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응답한 진실로 존재한다
사실은 발생한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고,
내가 보지 못해도 이미 그러하다.
그러나 나는 사실 속에서 살지 않는다.
사실은 세계의 상태일 뿐,
곧바로 나의 세계가 되지는 않는다.
사실이 나에게 나타날 때, 그것은 현실이 된다.
같은 사실과 같이 마주한 현실 앞에서도
누구에게는 상처가 되고,
누구에게는 계기가 된다.
이 차이는 사건에 있지 않다.
존재에 있다.
내가 응답한 현실에 대해서 곱씹어본다.
이해하려 하거나,
거부하거나,
왜곡하거나,
끝내 받아들인 어떤 현실들.
그리고 그 현실에 대한 응답의 결과가
곧 나의 진실이 된다.
진실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실은 형성된다.
현실과 존재가 부딪히는 자리에서,
응답의 형태로 드러난다.
나는 내가 응답한 만큼의 세계 안에서 살아간다.
내가 외면한 현실은 나의 감춰둔 진실이 되고,
내가 감당한 현실은 이미 나를 구성하는 일부가 된다.
그래서 진실은 언제나 존재론적이다.
그것은 단순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가 자신을 어떻게 세웠는가의 문제다.
그렇다면 진리는 어떤가.
진리는 나의 응답과 무관하게 성립할 수 있는 이치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도래한다는 것,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
인간은 유한하다는 것.
그러나 이 이치가
모든 존재에게
동일하게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갓난아기에게 죽음은 아직 진리가 아니다.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진리는 끝내 나에게 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나를 형성하지 못한 채
세계의 바깥에 머무를 뿐이다.
여기에서 진실과 진리는 갈라진다.
진리는 보편일 수 있지만,
진실은 언제나 개인적이다.
그러나 개인적이라고 해서
임의적인 것은 아니다.
진실은 현실에 대한 실제적인 응답이며,
그 응답은 존재를 형성한다.
나는 진리를 모두 가질 수 없다.
어쩌면 평생 몇 개의 진리만을
스쳐 지나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마주친 현실에
어떻게 응답했는가는 끝내 나로 남는다.
존재의 깊이는 진리를 얼마나 많이 아는가에 있지 않다.
얼마나 많은 현실을 진실로 형성했는가에 있다.
나는 사실의 세계 속에 놓여 있고,
현실을 마주하며,
응답 속에서 진실을 드러내고 형성한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진실들이 겹겹이 쌓여
하나의 세계가 된다.
그 세계는 고정된 전부가 아니다.
내가 마주할 현실이 늘어날 때마다,
내가 감당할 응답이 깊어질 때마다,
나의 세계는 확장된다.
진리는 여전히 그 바깥에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존재는 바깥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존재는 응답 안에서 형성된다.
나는 보편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응답한 진실로 존재한다.
그것이 내가 세계를 살아내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