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를 나온지 두 달이 되어 쓰는 글
밴드에서의 마지막 공연은 지하에 위치해있던 클럽의 뿌연 풍경처럼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리허설때 엔지니어는 보컬 소리를 조절할 수 없는 시설이기 때문에 미리 보컬 볼륨에 세션 볼륨을 맞춰 세팅하라고 말했다. 리허설은 나쁘지 않게 끝냈다. 그러나 문제는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 터졌다. 사운드 밸런스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아니, 기타 중 누군가의 페달이 고장났던 거였던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공연 중간에 바꾸어버린 세션들의 소리에 보컬은 파묻혀버렸다. 모든 파트가 따로따로 놀아버리게 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격해진 언성은 불필요한 말을 하게 하였고, 상처를 받은 사람은 더 이상 같이 갈수 없음을 선언했다. 평생 갈 것 같던 밴드는 그렇게 뻔하고 뻔한 이유로 갈라서게 되었다. 정확히는 나만 나오게 된 것이지만.
일주일 정도 있다가 탈퇴의 원인이 됬던 그 친구와는 화해했지만, 다시 그 밴드로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예전부터 성향은 맞지 않지만, 무대 경험을 위해 서로 손잡는다는 느낌의 팀이었고, 합주를 하는 과정에서 이 팀과 정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기 때문에, 이번 일을 계기로 나만의 길을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우연히, 그 팀이 여전히 굴러가고 있고, 합주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스믈스믈 올라오는 우울함을 느꼈다. 그 우울함의 이유가 내가 없는 팀이 멀쩡히 굴러가고 있다는 데서 오는 패배감이나, 나만 빼놓고 합주를 한다는데서 오는 서운함 같은 일차원적인 감정 때문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그 우울함의 근원은 맞지 않는 옷을 벗어버렸다고 생각하며 홀가분하게 밴드를 탈퇴하고, 스스로의 음악을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전혀 그러지 못한 자신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었다. 두 달 동안, 전혀 음악을 하지 않았다.
스쿨밴드를 했던 지난 2년동안은 그것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했다. 두 사람이 일반적인 주제에 대해 의견을 모으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여러 사람이 편협한 하나의 주제에 대해 의견을 모으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음악이라는 것은 정말로 다양한데, 여러 사람이 모여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데 구성원 모두가 한 번의 불만도 없을 확률은 벼락을 두 번 맞을 확률 정도와 비슷할 것이다. 합주 시간 맞추기같은 일반적인 것부터, 톤을 어떻게 잡을지, 사운드 밸런스를 어떻게 맞출지 하는 음악적인 부분까지. 2년정도 아마추어 밴드를 하면서 실력이 늘었고, 밴드에 대한 이해도도 늘었지만, 반대로 밴드가 가져다 주는 불편함, 밴드에 소속되었을때의 단점에 대해서도 줄줄 읊을 수 있게 되었다. 혼자 하는 음악이 가장 편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밴드에서 탈퇴한지 두 달, 우습게도 밴드를 함으로써만 얻어지는 것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큰 차이점은 행동력이다. 각자가 가진 행동력은 모였을 때 시너지를 내기도 하고, 동기부여가 되지 않은 타인을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누군가의 합주 제안에 머리를 맞대거나, 갑자기 잡은 공연 일정에 갑자기 연습을 시작하거나. 혼자 있으면 그런 드라마틱한 끌어당김은 일어나지 않는다. 온전히 자기 페이스에 맞춰 연습이나 공연을 할 수 있지만, 아예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아예 하지 않게 되었다. 너무 자기 틀에 갇히고 마는 것은 혼자일때의 너무도 당연한 단점이다. 지난 2년간 몸담은 밴드 중 내 취향에 100% 부합하는 팀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것을 제쳐두고 남이 하기 원하는것에 나를 맞추는 시간들 동안, 나는 많이 변했다. 밴드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지금은 할 수 있다. 보컬 스타일도 처음과 많이 달라졌다는 말을 듣는다. 자기 색깔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에 갇혀 편협해지는 것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밴드를 한 2년동안 타인의 취향을 내 것으로 잘 녹여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혼자 음악을 들은 두 달 간은 듣던 것만 듣고 부르던 것만 부르니 진전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다. 정체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녹슬어버린 기타줄을 갈기 위해 새 기타줄을 시키고, 처분할 장비는 빨리 돈으로 바꾸어 지금 내게 필요한 장비로 바꿔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때라는 말도 있듯, 지금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