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무한한 미완성, 그럼에도 우리는 끝없이 엮는다

미우라 시온 『배를 엮다』

by 책 읽는 호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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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시간밖에 갖지 못한 인간이 힘을 다해 넓고 깊은 말의 바다로 저어 나간다. 무섭지만 즐겁다. 그만두고 싶지 않다. 진리에 다가서기 위해 언제까지고 이 배를 계속 타고 싶다.

186p


십여 년 동안 단 하나의 사전 편찬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 이야기는 내게 깊은 울림을 준다. 사전은 단순한 단어의 집합이 아니라, 언어의 무한한 바다를 건너기 위한 하나의 배라는 정의는 시시각각 변하는 언어의 역사와 성질을 꿰뚫는 정확한 통찰이다. 그 제작 과정에서 드러나는 구성원들의 선한 마음과 목적 의식, 그리고 서로를 향한 유대감은 읽는 이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든다.


이 배를 엮는 과정은 결혼 이후 삶을 꾸려가는 과정과도 닮아 있다. 사전은 완성되는 순간부터 이미 불완전해지기 시작한다. 언어는 살아 움직이고, 그 언어로 구성된 세계 역시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결혼 또한 마찬가지다. 결혼과 동시에 실제 항해는 시작된다.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오해를 수정하고, 새로운 의미를 덧붙이는 과정은 끝없이 이어진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배를 건조해 우리 앞에 펼쳐질 무한에 가까운 세계에 띄우는 일과 같다. 우리는 계속해서 노를 저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때로는 정박해 배를 정비한 뒤 다시 출항한다. 잔잔한 바다를 건너기도 하고, 폭풍 속을 지나기도 하며, 가끔은 암초에 부딪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잠시 멈출지언정 끝내 항해를 멈추지는 않는다. 저 멀리 보이는 수평선을 향해, 다시 배를 띄운다.


왜 배를 ‘만들다’가 아니라 ‘엮다’일까. 배는 보통 건조하고, 사전은 편찬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굳이 ‘엮다’라는 동사를 선택한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엮다’라는 말에는 결과보다 과정이 담겨 있다. 완성된 형태보다, 서로 다른 것들이 천천히 연결되어 하나의 구조를 이루어가는 시간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 작품 역시 완성된 사전이나 배를 보여주기보다, 그것을 만들어가는 동안 형성되는 관계와 시간을 조용히 비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소설은 언어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언어의 섬세함과 정확한 사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더 나아가 거창한 사건 없이 한 권의 사전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인물들의 태도는, 불확실로 가득 찬 삶과 관계를 어떤 자세로 가꾸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단서를 건넨다.


느리지만 성실하게, 그리고 끝없이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배를 엮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삶의 바다를 건넌다. 얼마 전 결혼한 나 역시, ‘내 삶’의 바다와 아내와 함께하게 된 ‘우리의 삶’의 바다를 그렇게 건너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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