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이육 Jun 25. 2016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좋아해 주세요

CHEEZE - 퇴근시간

생각해보면 이 사진도 뭔가 사내 교육 PPT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그런 것인데...

 주변에 티를 잘 내는 타입인지라, 항상 주변인들은 표정만 보고도 나의 일상을 읽어내곤 한다. "무슨 일 있어?" 류의 질문을, 그래서 많이 받는 편이다. 공교롭게도 우울한 때 그런 감정은 흰 얼굴의 뾰루지만큼이나 도드라져 보인다. 아무에게도 나의 슬픔을 말하지 않고 하루가 지나갔다며 뿌듯해하고 있지만, 남들은 느낌으로 아는 것이다. 내가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혹자가 그러한 모습을 카드 게임동안 남에게 패를 다 보여주는 행동에 비유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하루하루가 치열한 경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 속의 것을 남에게 보여준다는 의미에서는 어느 정도 일치하는 예일지도 모르겠다.

 자기계발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스토리 중, 별로 인상이 좋지 않은 사람이 항상 웃고 다니기로 다짐한 뒤로 삶을 바꿔나갔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주민에게도 웃어 보이고, 회사 경비, 동료 직원, 모두에게 웃어 보였더니 일상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이야기. 웃는 사람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그 사람의 감정과는 별개로, 항상 밝은 태도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은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항상 웃으라는 말은 꽤 괜찮은 조언인 셈이고, 가면을 쓰는 데에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면, 그 이야기는 현실성이 꽤 높은 이야기인 것이다.

CHEEZE - 퇴근시간

 꽤 옛날에 추천받았지만 듣지 않고 있었던 이 노래를 꺼내 들었을때, 가사 때문에 전율했다. 이 곡의 가사는 정말 평범하면서도 사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난 생각보다 밝은 사람이 아니고, 속으로는 많이 우울해한다는 스토리의 노래. "웃는 내 모습이 좋다면, 슬픈 나도 좋아해 줘요."라는 부분이 절정이라고 생각한다. 소주를 세 병쯤 비우고, 화장실을 다녀와서 약간은 몽롱한 정신이 되었을 때 쯤 들을 수 있을 법한 그런 이야기를, 이 노래는 저녁 네온사인을 닮은 선율을 배경 아래, 정말 진중한 화자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탄탄한 저음역을 가진 여성 보컬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나는 매일 똑같은 밥을 
먹는 것도 아니고
나는 매일 똑같은 얘길 
하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오늘이 특별한 
날일 수도 있는데
나는 왜 또 이리 외로운지
가끔 만나는 사람들이 
내게 이런 말을 해
얼굴이 많이 좋아졌네 
무슨 좋은 일 있니
좋았던 일도 있었고 
안 좋은 일도 있었죠
근데 왜 안 좋은 일은 안 묻나요
그대가 아는 것만큼 
난 좋은 애가 아니에요
나쁜 생각도 잘하고 
속으로 욕도 가끔 해요
웃는 내 모습이 좋다면 
슬픈 나도 좋아해 줘요
난 그대 우는 모습도 좋거든요
우린 완벽하지 않고
가끔 억지도 부리는 걸
때론 마음이 너무 아파
푹 주저앉고서 울곤 해 
지금이 그렇다면 
내게 모두 말해주세요
그대를 내 어깨에 기대
찬 바람에 얘길 떠나 보내요
그대를 만난 날만큼 
난 밝은 애가 아니에요
나쁜 생각도 잘하고 
속으로 가끔 울곤 해요
웃는 내 모습이 좋다면 
슬픈 나도 좋아해 줘요
난 그대 모든 모습이 좋거든요
우린 완벽하지 않고
가끔 억지도 부리는 걸
때론 마음이 너무 아파
푹 주저앉고서 울곤 해
지금이 그렇다면 
내게 모두 말해주세요
그대를 내 어깨에 기대
찬 바람에 얘길 떠나 보내요
내가 뭘 잘못했는지 
이젠 기억조차 안 나는
이 무거운 새벽공기에
쌀쌀해진 난 슬퍼져
하염없이 말 없는 
전화기에 눈을 떼지 못하고
먼저 다가가기엔 
내 맘이 어려워지는 걸 

 내일부터 밝은 태도로 세상에 나선다면, 그런 모습에 호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고, 인생의 난이도는 한 단계 낮아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타인이 좋아해주는 그 모습이 나의 본질이냐고 묻는다면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면을 씀으로써 얻어지는 호감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철저히 내 모습을 숨긴 채로 얻어내는 일련의 호감이 별로 만족스럽지는 않을 것 같다. 더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은 불편한 일이니까. 모두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 되는것보다는 나의 본질을 아는, 나의 있는 그대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나를 좋아한다면, 나의 친구라면, 나의 슬픈 모습도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그런 솔직한 모습을 표현하는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주변에 그런 모습을 이해해줄 사람들이 차츰차츰 쌓이게 되고, 문득 어느 겨울 아침 창문을 열었을때, 간밤에 조용히 온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풍경처럼,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담담함은 슬픔을 더욱 선명하게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