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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밀 Sep 22. 2021

가만히 있으면 손해를 보는 걸까

 고객 응대 업무를 하고 있기에, 창구에 찾아오거나 전화를 하는 고객들이 많을수록 업무가 고되다. 그 어떤 업무보다 고객을 생각해야 하지만, 고객을 결코 좋아하기 어려운 자리에 앉아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모든 고객에게 불친절함으로 일관하는 일은 결코 없다. 다만 찾아올만한 일이 아닌데 찾아오는 고객이나 똑같은 일을 중복해서 여러 루트로 접수하는 고객은 조금 싫을 수밖에 없다. 팩스를 보내고 나서 팩스가 잘 도착했냐고 확인하는 전화, 방금 콜센터에 접수했는데 사업소에 잘 전달됐냐고 확인하는 전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 및 사업 현황을 5분간 읊조리는 사이에 업무 이야기는 하나도 없는 내방객 등... "그런 일 하라고 월급 받는 거잖아요."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다. 다만 이렇게 불필요하게 업무에 부하를 주는 고객들 때문에, 결국 해야 하는 업무의 처리가 지연되면 피해를 보는 것은 대다수의 고객들이다. 불필요한지 여부는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어쨌든 불필요하다 생각하는 업무에 대한 달갑지 않은 감정은 당위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무려 10줄을 할애해서 풀어낸 내용은 불필요한 민원을 제기해서 업무에 부하를 주고, 공익을 해치는 일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고객 입장이 됐을 때는 클레임을 제기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을 남한테 하는 것만큼 꼴불견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정말 가끔, 그런 꼴불견을 저지를 때가 있기는 하다. 가장 쉬운 예시는 배달 음식을 시켰을 때다. 배달 예상 시간이 넘어가면 매장에 전화를 하는 편이다. 불필요한 민원도 싫어하고, 교통질서를 어겨가면서까지 달려 나가는 배달 오토바이도 싫어하는 주제에, 배달 시간이 몇 분 지났다고 매장에 전화를 하는 것은 너무 내로남불인 것 같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전화를 한다. 이는 몇 번의 경험에 의한 것이다. 배달이 늦게 와서 그냥 기다렸는데, 배달이 누락된 적이 몇 번 있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실수할 수 있지, 하고 넘어가곤 했다. 지금처럼 배달 예상 시간 몇 분만 지나도 바로 전화를 하게 된 계기는 가족들과 다 같이 먹을 음식을 주문한 때였다. 배달이 늦어지고, 전화를 한 번 해보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조금 늦을 수도 있지 않겠냐고 대답했다. 음식은 그렇게 배달 예상 시간 40분을 지나서도 오지 않았다. 뒤늦게 전화를 해 보니 배달이 아예 누락되어 있었다. 진작 어머니 말씀대로 전화를 할 걸 하는 머쓱함과, 가족이 다 같이 먹을 음식이 늦게 온 것에 대한 짜증이 밀려왔다. 어머니는 경험에서 우러나서 바로 전화를 하라고 하신 것일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강렬한 경험은 버릇으로 이어졌다. 그 뒤로 배달이 늦으면 바로 전화를 하곤 한다.

 어쩌면 배달을 하는 업장 입장에서는 예상시간이 고작 몇 분 지났을 뿐인데 오는 나의 전화가 불필요한 클레임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어쩌면 사무실로 굳이 전화를 해서 접수를 확인하거나, 여러 가지 루트로 같은 업무를 접수하는 고객들은 과거의 경험 때문에 그렇게 민원을 제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불필요한 민원이란 없는 것인가? 가만히 있으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불필요한 민원이 있다는 생각을 버리던지, 아니면 배달이 늦어진다거나 해도 따로 전화를 하지 않던지, 그래야 일관성 있는 사람일 것 같기는 하다.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은 여러 모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생각 없이 내로남불을 하며 살고 싶지는 않다. 어려운 삶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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