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모토 테루 『환상의 빛』

죽음 그 자체의 본원적 성질, 애매모호함에 대하여

by 책 읽는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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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그날 밤 치일 줄 뻔히 알면서도 철로 위를 터벅터벅 걸어갔을까요…….



가깝고 먼 인물의 죽음을 다룬 네 편의 중단편이 실린 소설집. 작품은 『환상의 빛』, 『밤 벚꽃』, 『박쥐』, 『밤 기차』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소설집의 제목이 되기도 한 『환상의 빛』은 고레에다 히로카츠가 영화감독 데뷔작이기도 하다.



미야모토 테루의 작품을 네 권 정도 읽었는데, 늘 그는 이별 내지 죽음과 같은 관계의 단절을 소재로 이야기를 써 나가는 것 같다. 그런 단절 속에서 여성 화자의 심리 묘사나 상황 자체에 대한 서정적이면서도 치밀한 묘사가 일품이다.



지인의 죽음에 의문을 던지면서, 그 죽음의 애매모호함 앞에서 어떠한 것도 규명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인식함과 동시에 자신의 삶은 그럼에도 흘러간다. 눈을 감고 골똘히 생각해 본다. 죽음이라는 개념에 진정한 규명이란 가능한 것인가. 죽음이란 오로지 죽은 자만이 겪거나/행한 절대적으로 주인에게 귀속되어 있는 것이지만, 그런 죽음에 대한 규명이란 철저히 죽은 자 이외의 사람들이 행하는 판단이다.



그 사람은 왜 죽었을까?에 대한 분명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죽음을 어떠한 개인의 행위의 결과로 귀속시켜 생각해 보자. 우리는 흔히 잘못을 한 사람에게 '당신 왜 이렇게 했나요?'라고 질문한다. 그 사람이 그 잘못을 한 것에 대해서 우리는 개별적 가치판단을 할 수 있지만 진위는 알 수 없다. 행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한다. 행위자로 하여금 그 행위가 왜, 어떻게 일어나게 됐는지. (거짓말이라는 가능성을 이 예시에 포함하면, 사실 행위에 대한 진상 규명은 늘 불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게 될 것이다.) 죽음도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는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추측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여러 가지 정황을 통해 사실에 가까운 추측을 할 수 있지만, 그 역시 모든 게 무결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행위자의 진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죽음이 가진 본원적 애매모호함을 이 소설집은 말하고 있다. 결코 규명할 수 없는, 분명하지만 분명하지 않은 그런 죽음에 대해서. 그런 답 없는 질문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건 바로 죽은 사람의 인생을 한 번 더 추억해 주는 것이다. 소멸해버린 그의 존재를 나의 마음속에 아로새기는 것, 그렇게 그는 죽어 없지만 잠시나마 나에게는 살아 있게 하는 것. 그래서 우리는 들을 수 없는 답임을 알면서도 다시금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닐까? 그게 바로 죽은 사람을 내 마음속에 살아 숨 쉬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죽음에의 규명 의지는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슬픔과 싸워 이겨내려는 삶을 향한 인간 본연의 권력 의지에서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도 그렇게 아버지를 한 번 더 내 가슴속에 살아 숨 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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