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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읽는 호랭이 May 16. 2023

프란츠 카프카 『소송』

범사회적 지배 체계에 당신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누군가 요제프 K를 모함했음이 분명하다.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날 아침 체포되었으니 말이다.





작품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꽤 간단한 상상만 하면 된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영문도 모른 채 소송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 이후 당신의 삶은 어떻게 진행될 것 같은가? 쉽게 소개하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요제프 K라는 주인공이 자기 나름대로 풀어가는 과정이다.



그 누구도 어떤 이유로 소송에 휘말렸는지 설명해주지 않고, 우리가 보편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법적 절차조차 없다. 그냥 오라고 통보하면 오고, 연락이 없으면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는 그런 비정상적 상황 아래에 놓이게 된 것이다.



30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은행 고위직 직원이 되어 잘나가는 인생인 요제프 K는 기소된 인물이 되자마자 그의 삶이 송두리째 '소송 아래'에 놓이게 된다. 타의로 그의 정체성이 기소된 인물이자 언제든지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납득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요제프 K는 그 정체성의 탈피를 위해 무던한 노력을 한다. 비합리적/비정상적 법체계를 파고들어 탈출구를 마련하려고 하기도 하고, 주변인의 도움을 받아 상황을 타개하려 한다. 이를 위해 법원 관계자의 부인을 유혹하는 등 비윤리적 행위까지 서슴지 않는다.



소송 이후의 요제프 K의 삶을 보며, 하나의 거대한 체계 앞에서 한 개인의 발버둥이 얼마나 미약한지 깨달을 수 있다. 그의 치열함의 끝에 결코 희망 따윈 존재하지 않는 것이 마치 한 개인이 체계를 뒤흔들 수 없음을 확고히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변신』과 어떻게 보면 큰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동 중심 사회 속에 고통받아 결국 무기력하게 벌레가 되어버린 그레고리 잠자와 비정상적 법 권력 앞에 힘껏 발버둥 치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요제프 K가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법이라는 보이지 않는 절대 원칙을 내세웠지만, 난 이것이 법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 개인을 벗어난 범사회적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개인이 모여 사회적 개념을 확립해나가는 것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개념 앞에서 한 개인은 무기력 그 자체다. 우리 삶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이런 개념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고민하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다.



통제 불가능한 절대적 개념 앞에 미약한 개인인 스스로를 어떻게 위치시켜야 할까? 그 개념이 위협적으로 다가올 때, 마치 내 삶의 터전이 나를 향해 날카로운 흉기를 들이댈 때 나는 온전히 나일 수 있을까? '기소된 나'가 '나'를 집어삼켜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이런 도래하지 않을 수 있지만, 피할 수도 없는 숙명 앞에 실존적 고민을 하게 된다. 폭풍 치는 바다 위의 나룻배처럼, 당장이라도 침몰해도 이상할 것 없는 나룻배의 선원은 오직 나 혼자다. 언제 몰아칠지 모르는 폭풍우를 대비하는 것은 유일한 선원인 나의 몫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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