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외도를 바라보는 편집증적 시선
완전히 날이 저물었지만 A는 램프를 가져오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램프는 모기를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자칫 잔을 엎지를까 봐 그녀는 프랑크가 앉아 있는 의자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섰다. 오른손에는 그에게 줄 잔이 조심스럽게 들려 있다. 다른 쪽 손으로는 의자의 팔걸이를 짚고서 그녀는 프랑크 위로 몸을 숙인다. 너무나 가깝게, 그들의 머리가 서로 맞닿을 만큼. 프랑크는 몇 마디 말을 속삭인다. 틀림없이 고맙다는 말일 것이다.
외도가 의심되는 아내를 바라보는 편집증적 시선으로 이루어진 화자의 광적인 이야기. 여러 번 서평에 언급한 적 있지만, 정신적 이상의 징후가 있는 화자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소설들은 굉장히 불친절하다. 또한 불편하다. 온전하지 못한 정신에서 나오는 생각과 묘사들이 온전한(?) 정신을 가진 독자로 하여금 꽤 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야기랄 것도 없다. 집에 자주 놀러 오는 가까운 이웃의 가장인 프랑크와 아내 A가 같이 있거나 쑥덕거리는 모습에 대한 화자의 묘사와 해석이 주를 이룬다. 심지어 프랑크와 A의 행위가 다이나믹한 것도 아니고 식사, 식사 후 간단한 음주 정도이며 같이 장 보러 시내에 나가는 정도가 특수한 경우다.
이야기의 무미건조함을 배가시키는 요소가 몇 있는데, 첫 번째는 화자의 감정이다. 화자는 아내 A를 외도를 확신하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거기에는 보편적 감정이 투영되어 있지 않다. 보통, 분노 혹은 증오의 감정이 동반되어야 그 시선에 생동감이 이는데 전혀 그런 것이 없다. 철저하게 객관적 묘사만 이루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신이 불안정한 사람의 시선이라는 점에서는 매우 주관적일 수 있지만, 시선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부재에 있어서는 매우 객관적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외도에 대한 극적인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한 개인의 시선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프랑크 혹은 아내 A의 감정을 타인의 판단 아래에서 독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독자는 그들이 시내에 나가서 외박을 했다 한들 진짜 그들이 불륜을 저질렀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냥 화자가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는 것까지만 알 수 있다.
세 번째는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공간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대부분이 저택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방 안의 구조나 집 밖의 농장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많아 글을 읽어야 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편했다. 배경이 되는 공간에 가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상상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당시 문단에서는 이런 묘사에 칭찬을 많이 했다고 하던데, 일반 평범한 독자인 나에게는 불편함을 가중시키는 매우 큰 요소였다.
책 제목이 질투인 만큼, 화자는 아내 A와 프랑크의 관계로부터 질투의 감정을 느낀 채인 것 같지만, 질투라는 감정의 투영은 조금 모자란 게 아닌가 싶다. 질투로 인해 불안한 개인의 시선은 이해할 수 있으나, 질투 그 자체인 것은 아리송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