 대한 고민 자체가 삶을 대충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책 속의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일지언정, 난 그 소설 속에서조차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 존재를 증명하는 행위의 일환이니까.


현실이든 소설이든, 내 뜻 없이 창조된 세계 아래 있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무관하다. 내가 어느 세계 아래에 있든 나는 나니까. 철학에 성역은 없다.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를 읽는 나, 『소피의 세계』 속 힐데 크낙 소령의 책 『소피의 세계』를 읽는 힐데,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 속 크낙 소령의 『소피의 세계』의 소피, 이 세 명은 다른 시공간에 위치해 있고 실존하며 실존하지 않지만, 존재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공유했다.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상이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에도 전해지듯, 철학의 근본적 사유인 존재에 대한 물음은 공간을 뛰어넘어 전해진다. 그렇게 철학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존재들에 침잠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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