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무한한 사랑의 노래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니체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 지식이 없다면, 이 책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니체의 사상을 아포리즘의 형태로 구현한 내용이기에, 그의 사상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있어야만 비유와 은유의 온상인 이 책을 삼켜나갈 수 있다. 나는 고명권의 『니체 극장』을 먼저 읽을 것을 추천하는 바이지만, 미치도록 이 책을 빨리 읽고 싶다면 적어도 인터넷에 검색해서 그의 사상에 대해 얕은 공부라도 하고 읽길 권장하는 바이다.
이토록 삶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사람을 나는 본 적도 읽은 적도 없다. 이토록 삶에 의지를 불어넣어 주는 철학자도 접한 적이 없다. 인간은 마침내 초인이 되어야만 한다고 하는 그의 외침 속에 나는 끊임없이 자기 극복을 되뇌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되물었다.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혹시나 그런 마음을 한시라도 품은 적은 있었는지 나 자신의 과거를 되돌이켰다. 그렇게 '위험하게 살아라!'라고 외치는 니체의 말을 떠올리며, 다시 한 번 내 의지에 불꽃을 더한다. 배수비오 화산의 비탈에 내 도시를 세우고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대양에 내 배를 띄운다.
스스로를 경멸하고 대척하며 바닥을 마주한 뒤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 자신의 모습과 끝없이 투쟁하며 초인이 되어 가는 과정. 이것이 바로 권력의지다.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 데에 자신 이외의 것은 필요치 않다. 그 무엇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신은 죽는다. 끝없는 부딪침을 통해서 신의 경지에 올라야 하는 초인에게 나 이외의 신의 존재란 용납할 수 없다. (다른 이유들이 있지만) 그런 의미에서 초인 사상 앞에서 신은 소멸하고 만다.
한때 나는 기독교를 이해하지 못했다. 막연히 신을 실재적/물리적 측면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에 일차원적으로 그를 향한 숭배에 공명하지 못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신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이 왜 신을 믿고 따르는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공명하게 됐다. '내가 나를 믿는 것처럼, 그들은 예수를 믿는 거구나.' 오만하고 경솔해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예수와 동급이라는 것이 아닌, 믿음을 행하는 행위자의 입장에서 나를 객체화시킨 것이다. 그런 깨달음 이후로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거의 사라졌다. 오히려 스스로 믿고 따르는 신과 같은 존재가 내면에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런 면에서 니체와 나는 꽤 생각들 달리한다.
영원회귀를 말하는 그의 사상에 본질적 이해는 어렵지만, 그 해석에 있어서는 크게 가슴을 울리는 면이 있다. '이 삶이 영원히 반복되더라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현재를 살아가는 순간순간에 하나의 가치 판단이 되는 것. 나처럼 행동하라고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도록 행동하라는 칸트의 말과 비슷한 맥락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의 역사를 통틀어 최선의 선택만을 하게끔 스스로를 내모는 것. 난 영원회귀를 이렇게 받아들인다.
총체적으로 니체의 모든 사상을 나는 삶에의 끝없는 의지와 무한한 자기 극복의 관점에서 받아들인다. 내 정신이 온전한 상태가 다할 때까지 잊지 않을 것이다.
시대를 앞서간 혁명적 철학자 니체, 온전히 나의 삶에 긍정적으로 스며든 첫 번째 철학자가 되었다. 이렇게 철학사에 획을 그은 인물들을 경험하며 내 삶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 기둥을 높게 세우고, 가지를 넓게 쳐서 영원히 내 삶이 반복되더라도 좋은 그런 삶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끝없는 자기 극복을 통해 니체가 말한 초인의 길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겠다. 내 삶의 주인은 나고, 난 내 영혼의 선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