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잔혹한 괴물성과 그 기저에 깔린 취약함
처음으로 사람을 죽여보니까 착실한 생활이 싫어졌다. 살인은 개운했지만, 되돌아갈 수 없는 길로 들어선 기분이 들어서 약간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빛나는 인생, 즐거운 인생을 추구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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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범죄자의 악랄함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그들이 처음부터 극악무도한 범죄자가 됐을 것이라고 예상들을 한다.
최근 벌어진 끔찍한 살인자들을 보고 우리는 그렇게들 생각하고는 한다.
우리는 그들의 과거를 일절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의 범죄를 변호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냥 사람들의 그런 사고를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첫 장면부터 끔찍한 방화 살인으로 등장하는 주인공 아이코를 보고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
'와, 끔찍한 살인자가 나오는 책이구나. 얼마나 더한 행각들을 하려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아이코의 괴물적 행동들이 이런 내 기대를 차츰 충족시키기 시작했다.
나 역시 아이코의 현재만을 본 채로, 어쩌면 그의 살인 행각들을 기다리면서 책장을 넘겼을지도 모른다.
아이코의 과거가 나왔을 때, 조금은 진부한 스토리인 것처럼 느껴졌다.
'항상 분노에 차 있는 살인귀에게는 사실 아픈 과거가 있었다고?
흠.. 조금 그렇네.' 하며 씁쓸하게 책의 마지막을 읽어나갔다.
하지만 아이코의 기저에 깔린 그 취약하고 나약함을 본 순간,
결코 그녀의 과거를 고려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일종을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녀에게 일말의 위로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 나에게 부끄러웠던 것이 아니라,
현재 그녀의 모습만 본 채로, 그것에 심취한 채로, 그 뿌리를 바라보지 못한 게 부끄러웠다.
결코 아이코에게 동정하고 싶지 않고 그의 행위도 보호해주고 싶지 않지만
독서 내내 한 사건 혹은 상황에 대한 깊은 통찰의 부재가 참 아쉬웠다.
책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능력의 문제이니 더 씁쓸하다.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들은 대부분이 여성이 주인공인데,
이 여성들의 성격과 이야기 내에서의 변화를 비교해보면 참 독특하다.
어떤 책은 평범한 사람에서 끔찍한 살인마가 되기도 하고,
어떤 책은 극악무도한 살인마에서 극도로 약한 존재로 변하기도 한다.
인물의 성격의 차이점만으로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을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분명 주목할 만한 포인트이기는 하다.
이 책은 극악무도한 살인마에서 시작해,
인간이 나약해질 수 있을 만큼 나약해져 버리는 성격의 하강을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짧고 강렬하며 기리노 나쓰오의 역량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나, 그녀가 인간의 내면을 파고드는 방식은 가히 독보적이라 볼 수 있고,
이야기의 구성이나 흐름 또한 독자의 흥미를 사로잡기에 충분하기에
추리소설 입문자들에게 특히나 추천하는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