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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Oct 29. 2021

성난 고객

 고객들은 통상 화가 난 채로 창구로 찾아온다. 화에는 물리적인 면이 있다. 역학의 원리를 따르듯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민원인의 속에 고농도로 차오른 분노는 바깥 공간으로 뛰쳐나가려 안간힘을 쓴다. 그렇게 화를 가득 채운 민원인은 창구로 찾아와 아무렇게나 그것을 쏟아낸다.

 고객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다양한데, 대부분은 우리의 잘못이 없이 뭔가 해결되지 않아서다. 전후 사정을 알 리 없는 어떤 일로 나는 민원인의 화를 덮어쓴다. "왜 저한테 그러시는 거예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그런 말을 뱉었다가는 더 큰 화를 입게 될 것이 자명하다.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보통 그런 이들은 직원이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한다. 당연히 대답은 "해결해드리기 어렵다."이고, 그 유일한 대답은 고객의 화를 더 돋운다. 싫은 소리가 듣기 싫어서 무리하게 구비서류를 생략한다든지 하는 권한 밖의 일을 하거나, 그저 가만히 샌드백처럼 맞고 있거나, 너스레를 떨며 민원을 버티거나, 별로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다. 내 잘못이 아닌데 비굴하게 굴어야 하는 상황은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위와 다른 유형은 명분이 있는 이들이다. 적지 않은 고객이 회사의 실수로 인해 화가 난 채로 창구에 찾아온다. 이런 유형은 앞선 유형보다 조금 더 집요하고 강렬하다. 물론 내 실수가 아니라는 점은 마찬가지다. 사실 일반 업무에서 생길 수 있는 실수랄 것은 대단치 않은 것이다. 자동이체 신청이 누락되거나, 요금이 잘못 청구되거나, 그런 정도의 문제다. 정정할 수 있는 실수들이다. 권한 내에서 최선을 다해 정정도 하고 사과도 했는데, 여전히 화를 토해낸다. 정말 심한 케이스로 사과하고 정정하면 다냐는 말을 하면서, 그딴 식으로 업무태만을 하는데 경위서를 쓰고 고과에 반영되게끔 상급자에게 꼭 말을 하겠다며 상급자를 호출하라는 사람이 있었다. 직원도, 상급자도 그저 고객을 달래서 보내는 수 밖에는 없다. 어쩌라는 것인가, 프로답지 않은 말일지도 모르지만.

 직원의 수에 비해 업무는 너무 많다. 불필요한 민원 때문에 정작 필요한 업무를 하지 못한다. 그런 빡빡한 일정 속에서는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인 것도 아니다. 실수한 것에 대해 정정조치를 하고 사과를 했다면 끝난 것 아닌가? 실수를 했기 때문에 불필요한 인신공격을 당하고, 하등 한 자격지심을 배설해내는 것까지 받아먹어야 하는 것인가?

 화가 난 고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심정이 아예 이해가 안 가지는 않는다. 어떨 때는 정말로 공감이 되기도 해서, 고객의 편에서 같이 회사를 욕할 때도 있다. 하지만 미칠 듯이 밀려드는 일에 떠내려가는 듯 하루를 보내다가, 업무와 무관한 고객의 짜증 섞인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투정을 들어주고 있자면, 왜 이걸 들어주고 있어야 하는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내 급여에 업무와 상관없는 고충 상담의 비용까지 들어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기에는 이 액수가 말이 되지 않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돈을 받고 일하는 직장인이다. 받은 돈만큼, 혹은 그것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업무를 잘 처리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업무와 상관없이, 시절이 흉흉하여 사업이 되지 않는 던 지, 불량한 세입자와 갈등이 있다던지, 사기꾼 같은 건물주와 갈등이 있다던지, 날이 궂은데 회사 건물까지 찾아오는데 너무 힘들었다고 짜증을 쏟아낸다던지, 그런 일거수일투족은 들어주는데 한계가 있고 사실은 들어줄 이유도 없다. 이렇게 나의 변명 섞인 고충을 구구절절 풀어썼지만, 단호하게 직업을 잘못 고른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서비스직이나 창구 근무자들은 감정노동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부류들 말이다. 다른 건 모르겠고, 그들이 나와 같은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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