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레코딩 장비인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콘덴서 마이크를 들이다
밴드 동아리에서 쓰던 말 중에 "방구석 기타리스트"라는 것이 있었다. 희망 파트에 기타를 적어 낸 신입생중에, 한 두 명쯤은 괜찮은 기타, 그리고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을 부르는 말이다. 이 친구들의 특징은, 합주에 들어가면 꽤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방구석 기타리스트들은 방에 있는 미니앰프, 혹은 컴퓨터에 물려진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보낸 시간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사람 간에 합을 맞추는 합주에서는 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다. 방에서 듣던 칼박자의 메트로놈과는 많은 이질감이 있는 고무줄처럼 왔다갔다하는 박자를 가진 드럼에 연주를 맞춰야 한다거나, MR과는 다르게 많이 서투르고 거칠은 다른 파트들의 소리에 기타 톤을 맞춰야 하는 부분 등은 방구석 기타리스트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방구석 기타리스트는 그러니까, 방에서 혼자 기타를 치던 친구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면 혼자서만 연습을 했기 때문에 합주에 어색한 친구들이라는 뜻 역시 담고 있는 것이다.
탈퇴한 밴드의 친구들이 여전히 합주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음악을 하기 위해 예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홈 레코딩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흔히 쓰던 그 방구석 기타리스트라는 단어가 문득 떠오른 것, 그리고 약간 미묘한 기분이 되 버린 순간은 그 때였다. 밴드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방구석 기타리스트는 밴드의 전 단계, 탈출해야 하는 단계 정도로 여겨왔던 것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밴드를 하다가 방으로 들어가려 하는 모습이었다. 평소의 생각과는 반대로 움직이는 셈. 괜히 그런 친구들을 얕잡아 불렀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무대 경험을 위해서건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건 억지로 밴드를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음악을 찾기 위해 혼자 음악을 하는 과정 역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머릿속 작은 모순은 그렇게 금방 떨쳐졌고, 무엇을 사야 잘 샀다고 소문이 날지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다.
물건 하나를 살 때면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타입이다. 끝없이 고민하는 것 때문에 그렇고, 주변 사람들에게 수없이 질문하는 것 때문에 그렇다. 홈 레코딩을 하려면 오디오 인터페이스, 그리고 마이크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녹음용으로는 보통 노래방에 놓여있는것과 같은 모양인 다이나믹 마이크보다는 콘덴서 마이크가 좋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되었다. 가장 가성비가 좋은 모델을 찾는데 이틀 정도 걸렸다. 출근을 해서 틈틈이 - 물론 그러면 안되지마는 - 검색도 하고 친구들에게 조언도 구했다. 그렇게 오디오 인터페이스와 콘덴서 마이크의 모델을 정했다. 오디오 인터페이스는 친구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포커스라이트사의 Scarlett 2i2를, 콘덴서 마이크는 MXL-2006으로 정했다. 두 가지를 가장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곳을 뒤지는데는 하루 정도 걸렸다. 낙원상가의 인지도 높은 매장 중 하나인 국제미디에서 파는 패키지가 제일 괜찮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격도 좋았고, 무엇보다 전문 매장이기 때문에 쇼핑몰에서 시키는것보다는 조언을 구할수도 있고, A/S 받기도 쉬울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목요일 오후, 퇴근하자마자 5호선 열차를 타고 낙원상가로 향했다. 친구와 함께 갔다. 낙원상가는 왠지 혼자 가면 안될 것 같은 곳이기도 하고, 이 친구도 전에 국제미디에서 오디오 인터페이스를 구입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데려갔다. 국제미디는 7시에 문을 닫기 때문에 바쁘게 움직여서 도착했다. 평소같으면 낙원상가 특유의 퉁명스럽고 약간은 의구심 섞인 시선을 보내는 직원이 안내를 해주어야 정상인데, 그날은 꽤 친절한 직원이 나왔다. 뭔가 예감이 좋은 날이었다. 사고자 하는 제품에 대해 조곤조곤 잘 설명해주었고, 괜찮은 제품이라는 말 역시 덧붙였다. 일사천리로 결제를 하고, 설치를 도와줄 친구와 함께 먹을 간단한 저녁거리로 새우버거 네 개를 사서 집으로 향했다.
