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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향기를 튀기다

# 7

by 오진미


비 온 뒤 봄은 잠시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났나? 날이 스산하다. 옷을 껴입게 되는 금요일이었다. 친구 집으로 놀러 간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문밖에서부터 고소한 냄새에 빨려 들어갔다. 조금만 더 놀고 싶다는 아이의 간곡함에 10분 정도 그 집에 머물기로 했다. 집안에 들어서니 기름 냄새 가득이다. 아이 엄마가 식탁에 앉으라며 접시에 초록색 무엇을 꺼낸다. 쑥 튀김이었다. 보기만 해도 바삭하는 소리가 느껴질 정도다. 한입 먹어봤더니 역시나 쑥의 쌉쌀함과 깔끔한 끝 맛이 일품이다.


튀김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다. 눈앞에서 그것이 먹고 싶을 만큼 당기는 날에는 시장에서 사다 먹었다. 초록빛이 아른거리면서 식욕이 일어났다. 봄을 알리는 일등 공신인 쑥과 냉이로 튀김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지가 시간이 갈수록 강해진다.

“얘들아 튀김 먹을래?”

“응 엄마, 난 고구마튀김 먹고 싶어.”

아이들 역시 반긴다. 토요일에 튀김 재료들을 사다 두었다가 일요일 점심 즈음에 손을 걷어붙였다.


목련과 개나리, 매화가 하루가 다르게 봉우리를 터트린다. 꽃들이 봄을 몰고 오나 보다. 그보다도 일찍 나선 건 땅에서 자라는 것들이다. 냉이와 쑥, 달래가 일찌감치 나와 겨울이 끝났음을 알렸다. 동네 노점에 붉은 플라스틱 바구니에 한가득 올려진 나물을 스쳐 지나면서 봄임을 알았다. 지나기만 했을 뿐 무엇을 만들어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튀김은 피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튀김가루를 차가운 물에 풀었다. 밀가루를 가능한 적게 먹고 튀김의 식감을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잘 씻은 재료들을 반죽에 넣었다. 깊이 있는 웍에 기름을 적당량 붓고 온도가 올라갈 즈음 투하하면 된다. 아기 쑥 잎 하나를 넣고 기름 온도를 살피니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게 적당하다는 신호다. 쑥을 하나씩 기름에 담그니 순간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마치 바닷가 바위에서 뛰어내렸을 때 그려지는 물거품 같다. 묽은 밀가루 옷을 입은 쑥이 기름에서 살아난다.


냉이는 온전한 채로 튀김을 만들어야 제맛이다. 뿌리까지 빼놓지 않아야 봄기운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고소하면서도 시원하기도 한 맑은 향이 흐른다. 다 익은 것 하나를 먹어보니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다. 내 생에 첫 쑥과 냉이 튀김이었다. 상상했던 것이 내 손으로 완성되어 간다.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초록이 기름을 만나니 맑아지고 단단하다.


나와 쑥과 냉이의 인연은 어릴 때로 돌아간다. 봄 쑥은 떡의 중요한 재료였다. 엄마는 과수원 주변에 돋아난 어린것들을 시간 날 때마다 뜯어놓고 살짝 데쳐 보관했다. 제사 때에는 인절미를 만들어 친척들을 대접했고, 여름이 시작될 즈음에는 쑥전으로 간식을 만들었다. 쑥의 진한 초록은 밀가루의 흰색을 점령해 버린다. 밭에서 먹을거리가 필요할 때 전 몇 장을 부쳐내면 다른 게 필요 없었다.


냉이는 과수원 귤나무 그늘에서도 잘 자라주었다. 봄이구나 하고 밭 주변을 거닐다 보면 냉이가 보인다. 겨울을 이겨내 봄을 맞은 까닭인지 하얀 긴 뿌리가 억세다. 살짝 데쳐 무쳐내면 한 끼 밥상을 든든히 받쳐주었다. 어린 시절에는 무슨 맛인지 몰랐지만 커서 보니 입안에 허브 한 조각을 살짝 문 것처럼 은은한 향이 퍼지면서 상쾌하다.


눈으로 봄을 만나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고구마와 문득 생각나는 야채 튀김도 더불어했다. 고구마가 한창일 때는 둥글게 썰지만 이번에는 채로 썰었다. 가늘게 막대 모양이 뒤엉켜 있는 사이로 노란 빛깔이 투명하다. 울퉁불퉁 들쭉날쭉 인 것이 귀엽다. 아이들이 언제나처럼 격한 환영의 인사를 건넨다.

“엄마, 고구마튀김 이렇게 맛있는 거 처음인데. ”

더 붙일 말이 필요 없는 한 줄 평이다. 쪽파와 쑥갓, 당근을 넣은 야채 튀김은 하루가 다르게 화사해지는 봄날을 닮았다. 파의 고소함과 당근 쑥갓의 색들이 서로 잘 어울린다.


무려 네 종류의 튀김을 만들었다. 그야말로 튀김 뷔페를 차려도 그럭저럭 괜찮은 모양새다. 처음부터 이리 크게 벌일 생각은 없었다. 하다 보니 생각보다 큰일이 되어 버렸다. 기름 냄새를 맡고 주변이 어질러지는 것은 감수해야 할 일이다. 이런 것들이 번거롭고 귀찮다는 이유로 만들기를 주저하기도 한다. ‘얼마 주고 사 먹으면 되지. 그걸 어떻게 해.’ 주변 사람들과 먹는 이야기를 하다가 가끔 듣게 되는 말이다.


쉽게 갈 수 있는 일을 돌고 돌아 한 시간 너머를 불 앞에서 집중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즐겁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만드는 설렘일까. 그보다는 내 앞에 펼쳐진 봄의 색들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초록은 그중 으뜸이었다. 기름과 만나는 순간 더 빛을 발하는 모습에 빠지게 된다. 주황색 당근은 금잔화 꽃을 그리게 했고 주변을 감싸는 파와 쑥갓은 숲길에서 마주치는 들풀이다.


봄이 기름을 만나니 고소해졌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한다는 사명감으로 음식을 만들던 무게를 벗어던지니 가볍다. 아이들에게 선포했다.

“오늘 튀김은 봄에 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딱 이 기분을 간직하고 싶었다. 간단하다 하면서도 한편으론 복잡한 것에 대한 내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보다는 이 강렬함이 더할 나위 없이 좋기 때문이다.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는 것, 그것의 유쾌함을 경험했다. 튀김이 나를 웃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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