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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 여름을 꺼내 먹다, 옥수수

# 6

by 오진미


일요일답게 보내기로 했다. 엄마인 나 혼자 바쁜 어제와 오늘이다. 아침을 시작으로 저녁까지 ‘뭐 먹을 거 없어?’라는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강줄기를 따라 산책을 다녀왔는데 며칠 전보다 공기는 따듯해지고 부드럽다. 땅바닥을 이불 삼아 낮은 키로 햇살을 받고 있는 풀들 사이에서 쑥이 제법 많아졌다. 보라색 풀꽃이 피어나고 클로버는 무럭무럭 자란다.


집으로 돌아오니 지난 주말에 사두었던 옥수수가 생각났다. 종종 가는 로컬 푸드 매장에서 장을 보고 돌아서는 길이었다. 냉동 옥수수가 가지런히 놓인 냉동고가 보였다. 봄에 옥수수라니 반가움에 한 봉지를 샀다. 찰옥수수 다섯 개가 들어있다. 담양 어느 농부의 손에서 자라났다고 적혀있다. 이름 모를 농부의 이름을 들여다본다. 여름에서 가을까지 수확한 이것을 보관하다 겨울을 보낸 이 계절에 꺼내 든 농부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씨를 심고 나서 기다림 끝에 싹이 나고 이만큼 키웠으니 제값을 받아야 일할 맛이 난다. 많은 이들이 이것을 찾으면 좋겠다.



옥수수는 봄에 여름을 생각하게 했다. 여름에 지쳐갈 무렵 옥수수가 나온 걸 보면 그때야 안도했다. 더위와의 싸움도 이제 끝이라는 걸 알고 가을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반소매 옷보다는 얇은 긴팔에 정에 가고, 습기 가득한 후텁지근한 바람보다는 서늘함에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이 녀석은 초록 갑옷을 두른 듯 꼭꼭 숨어있기에 손에 힘을 주고 껍질을 벗겨야 제 살을 드러낸다. 연한 아이보리색이거나 찰 옥수수는 맑은 검은색을 띤다. 보들보들한 수염을 떼어내는 일도 재미있다.


빨갛거나 수줍은 분홍의 수박과 복숭아, 부드러움에 그냥 삼키게 되는 포도까지 여름 과일 대부분은 물을 가득 담고 있다. 옥수수를 시작으로 여름 햇살을 받아 여문 단단한 것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옥수수를 삶는 동안 지나간 계절을 추억하게 된다.


‘지난가을에는 뭘 했지?’ 집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았던 것밖에는 기억나는 게 없다. 코로나로 애들 학교 수업조차 어려웠기에 조심하며 지냈다. 옥수수의 고소하면서 달큰한 향이 온 집안에 퍼진다. 압력밥솥의 딸랑이 소리도 경쾌하다.


‘거리두기’라는 말이 유행어가 돼 버렸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그래도 옥수수는 제 할 일을 다 했나 보다. 잘 자라서 반년이 더 지난 지금에도 밭에서 수확했을 때의 싱싱함 그대로다. 세상은 그리도 시끌벅적했지만 자연의 시계는 그대로 잘 돌아갔다는 사실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옥수수가 얼마나 맛있게 익을까 하는 기대감이 충만한 지금에야 헤아려 보게 된다.


40여분을 뜨거운 불과 씨름한 끝에 옥수수가 알맞게 익었다. 윤기 나는 이것이 따뜻한 봄기운과 닮았다.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알알이 들이 재밌다. 남편과 아이들이 하나씩 가져 들고 하모니카를 부르듯 열심히 먹는다. 잊고 있던 계절을 꺼내놓았다. 여름과 봄 어딘지 어색하지만 괜찮다. 부드럽고 고소한 옥수수가 일요일의 맛을 더한다.


시골 할머니들이 옥수수를 심는 건 사랑이었다. 넓은 밭에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것과 달리 밭 주변을 빙 둘러 조금씩 씨를 뿌리는 옥수수는 자식과 손자들에게 전할 여름의 선물 같은 것. 친정집에 가면 일찍 심어 수확한 옥수수를 만날 때가 있다.

“난 많이 먹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애들이랑 오면 주려고 밭에 조금 심었지. 그런데 요즘은 새들이 워낙 씨를 다 파먹어버리는 바람에 옥수수 키우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아.”

엄마가 옥수수를 가방에 담아 밭에서 다녀오며 하는 말이었다. 그리운 자식과 손자를 생각하며 그들을 만날 날을 기다리며 심은 것이었다. 크지도 않고 벌레 먹은 자국이 여기저기 나 있어 모양은 엉망인 엄마의 옥수수였다. 그래도 밭에서 금방 따온 것을 삶아서 먹으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할머니 이거 정말 맛있어요.”

이 한마디에 엄마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봄이 깊어질 4월의 어느 날에는 엄마는 옥수수를 심을 것이다.


뜨거운 옥수수를 접시에 담았다. 휴일의 여유와 함께 지난 여름을 불러들였다. 이 봄을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먹거리 하나를 저장해 두어야겠다. 겨울에 다시 봄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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