콘덴서 마이크를 마이크 스탠드에 장착하고 팝 필터를 끼우니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집에 마이크 스탠드를 들이는것에 약간 회의감이 있었는데, 막상 들여놓고 보니 인테리어로도 나쁘지 않았다.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설치하고 나니 저녁 10시정도 였다. 통기타를 치거나 노래를 부르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기에, 연결이 제대로 된지만 확인하고, 첫 녹음은 주말 오전으로 미뤘다. 부푼 기대를 안고 잠들 수 있었고, 다음 날인 금요일 근무도 한껏 기대에 차서 할 수 있었다. 시간은 금방 흘렀고, 토요일 오전이 되었다.
공연을 한지 2년 정도 되었지만 마이킹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는 것을 마이크를 다 설치하고서야 깨달았다. 당장 기기를 써 보고 싶기는 했기 때문에, 일단은 라이브 영상들에서 본 것처럼 콘덴서 마이크를 거꾸로 매다는 식으로 배치했다. 녹음은 핸드폰 마이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깔끔하게 되긴 했지만, 전문적으로 녹음을 한다는 느낌보다는 마이크 앞에 서서 소리를 내는 정도의 풍경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마이킹 관련 글을 찾아보거나 했겠지만, 여가에는 흥미를 붙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따로 찾아보는 일 없이 최대한 초보적인 수준에서 녹음을 해서 들어보기로 했다.
https://soundcloud.com/coughsyrup92
정말 초보적이고 거칠게 첫 녹음을 마쳤고, 꽤 많은것을 느꼈다. 일단 우리가 듣는 음악은 많은 믹싱과 마스터링을 통해 다듬어진 결과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MR에 맞춰 노래를 부를 때 그것이 두드러졌는데, 보컬과 반주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앨범의 음원과는 다르게 내 목소리는 꽤 따로 놀았다. 혼자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홈 레코딩은 생각할 거리가 꽤 많다는 생각 역시 들었다. 내 방은 2층에 있지만, 1층은 실외의 현관으로 되어있다. 말하자면 공중에 떠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층간 소음에서 약간은 자유로운 구조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주변 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래부를때 대부분 진성을 사용하는데, 첫 녹음은 공교롭게도 가성을 잔뜩 섞게 되었다. 메트로놈의 위대함 역시 느꼈다. 스스로의 음감과 박자감을 꽤 믿는 편이었다. 합주하면서 악기 튜닝이 나가거나, 잘못된 코드를 치는 것을 꽤 잘 잡아낸다고 생각했고, 드럼 역시 박자가 고무줄이 되면 곧잘 지적하곤 했다. 그런데 사랑은 타이밍 커버를 녹음할때 그 생각이 꽤 많이 흔들렸다. 기타와 보컬을 따로 녹음했는데, 합주할때 드럼 박자에 의존하듯 메트로놈에 맞춰 기타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메트로놈 박자가 오락가락 하는거처럼 들리고 말았다. 메트로놈은 절대로 오락가락하는 일이 없으므로, 결국 나도 평범한 사람의 박자감 정도를 가지고 있다는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연습은 무조건 메트로놈을 켜놓고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 순간이었다.
노래를 잘 부르는데는 자기 노래를 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홈 레코딩 장비는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많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수단인 셈이다. 노래에 이어 기타 연주 역시 많이 다듬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또한 그동안은 노래만 부르고 초보적인 지적만 할 수 있는 수준의 아마추어 보컬이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다른 파트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고, 기술적인 부분에 더 해박해질 수 있는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밴드를 하며 얻을 수 있는 기회인 합주와 공연 경험은 당분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음악에 대해 이해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음악에 대해 사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방구석 뮤지션으로서의 첫 발을 이제 막 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