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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육 Nov 24. 2016

관심

버스커버스커 - 그댄 달라요

 그 아이는 나와 했던 대화를 종종 잊어버리곤 했다. 가령, 내가 그 아이가 비염을 앓고 있어서 조금만 추워져도 킁킁댄다거나, 카키색 옷을 좋아한다거나,  언니와 돌려입는 다른 색깔의 같은 디자인인 패딩이 두 개가 있다거나 하는 사실을 넌지시 말하면, 약간은 휘둥그래진 눈을 하며 언제 말한거지? 하고 되묻곤 했다. 


 항상 내가 세세한 것을 짚어낼 때마다 그 아이는 "오빤 대체 어떻게 그렇게 세세한거까지 기억해요?" 하며 내게 물어오곤 했고, 나는 "관심의 문제야." 하고 대답하곤 했다. 네가 자꾸 나랑 대화할 때마다 집중을 안 하니까 기억을 못 하는거라고, 난 너한테 관심이 많아서 이렇게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지 않느냐고, 그 아이에게 말했다. 그 때마다 그 아이는 약간 뾰루퉁해지는 듯 하다가, 금새 다시 밝은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가곤 했다.


 그 아이와의 연애로 느낀 점 중 하나는, 내가 기억력이 참 좋다는 것, 그래서 그 기억력을 통해 사람들이 말했던 세세한 점을 나중에 짚어 주면 그들은 꽤 감동한다는 것이었다. 연애 뿐 아닌 인간관계 전반에서 나는 상대방의 사소한 점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을 꽤 어필했고, 인간관계의 지름길 하나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역으로, 나의 디테일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에게 더 잘 대해 주었다. 타인이 나의 사소한 점을 기억해 준다면, 그 사람은 내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아이와의 연애가 끝난 후로 시간이 좀 흘러, 우연히 수업 중 폴라로이드 작동법이라는 단편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영화에는 두 명의 인물이 나온다.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작동법을 설명하는, 주인공보다 키가 약간 크고 중저음의 목소리를 한 남자 선배로 추정되는 사람, 그리고 그 남자를 짝사랑하는 듯 하는, 우물쭈물대며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는 스무살 같은 느낌의 풋풋한 여주인공. 내용은 참으로 단순하다. 여자가 남자에게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빌리며 그것의 작동법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남자는 누르게 되면 비싼 필름이 망가지기 때문에 절대 누르면 안되는 단 하나의 버튼에 대해 굉장히 강조를 한 뒤, 여자에게 카메라를 넘겨준다. 남자가 설명하는 내내 손을 조물거리고, 땅을 맴돌던 시선을 가끔 힐끗거려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하던 여자는,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가 누르지 말라고 그렇게 강조한 버튼을 눌러 버리고 만다. 필름은 망가지고, 남자는 "그러게 조심하랬잖아." 하고 약간은 핀잔 섞인 말을 건넨다. 여자가 집중력이 부족해서 남자의 말을 듣지 못한 것이라거나, 너무나 멍청해서 남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여자는 남자를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에, 남자를 향한 관심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남자가 하는 말은 하나도 듣지 못한 것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내 "관심의 문제야."라는 말에 뾰루퉁해졌던 그 아이의 표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 폴라로이드 작동법이라는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담은 소설입니다.

* 버스커버스커의 그댄 달라요라는 곡의 뮤직 비디오로 폴라로이드 작동법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글의 음악으로 그댄 달라요를 첨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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